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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sy Jun 30. 2022

다행이다의 또 다른 말

혀가 잘린 코코 

 할머니가 무릎 관절 수술을 하기 위해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수술하기 전에 이것저것 검사를 마치고 날짜를 잡았다.  수술을 앞두고 서울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할머니를 보기 위해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했다. 명절에 할머니 댁에 내려갈 때 코코를 데리고 다닌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할머니지만 처음 코코를 봤을 땐 못생겼다고 싫어했다. 갈색 털이 어색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금세 정이 들었는지 "예삐다, 예삐다"를 연발했다. 우리 집에 와서도 코코랑 잘 놀아주었다. 그러다 간식을 주고 싶었는지 코코 먹일 게 없는지 물었다. 난 몇 없는 간식을 찾다가 기다란 고기를 전해줬다. 그런데 그걸 주려니 너무 크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잘라줘야겠다고 가위를 달라고 했다. 가위를 전해주고 방으로 가려던 찰나  평소와 남다를 "낑" 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비명소리였다. 이건 무슨 일이 났다 싶어서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코코는 혀를 내밀고 간식을 먹겠다고 달려드는 모습에 큰일이 났다는 걸 감지했다. 간식을 향해 날름 거리던 코코를 바라보며 가위질을 했던 것이라고 직감했다. 작은 아빠는 본 상황을 설명하려 했고 할머니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일단 침착하고 코코를 안아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입 안 혀를 살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코코의 비명 소리에 가슴은 뛰었지만 당황한 기색을 보일 수 없었다. 나의 그런 모습을 보면 할머니가 더 미안해지고 곤란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상황을 할머니의 탓도 할 수 없었다. 코코의 입안을 살펴보니 피가 나고 있고 점차 침과 함께 뚝뚝 떨어졌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빨리 병원을 찾아보는 게 먼저였다.  이런 위급한 일이 생기면 항상 일요일이더라. 나는 가까운 24시 동물 병원을 찾았고 택시를 불렀다. 택시 안에서 코코를 어루더듬으며 병원에 도착했다. 

혀가 잘린 코코 ㅠㅠ 

 의사 선생님을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코코를 살피며 "사실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라는 말에 참던 눈물이 쏟아졌다. 할머니의 탓을 하진 않았지만 병원에 오는 길에 나를 탓하고 있었다. '간식을 내가 잘라서 줄걸, 간식 자르는 것까지 지켜볼걸' 병원 가는 내내 코코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에 왈칵 눈물이 났다. 안 그래도 미안한데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사실은 힘들었다. 강아지들은 혓바닥을 잘리면 꿰맬 수가 없다고 한다. 다 물어뜯기 때문에 꿰매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며 나만 그런 거 아니라고 위로해줬다. 셀프로 미용을 하다 혀를 잘리는 사고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도 어째 강아지는 괜찮아 보이는데 주인이 더 안 괜찮은 거 같다고 했다. 이 상황에서는 지혈이 되는 것이 관건인데 다행히 지혈은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안심시켜줬다. 안에 들어가 좀 더 살펴보겠다고 했고 소독을 했으니 피가 지혈되는 것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했다. 


 말 그대로 위급상황이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시나리오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처음 겪는 상황에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도 마음이 미어지는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24시 병원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반려견을 안고 택시를 탈 수 있게 허락해 준 택시 기사님께도 감사했다. 아플 텐데 아픈 기색도 없이 먹고 싶은 게 먼저였던 코코의 모습이 생각나 덕분에 빨리 진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연 지혈이 되는 것에도 감사했다. 

 

 나는 "그나마 다행이다" "게 중에 행운이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안 좋은 일은 일어났는데 그나마, 게 중에라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은 좋아한다. 이상하게 그나마, 게 중에 다행이다라는 문장에서는 앞에 말에 집중이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뒷말에 집중이 된다. 그런데 오늘은 그나마, 게 중에라는 들리지도 않았다. 다행이다. 행운이야 라는 는 말에 집중이 됐다.  다행이라는 말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지만 이 모든 것이 하늘에 감사한다는 소중한 말이었다.


"천만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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