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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까치(1997)

WHAT IS HISTORY by E. H. CARR

by 앨리의 정원

저자 - Edward Hallertt Carr, 역자 - 김택현



서문


나의 결론은,

파괴와 쇠퇴 이외에는 아무것도 내다보지 않으면서

진보에 대한 모든 신념과 인류의 더 나은 진보에 대한 모든 전망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배제해 버리는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절망의 조류가 엘리트주의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주된 창도자들은 지식인들,

즉 자신이 봉사하고 있는 지배적 사회집단의 이념을 전파하는 자들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지식인들 중의 일부가 그 출신 성분에서 다른 사회집단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은 상관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식인이 되면서 자동적으로 지식인 엘리트들에게 동화되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정의상 하나의 엘리트 집단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맥락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사회 내부의 모든 집단이 아무리 응집력이 있다고 해도,

그 속에서 별종들이나 반항아들이 어느 정도는 돌출한다는 점이다.

이런 일은 특히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기 쉽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회의 중요한 전제들을 인정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행동하는 행동하는 지식인들의 판에 박힌 주장이 아니라,

그런 전제들에 도전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행동하는 지식인들의 주장이다.



1. 역사가와 그 사실들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할 때,

우리의 대답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 자신의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며,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하여 우리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더욱 폭넓은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된다.


19세기는 사실을 숭배하는 위대한 시대였다.

19세기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작품인 <<어려운 시절(Hard Times)>>에서 그래드그라인드씨는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이다. …인생에서는 사실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세기의 역사가들은 대체로 그에게 동의했다.


흔히 사실은 스스로 이야기한다고들 말한다.

이것은 물론 진실이 아니다.

사실은 역사가가 허락할 때에만 이야기한다 :

어떤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이며, 그 순서나 전후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역사가이다.

역사가는 필연적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역사는 분실된 조각들이 많은 거대한 조각그림 맞추기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주요한 곤란은 빈틈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림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특정한 견해에 물들어 있던, 그리고 그 견해를 뒷받침하는 사실을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이미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지, 우연에 의한 것은 아니다.


‘모든 역사는 사유의 역사’이며,

‘역사란 사유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유를 자신의 정신 속에 재현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항상 굴절된다.

역사가의 기능은 과거를 사랑하거나 과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로서 과거를 지배하고 이해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d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는 것이다.



2. 사회와 개인


여러분은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라.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역사가의 연구대상은 개인의 행동인가 아니면 사회적 힘의 작용인가?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세계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여 우리를 단순한 생물학적 단위에서 사회적 단위로 변화시킨다.

역사의 혹은 역사 이전의 모든 단계에서 인간은 누구나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 사회에 의해서 형성된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개인적인 상속물이 아니라 그가 성장해 온 집단에서 사회적으로 취득된 것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환경도 인간의 사유의 성격을 결정하는데 기여한다.


역사의 사실이란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

그리고 개인의 행동에서 본인들이 의도했던 것과 자주 모순되거나 가끔 상반되는 결과를 생겨나게 하는

사회적 힘에 관한 사실인 것이다.


그 시대의 위인이란 자기 시대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고, 그 의지가 무엇인지를 그 시대에 전달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행하는 것은 그의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실현한다.



3.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나 역사가는 의지가 발휘되는 인간 행동의 여러 형태들을 통찰하고,

어째서 자기의 연구대상인 인간들이 그렇게 행동하려고 했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다.

역사가의 관점은 그가 행하는 모든 관찰에 불가피하게 개입하며,

그래서 역사는 그야말로 상대성으로 가득 차 있다.

카를 만하임의 말대로, ‘경험을 포괄하고 수집하고 정리하는 범주마저도

관찰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역사가 거의 반복되지 않는 하나의 이유는

두 번째로 공연할 때의 등장인물들은 첫 번째 공연의 결말을 알고 있고,

따라서 그에 관한 지식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강연의 목적을 위해서라도 역사가는

신의 힘(deus ex machina)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을,

역사란 말하자면 조커 카드가 없는 트럼프 게임과 같다는 것을 전제하고자 한다.


역사를 쓴다는 구실로 재판관처럼 부산을 떨면서

여기에서는 유죄판결을 내리고 저기에서는 용서를 해주는 사람들,

그런 것이 역사의 직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역사감각이 없는 자들이라고 인정된다.


물리학자, 지질학자, 심리학자, 역사가의 전제와 방법은 세세한 부분에서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역사가와 자연과학자는 설명을 추구한다는 근본적인 목적,

그리고 질문하고 답변한다는 근본적인 절차의 측면에서는 똑같다.

역사가도 여느 다른 과착자처럼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동물이다.



4.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역사 연구는 원인에 관한 연구이다.

모든 역사적 논의는 어떤 원인이 우선하는가 하는 문제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원인은 역사과정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을 결정하며, 그의 해석은 원인의 선택과 배열을 결정한다.

원인의 등급화, 즉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어느 일련의 원인들 혹은 또 다른 일련의 원인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가려내는 것이 역사가의 해석의 본질이다.


역사가는 끝없는 사실의 바다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수한 인과적 전후관계들 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을,

오직 그런 것만을 추출해 낸다.

그 전후관계를 자신의 합리적인 설명과 해설의 패턴에 합치시키는 것은 역사가의 능력이다.


훌륭한 역사가라면 미래에 관해서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

미래를 뼛속 깊이 느끼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사가는 ‘왜?‘라는 질문에 ’어디로?’라는 질문도 제기한다.



5. 진보로서의 역사


우리가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말할 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 역사가에게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로 인해서

제한되어 있는 시야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그 역사가에게는 자신의 시야를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런 만큼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바로 그 위치에 전적으로 속박된 사고방식을 가진 역사가들보다

과거를 더 심원하고 더 지속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괴테는 생애의 마지막 무렵 어느 대화에서 그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약간은 거칠게 끊어버렸다.

‘시대가 쇠퇴하고 있을 때, 모든 경향은 주관적이다.

그러나 반대로 여러 가지 일들이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

모든 경향은 객관적이다.‘


지난 200년 동안,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역사가 움직여 가고 있는 어떤 방향을 가정해 왔을 뿐만 아니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방향이 전체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고,

인류는 보다 나쁜 상태에서 보다 좋은 상태로,

보다 저급한 상태에서 보다 고급한 상태로 전진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역사가는 그 방향을 인식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승인했다.

역사가는 역사가 움직여가는 과정에 대한 의식뿐 아니라

그 과정에 자신이 도덕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서

과거의 연구에 적용했다.



6. 지평선의 확대


우리는 세계의 파국을 예언하는 소리들이 퍼져 있고, 그 소리들이 모든 이를 무겁게 억누르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인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자기를 의식하며, 따라서 역사를 의식한다.

그는 자기가 지나온 희미한 어둠 속의 가냘픈 빛이

그가 앞으로 가려고 하는 어두컴컴한 곳까지 밝혀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서

열심히 그 희미한 어둠 속을 뒤돌아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끝없는 역사의 사슬 속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


프로이트가 한 일은

인간 행위의 무의식적인 근원을 폭로함으로써

우리의 지식과 이해의 범위를 확장시킨 것이었다.


역사가에게 프로이트는 두 가지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첫째, 프로이트는 사람들의 행동은

본인들이 주장하거나 믿고 있는 행위의 동기를 통해서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오랜 환상에 종지부를 찍었다.

둘째,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의 작업을 보충하면서

역사가에게 자기 자신과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주제나 시대에 대한 선택을 이끌고 사실에 대한 선별과 해석을 이끈 동기를,

그의 시각을 결정한 민족적 배경과 사회적 배경을,

그리고 과거에 대한 자신의 관념을 형성시키고 있는 미래에 대한 관념을 심문해 보라고 촉구했다.

역사가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 수 있고 또한 알아야만 한다.


정치 및 경제 전문가들이 처방을 내릴 때,

그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란 급진적이고 원대한 이념은

믿지 말라는 훈계,

혁명의 냄새가 나는 것은 모조리 피하라는 훈계,

또는 가능한 천천히 조심스럽게 전진하라는 훈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고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




내 굴절된 해석을 말하며 자문한다.

이 말은 나와 상대방의 현재를 응원하는가.



E. H. Carr(1892-1982)는 런던에서 출생하여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컬리지를 졸업한 후 1916년 외무부에 입사했다. 1936년에 웨일스 유니버시티 컬리지의 국제정치학 교수로 임용됐으며, 1946년까지 더 타임스의 부편집인으로 일했다.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의 밸리올 컬리지의 정치학 튜터였고, 1955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컬리지의 펠로우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1966년 옥스퍼드 대학교 밸리올 컬리지의 명예연구원으로 위촉됐다. 1945년부터 그의 기념비적인 역사서인 <<소련사(History of the Soviet Russia)>>를 30년간 집필했으며, 한 권의 개요서를 포함한 14권으로 구성하여 출판하였다. 그의 다른 저작들 중에는 <<낭만의 망명객(The Romantic Exiles)>>, <<평화의 조건(Conditions of Peace)>>, <<소련의 충격과 서구사회>>, <<새로운 사회(The New Society)>>,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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