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국수 한 그릇

by 벗곰

따끈한 국수 한 그릇.


아침이다. 해가 뜨기도 전 파랑새 마을 최고 부자 김 노인의 하루가 시작된다. 담배를 한 대피고, 조금 걸어 근처의 국숫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장부를 정리하고 심부름꾼 아이의 보고를 받는다.


그의 직업은 고리대금업자다.


김 노인은 원래 이 파랑새 마을 출신이 아니다. 그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화전민 마을 출신이다. 그곳은 열 가구가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다.


어릴 적 그에게는 병약한 동생이 한 명 있었다. 동생은 자주 아팠는데, 집이 워낙 가난하여 아픈 동생을 제때 치료하지 못했다. 그의 동생은 결국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산 언덕배기 양지바른 곳에 죽은 동생을 아버지와 묻고 돌아온 날, 그는 생애 마지막으로 울었다.


김 노인은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철이 들 무렵 김 노인은 인근 작은 도시로 상경했다. 시작은 대갓집 머슴이었다. 그는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하며 숙식을 해결했다.


어느 날 세상이 바뀌었다. 대갓집은 더 이상 그를 머슴으로 고용할 수 없었다. 그는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거리로 나왔다.


‘돈이 돈을 번다.’ - 이 말은 그가 대갓집에서 받아 챙긴 유일한 밑천이었다.


그는 갖은 고생을 했다. 책 한 권을 펼쳐놓고 적어도 그 고생을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고리대금업은 그의 마지막 직업이 되었다.


세월이 흘렀다. 마침내 그는 큰 부자가 되었다. 늘그막에 아들을 하나 두었다.

그의 어린 아들이 어느 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서울에 가면 큰 병원이 있다고 아내가 졸랐다. 그러나 그는 들은 체 만 체했다. 대신에 자신이 자주 가던 침술원의 돌팔이 침쟁이를 몇 번 불렀다.


아들의 병세가 점차 나빠졌다. 아들은 오랫동안 고열에 시달렸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의 아들은 평생 뒤뚱거리며 걷게 되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걸음으로 그의 아들은 학교에 갔다. 어느 날인가부터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종종 엉뚱한 소리를 했다. 같이 저녁밥을 먹다가 아들이 불쑥 말을 꺼냈다.


‘아부지.’

‘와.’

‘저 새 운동화 한 켤레만 사 주이소.’

‘운동화는 왜?’

‘고무신은 미끄러워 가 걸어 다니기 힘들어서 안 그럽니까.’

‘......’


김 노인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다 멈칫했다.

‘고무신 아직 구멍 안 났제? 그거 구멍 나면 한 켤레 사줄 끼구먼.’


아들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순간 눈이 빛나는 것 같았지만 곧 평소의 표정대로 돌아왔다. 아들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조용히 일어섰다. 뒤뚱거리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김 노인에게 이상한 일이 자주 생겼다. 그의 장부가 찢어져 있거나 금고에 누가 손을 댄 흔적이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어린 심부름꾼을 의심했다. 범인은 곧 그의 아들로 밝혀졌다.


김 노인은 아들의 방으로 가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아들의 어깨를 잡아 홱 돌렸다. 철썩.

‘이 도둑 노무 자슥이!’


아들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은 곧 이해로 바뀌었다. 아들은 그를 쏘아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 그의 아들은 인근 강가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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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김 노인은 여전히 파랑새 마을 최고 부자였다. 그의 아내는 아들이 죽은 채 발견이 된 이후부터 시름시름 앓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의 곁으로 갔다.


주변인들이 그에게 새 장가를 권했다. 그 정도 재물이면 어디 가서든 참한 계집년 하나 얼마든지 시앗으로 볼 수 있다고, 어린년이면 자식도 하나 새로 낳아 줄 터이지.


김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절었다. 어린 계집 한 명 데려오려면 돈을 족히 몇백 냥은 쳐 줘야 할 텐데. 그는 차라리 그 돈을 다시 몇 년 더 불리는 상상을 했다. 그리하면 금고를 하나 더 사야 할 것이다. 살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기생집을 자주 다니는 그의 친구가 그에게 공짜 술을 한 잔 사주겠다고 불렀다. 그는 거하니 취했다. 붙잡는 계집의 팔을 뿌리치고 집으로 비틀비틀 돌아왔다.


그는 신발을 대충 벗어던지고 자신의 금고 곁으로 갔다. 금고를 쓰다듬었다. 세상 이렇게 예쁜 계집을 두고 내 어디 가서 시앗을 보겠누. 그는 마른 수건으로 새까만 금고를 몇 번 닦고, 그러고도 한 번 정성스레 쓸어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고운 물건이었다.


금고를 어루만지던 그의 손이 금고의 손잡이에 닿았다. 잠깐 주저했지만, 그것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 안에는 어린아이의 운동화가 한 켤레 들어 있었다.


그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것을 꺼내 들었다. 운동화를 들고 집 뒤편으로 갔다. 그는 재래식 화장실에 그 운동화를 던져 넣었다. 침을 한 번 탁 뱉고, 다시 돌아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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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김 노인도 돈을 쓰는 일이 있었다. 국수 한 그릇을 사 먹는 일이었다.

그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제법 괜찮은 국숫집이 한 곳 있었다. 그 가게는 늙은 노파와 그의 남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괜찮았다. 부인이 죽은 이후 김 노인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그 국숫집을 더욱 자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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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국수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후루룩. 그의 유일한 사치와 향락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쩝쩝.


그는 국수를 먹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웬 거지가 옆에 서 있었다. 젊은 놈이었다.

‘재수없구로 아침부터 웬 거지 놈이.’


그는 약간 심기가 불편했다. 거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가 그의 고소한 국수 냄새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는 국수를 묵묵히 먹었다. 빨리 먹고 일어나야겠구만.


‘내 좀 주이소.’


뭐?


‘내 그것 좀 주이소.’


김 노인은 거지를 쳐다보았다. 젊은 거지의 시선이 그의 국수로 향했다. 김 노인은 그를 한 번 쳐다보고, 자신의 반쯤 남은 국수 그릇을 한 번 쳐다보고, 그리고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내 그것 좀 주이소.’

거지가 말했다.


김 노인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탕 하고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주인 할아범이 달려왔다.


‘썩 꺼지라.’


주인 할아범의 손에 이끌려 그 젊은 거지는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김 노인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후루룩 국수가 잘도 넘어갔다.


‘저런 새끼한테는 국수 한 젓가락도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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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김 노인은 다시 그 국숫집을 찾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따끈따끈한 국수가 그의 앞에 차려졌다. 김 노인은 젓가락을 들고 이제까지 그래왔듯 또 자신의 유일한 사치와 향락에 몰두했다.


- 푹.


순간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김 노인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등 뒤에는 며칠 전 그 거지가 서 있었다. 김 노인은 자신의 배를 쳐다보았다. 비죽 비어 나온 붉은색 금속. 그의 옷자락이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 와장창.


젊은 거지는 김 노인을 발로 걷어찼다. 식탁을 엎어 버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바닥에 쏟아진 국수에서 여전히 김이 피어올랐다. 엉망진창이 된 그 국수 옆으로 붉은 피가 번지기 시작했다. 따끈한 국수, 맛있는 국수. 그것이 식기 전 그의 몸이 먼저 식었다.



... 후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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