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ent in the Spring by Agatha Christy
블란치가 조금 가벼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하긴 세상이 그런 거지.
붙어 있어야 할 때는 그만두고, 내버려 두어야 할 때는 매달리고.
한순간 인생이 너무나 멋져서 이게 현실일까 믿기지가 않다가,
이내 지옥 같은 고민과 고통 속을 헤매고!
상황이 잘 풀릴 때는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데
나락으로 떨어질 때는 이제 절대 위로 올라가 숨 쉬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잖아.
그런 게 인생이잖니?“
조앤이 생각하는 인생, 혹은 그녀가 지금껏 알았던 인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개념이었다.
그래서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농사를 짓고 싶어. 리틀 미드 농장이 매물로 나왔어.
상태가 나쁘긴 하지만 그 덕분에 싸게 나온 거야. 정말 좋은 땅이지, 잘 들어봐…“
그녀는 몹시 단호하고, 몹시 긍정적으로 말했다.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둘 중 하나라도 현명해야 했다.
로드니가 자신에게 최선인 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녀라도 그래야 했다.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은 정말 어처구니없고 바보 같고 터무니없었다.
“빌어먹을 사무소!”
로드니가 투덜거렸다.
“아, 로드니, 당신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무소를 싫어하지는 않아요.”
“아니, 난 싫어해. 오 년 동안 거기서 일했어. 내 마음이 어떤지는 내가 똑똑히 알아.”
“적응할 거예요. 게다가 이제 사정이 다르잖아요.
아주 달라요.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결국은 업무에 관심을 갖게 될 거예요.
두고 봐요, 로드니. 결국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질 테니까.“
그 순간 로드니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슬픈 눈길로 오래도록.
사랑이 깃들었지만 절망감도 있었고, 그와는 또 다른 뭔가도 있었다.
그리고 조앤은 생각했다.
그래, 자식 키우는 일은 힘들고 보답받기 어렵지.
자식 키우느라 애썼다는 말을 못 듣는 일도 허다하다.
요령이 필요하고 유머감각도 있어야 했다.
언제 단호하고 언제 양보해야 하는지 잘 알아야 했다.
로드니가 아팠을 때 내가 어떻게 그 시기를 헤쳐 나왔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특별히 한 마디만 더 하겠다.
나태한 사고는 금물이야, 조앤!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게 가장 쉬운 길이라고 해도, 또 그게 고통을 면하는 길이라 해도 그래선 안돼!
인생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란다.
그리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안 돼!
조앤, 인생은 지속적인 진행이어야 한단다.
과거의 나를 디딤돌로 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거지.
고통과 괴로움이 닥칠 거야.
누구나 겪는 일이지.“
“블란치 해거드, 딱 한마디만 더 하겠다.
단련.
네 감정을 단련하고 자제하는 법을 연습하거라.
네 따뜻한 심성이 아주 위험한 방식으로 드러날 수도 있어.
엄격한 단련을 해야만 높은 곳에 다다를 수 있다.
넌 훌륭한 재능을 가졌어, 블란치.
그것들을 잘 활용해야 해.
또한 너는 많은 단점을 가졌지.
많은 단점.
하지만 그것들은 너그러운 성격을 가진 사람이 흔히 갖는 단점들이니 고칠 수 있을 거다.“
한 번은 그녀가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은 변호사라서 싸움이라면 진저리가 날 것 같아요.”
그러자 로드니는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
“맞아, 남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언제나 그러는 건 아니야.
시골의 변호사는 인간관계의 약한 면들을 누구보다도 많이 보는 사람이야.
그래서 이 일을 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는 것 같아.
인간이란 원래 나약하고, 두려움과 의심과 탐욕에 약한 존재지.
그런데 가끔은 예기치 않게 이타적이고 용감한 인간을 보게 돼.
어쩌면 변호사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은 폭넓은 동정심을 갖게 되는 건지도 몰라.“
“세상에, 로드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에이버릴은 당신보다 내가 더 잘 알아요. 난 그 아이의 엄마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그 아이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건 아니지.
에이버릴은 언제나 선택에 의해, 아니 어쩌면 필요에 의해 사정을 축소해서 이해해.
어떤 것을 깊이 느껴도 일부러 가볍게 얘기한다고.“
“내 말을 믿어, 에이버릴.
인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반쪽짜리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분명히 말하마.
네가 루퍼트 카길을 돌려세워 그 일을 계속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사랑하는 남자가 불행하고 성취감도 없이 사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날이 올 거다.
그는 나이보다 늙고 지치고 낙담한 모습으로 인생을 대충 살아가게 될 거야.
그럴 때 네 사랑이, 아니면 또 다른 여인의 사랑이 그에게 보상이 될 거라고 믿는다면,
분명히 말하지만 넌 감상에 빠진 바보 멍청이야.“
“알아 조앤. 하지만 그건 잘못이라고 생각해.
바버라에겐 판단력이란 게 거의 없어.
그 애는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지.
옥석을 가리지 못해.
일상이 아닌 배경에서 사람을 보면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른다고.
그렇기 때문에 그를 자신의 환경에다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는 거야.
바버라는 하먼을 술꾼에 평생 단 하루도 제대로 일해본 적 없는 멍청하고 허풍 떠는 남자로 보지 않아.
위험하고 멋진 남자라고만 생각하지.“
로드니, 그녀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슬픈 눈빛, 언제나 슬픈 눈빛.
로드니가 그랬다.
“내가 이 일을 그렇게 싫어하게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
조앤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행복해질지 당신이 어떻게 알지?”
원하는 삶을, 농부의 삶을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던 로드니.
사무실 창가에서 장날에 몰려나온 소들을 지켜보던 로드니.
로드니는 레슬리 셔스턴에게 젖소에 대해 말했다.
로드니는 에이버릴에게 “인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반쪽짜리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그것이 조앤이 로드니에게 한 짓이었다…
조앤은 그에게 빠르게 다가가 숨 가쁘게 말했다.
“난 혼자가 아니에요. 난 혼자가 아니라고요. 내겐 당신이 있어요.“
“그래, 당신에게는 내가 있지.” 로드니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알았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는 영국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의 삼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어머니에게 교육받았고, 16세에 파리로 이주해서 학교에서 성악과 피아노를 배웠다. 1914년 아치볼드 크리스티 대령과 결혼했고, 1차 대전 시기에 <<스타일스 저택의 살인사건>>으로 데뷔했다. 1930년부터 1956년까지 애거사는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 등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잠적하는 등 방황의 시간을 보냈지만, 이때의 사유를 바탕으로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여섯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필명을 쓴 것은 추리소설 독자들을 혼동시키지 않으려는 배려였고, 애거사의 뜻에 따라 50년 가까이 비밀에 부쳐졌다. <<봄에 나는 없었다>>는 중년 여성이 자기기만적인 삶을 깨닫고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그렸으며, 애거사의 숨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6년 85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애거사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BC 살인사건>> 등 80편의 추리소설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