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출근한 지 석 달.
부모님은 나의 새로운 직장에 대해서, 내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신다. 나의 첫 직장은 상조회사였다. 그다지 적성에 맞지 않아 얼마 못 가 그만두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새 직장을 빨리 구했다.
특수 청소.
아버지는 내가 청소일을 해보겠다고 말하자 한숨부터 쉬었다. 너 그러려고 내가 새벽부터 청소차 몰고 다니면서 공부시킨 것 아니라고, 나는 네가 최소한 서기보라도 하나 할 줄 알았다면서. 그럴 거면 대학은 왜 갔냐.
글쎄요,
아버지가 청소차 몰고 다녀서 나도 청소 말고 할 일 없는 백수 된 거라고는 생각 안 하세요?
-라는 말은 홀로 조용히 간직한다.
아무튼 은퇴한 이후로 아침잠이 없어진 아버지는,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먼저 거실 소파에 앉아 계셨다. 내가 출근 전에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어 부스럭거리니 뒤따라 누나까지 방문을 열고 나온다.
누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 여러모로 글렀다. 그나마 나이빨이라도 받을 때 얼른 치워버렸어야 했다고, 어른들은 뒤에서 들리지 않는 악다구니를 했다.
그럼에도 어화둥둥 여전히 마음만큼은 우리 아버지의 작은 공주로 살아가는 누나는, 요새는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뭘 하는지 아침부터 피곤하다며 투덜거렸다. 사실 뭐, 떠들어 대는 거 보면 뻔하다. 그저 나라 걱정, 연예인 걱정, 재벌 걱정까지 두루두루 남의 인생을 구경하다 심심하면 커뮤니티 사이트를 좀 들락거린다. 흘깃 쳐다보는 시선 끝으로 누나가 시켰을 것이 분명한 택배 상자가 서너 개 있다. 돈도 없다면서 뭘 자꾸 사재 끼는지 알 수가 없다.
힘들게 취업한 직장에서 더 힘들게 번 돈.
역시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런가, 누나는 사실 간신히 들어간 변변한 직장을 길게 다니지도 못했다. 남의 돈 먹는 일 중에 쉬운 일이 어디 있나. 평소 아버지가 주는 용돈으로 편히 살아 버릇하던 누나는, 찌꺼기 같은 푼돈 몇 푼 벌겠답시고 일주일 내내 꼬박꼬박 출근을 요하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견딜 수 없어했다.
처음에는 욕실 하수구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져 있었다.
월급은 오르지도 않았는데 택배 상자가 하루에 키 높이만큼 쌓였다.
집에 오자마자 저녁 9시도 안 돼서 드러눕고 아침 8시가 되도록 일어나지를 않았다.
결국 우는소리를 하며 관두겠다고 했다.
나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하라고 했다.
아무튼 그 뒤로 저렇게 집에서 빈둥거리기 시작한 지 벌써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요새는 새벽부터 컴퓨터를 켜 놓고 얼굴에는 마스크 팩 하나 붙인 채 온라인 게임을 한다.
누나는 원래 좀 이상주의자였다.
그리고 최근 그 이상주의자께서 찾아내신 이상적인 부업인 것이, 온라인 게임 쌀먹.
한심해.
새벽부터 잔돈 몇 푼을 벌겠답시고 하루 종일 방구석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 삶이 누나가 꿈꾸던 진정한 이상이었을 것 같지는 않다. 속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잔소리도 길게 못 한다. 그렇게 게임 할 시간에 공부했으면 하버드 박사를 열두 번은 했겠다 – 그 소리를 주고받을 나이도 아니다. 그 물경력에 어디 번듯한 직장에 정규직으로 진입하기에는 늦었고, 그렇다고 진짜 폐지라도 줍기에는 아직 지나치게 젊었다.
그래서 더더욱 사이버 폐지라도 주울 수밖에 없는 인생으로 귀결.
결과적으로 자식 농사 둘 다 말아먹은 우리의 아버지는 이제 정말 하나님 말고 더는 의지할 데도 없어 보였다.
그저 차가운 진실.
아무튼 내가 오늘은 좀 바빠서 먼저 나가보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못마땅하다는 듯 한 번 흘깃 나를 쳐다보았다. 시선은 그대로 텔레비전을 향한 채, 밥이나 잘 먹고 다니라며 리모컨을 신경질적으로 꾹꾹 눌렀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현관문을 밀고 나왔다.
휴대전화 진동이 울린다. 오늘 방문할 장소가 알림으로 떴다. 내비게이션에 번지수를 입력하고 보니, 살짝 한숨부터 나왔다. 몇 번 가 본 동네다. 최근 들어 자주 간다.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 주변 사람들은 종종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을 반짝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그 두 동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고독사의 차이점에 대해 - 일단 가난한 동네는 됐고, 부자 동네 사연부터 먼저 말해 봐, 그런 사람들도 정말 그렇게 혼자 죽어? 돈이 그렇게 많은데? 그래도?
시발 그딴 건 알아서 뭐 하려고, 사는 동안에나 잘들 살아라 -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을 때마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키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도 혼자 사는 할머니인가.’
작은 영세민 아파트에 도착했다. 노인 하나 살기 딱 알맞은 임대주택 모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가느다란 냄새가 길을 알려 준다. 아파트 동대표라는 사람이 잠깐 눈도장을 찍고 간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갔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도 작업을 시작한다.
누군가의 회색 발자국이 이미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들어서 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조금 하고 안방 방문을 연다. 저절로 시선은 작은 침대로 향했다.
기괴한 얼룩으로 젖어 있는 자주색 이불. 악취가 진동한다. 매번 미묘하게 색다른 값을 출력해 대는 이 노골적인 죽음의 냄새. 지문 같은 걸까.
다가가니, 이불 위에 무엇인가 검은 털 뭉치가 있다.
코끝이 찡해졌다.
개다.
검은색 작은 개.
이제는 품종도 알 수 없고, 이름도 알 수 없을, 검은색 털 뭉치.
나는 까미가 생각났다.
우리 가족이 한때 길렀던, 작고 검은 개 까미.
우리 집 까미도 저렇게 누나 곁에서 자는 것을 좋아했다.
잠든 누나 옆으로 폴짝 뛰어 올라가, 이불 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잠들었다.
까미는 우리 남매가 아주 어렸을 때, 어디선가 한 마리 데려온 강아지였다.
내가 군대에 갔을 때 까미는 이미 나이가 아주 많았고, 까미가 죽은 이후로 누나는 우울증 약을 한동안 먹었다. 우리 집 까미는 저렇게 털 뭉치가 되기 전에 누나가 사놓았던 깨끗한 새 옷을 입고 손수레에 담겼다. 작은 개였으므로 어머니가 평소에 쓰던 장바구니용 손수레에 충분히 들어갔다. 내가 수레를 끌고 녀석을 어디 묻어 줄까 두리번거리는 동안, 누나는 뒤에서 울면서 따라왔다. 작은 장바구니용 철제 손수레를 끌고 앞장서서 걷는 젊은 남자와 손에 야전삽을 든 채 그 뒤를 울면서 뒤따르는 못생기고 뚱뚱한 젊은 여자 – 그것이 그날 우리 남매가 연출한 장면이었는데, 나를 쳐다보는 지나가던 사람들의 일그러진 표정이 아직도 기억났다. 남의 사정도 모르고 진짜. 그때는 이것도 몰랐다, 내가 기어이 이렇게 죽음과 가까운 일을 하게 될 줄은.
할머니는 이불을 덮은 채 그대로 영면에 든 것 같았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이 검은색 털 뭉치도 그 곁에서 웅크리고 잠이 들었을까.
처음에는 깨웠으려나.
자기 혼자 일어나 거실을 좀 돌아다니며 할머니가 챙겨놓은 사료를 냠냠 먹고, 물을 찹찹 마셨을까. 앉아서 뒷발로 귀를 긁고, 푸르르 털고, 기지개를 한번 쭉 켜고, 그리고 다시 이 방으로 돌아왔겠지. 익숙하다는 듯이 자기 엄마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올라, 앞발로 이불을 좀 긁어봤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약간 낑낑거리면 엄마가 일어날 거야.
평소와는 달랐을 하루, 다음날, 그다음 날, 그리고 또. 작은 그릇에 담긴 마지막 남은 물도 말라 버리고, 사료는 진작에 다 먹었는데, 엄마 왜 안 일어나?
나 배고픈데.
우리 산책 가자, 엄마.
엄마 나 잠이 와.
엄마 왜 자꾸 잠만 자.
나도 졸려.
......엄마 옆에서 자야지.
“뭐하고 섰어?”
뒤에서 누가 말을 건다.
“아…. 아뇨, 이거…. 강아지 맞죠?”
“아 그렇네. 자, 봉투에 빨리 담아. 뭐해.”
장갑 낀 손에 잠시 망설임.
커다란 마대 포대의 입구를 벌린다.
고약한 냄새와 끈적거리는 유기물로 엉킨 이불을 뭉쳐 먼저 담고, 마저 그 검은색 털 뭉치도 주워 담으려는데, 무엇인가 바닥에 떨어진다. 작은 펜던트가 달린 새카맣게 녹아 변한 강아지 목걸이다.
‘그래도 개가 명견이구만.’
‘예?’
‘보니까 이불 옆에 가만히 웅크리고만 있었네, 우째 가만히 옆에서 죽어 있누.’
‘......’
‘...이 할매는 그래도 자식 하나 있었구마잉’
- 피식.
‘하이고...저번에는 막, 와 저번주 니 없을 때, 그때 내 혼자 간 그 집도 혼자 사는 할마시였는데, ...개새끼가 다 주 물어뜯어 갖고, 그 뭐꼬, 그..그...’
‘......’
‘그래, 그래 갖고 경찰 오고 막, 장롱이며 방문이며 다 쳐 긁어놓고, 마지막에는 장판까지 다 주 물어뜯었다가 아이가, 집구석 말도 몬했다카이. 아무튼 이 할매는 개도 개 같은 걸 한 마리 잘 키았네, 죠 사진 봐라, 죠 갠 갑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 작은 액자가 하나 들어왔다. 까만색 작은 개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있는 누군가. 등 뒤로 꽃이 피어 있다. 봄날에 어디 좋은데 구경이라도 가서 찍은 사진인가, 사진 속 인물은 그래도 아직 제법 젊은것 같았다. 품속에 안긴 까만 인형 같은 녀석도 아직 어린 강아지로 보였다. 저 사진은 누가 찍어 줬는지.
‘오늘은 일찍 끝나겠다잉, 빨리 치워뿌자.’
‘... 네.’
장갑 낀 손이 재빠르게 흩어진 살림살이를 다른 포대에 주워 담는다. 나의 시선도, 시선까지 다시 모조리 주워 마대 자루에 담는다. 이상하게 그 검은 털 뭉치에서 떨어진 작은 개 목걸이 하나를 슬며시 주머니에 넣어 가져가고 싶다. 그러나 참았다. 어차피 내가 훔치고 싶은 것은 훔칠 수 없는 것이므로.
이것을 내 호주머니에 몰래 주워 넣어 본들, 나는 이 작은 목걸이를 가질 수 없다.
일은 일찍 끝났다. 주인 없는 집에서 뭘 좀 갖고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오늘은 없다. 물론 이 커다란 마대 포대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사람도 없다.
치우다 보니 본래 정돈되고 깨끗한 세간살이였다.
진행 상황을 사무실에 짧게 보고한 뒤, 나는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시간은 벌써 오후에 이르렀다. 조금 있으면 퇴근 시간이 되어가는 것을 미리 알려 주듯이 대기 중의 공기는 또 다르게 매캐하다. 나는 이 텁텁한 매연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지러운 휘발유의 냄새, 부패하는 시신의 냄새, 분명 자동차의 창문을 닫아 놓았음에도 슬며시 옆자리에 동행하는 이 냄새. 오늘도 힘들었지? 냄새가 동행으로 곁에 앉았다.
빌딩 사이로 하늘이 조금씩 붉게 변한다.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받고 차를 세운다. 브레이크를 지그시 밟으며 장갑 낀 손을 한번 쳐다보았다. 아쉬웠다. 복슬복슬한 까만 털, 한번 쓰다듬어 줘도 좋았을 기특한 녀석.
까만색 털 뭉치.
까만색, 까만색, 까만색.
보송보송 까미.
엄마를 많이 좋아했구나 까미는.
까미야, 엄마랑 잘 가.
가볍게 숨을 쉬고, 바뀐 신호에 차를 출발하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가 왔다. 누나다.
‘야.’
‘왜.’
‘올 때 메로나 ¹.’
‘... 시발.’
‘아 없으면 메가톤바 ¹.’
‘미쳤나.’
‘안 사 오면 너의 소듕한 투 하트 다키마쿠라 ² 짜응은 살아남지 못한다. 올케를 살리고 싶으면 순순히 투항해라.’
‘미친 너 그거 건들기만 해 봐라.’
‘부라더~♬ 아이수쿠림 혼또니 구다사이(本当にください)~ 노약자를 좀 배려해 주세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 주시고~♡’
.... 하... 내가 아니라 저게 군대를 갔어야 했는데 진짜….
나는 누나가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버는지 알지만, 누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휴대폰을 던지고 운전대를 고쳐 잡았다. 노란색 신호등이 교차하며 차들이 출발한다.
까만 털 뭉치... 까만 털 뭉치... 펜던트도 반짝,
착한 남동생의 눈동자도 반짝,
마트 문 닫기 전에 도착하려면 속도 좀 내야겠다.
부릉부릉♫
¹ 메로나, 메가톤바 : 대한민국의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유명한 아이스크림 이름
² 투 하트 : 『To Heart』(1997년 제작)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