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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 이성과 현실

Много ли человеку земли нужно? by Толсто

by 앨리의 정원

저자 - Leo N. Tolstoy, 역자 - 박형규



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의 첫째 편지 제4장 20절)-


“그런데 저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신상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요?”

“아마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지.”

“세묜!” “음?”

“우리는 남을 도와주는데 왜 남은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지 몰라요.”


“미하일, 자네는 보통 인간은 아닌 모양이니 자네를 붙잡을 수도 없고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네.

꼭 한 가지만 알고 싶은 것이 있네.

자네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자네는 몹시 침울한 얼굴이었으나

내 아내가 저녁준비를 하기 시작하니까

자네는 싱긋 웃으며 밝은 표정을 지었는데 어찌 된 까닭인가?

또 나리가 장화를 주문했을 때도 자네는 웃으면서 표정이 밝아졌었네.

지금도 부인이 아이들 둘을 데리고 왔을 때 자네는 세 번째로 빙그레 웃었네.

미하일, 자네 몸에서 그런 빛이 비치는지,

그리고 왜 세 번 빙긋 웃었는지 그 까닭을 좀 말해 주게나.“


미하일은 말했다.

제 몸에서 빛이 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제가 하느님의 벌을 받고 있는 중이었는데 방금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세 번 싱긋 웃은 것은 하느님의 세 가지 말씀의 뜻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말씀은 아주머니가 저를 생각하셨을 때 깨달았고,

또 한 가지 말씀은 부자 나리가 장화를 주문할 때 알게 되어 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두 계집아이를 보았을 때 마지막 세 번째 말씀을 알게 되어 또다시 웃은 겁니다.“


“저는 하느님 곁으로 날아가서 말했습니다.

‘저는 산모의 혼을 빼올 수가 없습니다.

남편은 나무에 깔려 죽고 부인은 방금 쌍둥이를 낳고서 제발 혼을 거두어 가지 말라고 애원했습니다.

제발 자기 손으로 아이들을 키우게 해 달라면서 어린아이는 부모 없이는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산모의 혼을 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내려가 산모의 혼을 거두어라. 그러면 세 가지 말을 알게 되리라.

즉 사람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그것을 알게 되면 하늘나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나는 인간 안에 있는 것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일을 이렇게 내게 계시해 주시는구나, 생각하니

저는 그만 너무 기뻐서 싱긋 웃고 말았습니다.“


“이 사나이는 일 년 신어도 끄떡없는 구두를 만들라고 하지만 자기가 오늘 저녁 안으로 죽는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자기 몸에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두 번째로 싱긋 웃었습니다.

친구였던 천사를 만난 일도 기뻤으며 하느님께서 두 번째의 말씀을 계시해 주신 것도 기뻤습니다.“


“육 년째 되는 오늘, 쌍둥이 계집아이를 키우는 부인과 아이들을 보게 되었을 때,

저는 엄마가 없더라도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저는 그 부인이 타인의 아이로 인해 눈물 흘렸을 때 거기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의 그림자를 발견했고,

사람은 무엇으로써 사는가를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최후의 말씀을 계시하여 저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세 번째로 싱긋 웃었던 겁니다.“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런 일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살피는 마음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기 아이의 생명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또 부자는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내가 인간이 되고 나서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자신의 일을 여러 가지로 걱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과 그 아내에게 사랑이 있어 나를 불쌍하게 여기고 나를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다.

고아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은 모두가 두 아이의 생계를 걱정해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인 한 여인에게 사랑의 마음이 있어 그 애들을 가엾게 생각하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것도, 모두가 각기 자신의 일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속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나는 깨달았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정말은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 속에 사는 자는 하느님 안에 살고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5. 양초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아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마태오 복음서 제5장 38-39절) -


“만약에 악을 악으로 뿌리 뽑으라고 하는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그와 같은 본을 보여주셨을 테지만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그게 아니야.

우리가 악을 악으로 다스리려 하면 그 악은 이쪽으로 옮겨오네.

사람을 죽이기야 수월한 일이지만 그 피는 자신의 영혼에 달라붙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피투성이로 만드는 일일세.

재난에는 지고 들어가야 하네. 그러면 재난 쪽에서도 져 줄 걸세.


농민들은 하느님의 힘은 악을 악으로 갚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한 일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1.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빠홈은 재판관과 이웃 사람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였다.

마을 사람들은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하며 그를 위협했다.

이렇게 하여 빠홈은 땅을 넓게 가졌으나 좁은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촌장은 말했다.

“우리 고장에서는 그런 식으로 측량할 줄 모릅니다.

항상 하루치 얼마로 팔고 있지요.

말하자면 그 사람이 하루 종일 걸은 만큼의 땅을 드리는 거죠.

그래서 하루치 1천 루블리라는 것입니다.“


빠홈의 머슴이 달려가서 그를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으나 그의 입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

빠홈은 쓰러져 죽고 말았던 것이다.

머슴은 괭이를 집어 들고 빠홈의 무덤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 대로 정확하게 3 아르신(210센티미터)를 팠다.

그리고 그를 묻었다.



12. 대자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마태오 복음서 제5장 38절)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아라.” (제39절)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로마서 제12장 제19절) -


어느 가난한 농가에 아들이 태어났다.

농부는 크게 기뻐하며 이웃집에 가서 아들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웃집에서는 거절했다.

가난한 농가 자식의 대부나 대모가 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너는 내가 일러준 말을 듣지 않았구나.

네가 저지른 첫째 잘못은 금단의 문을 연 일이다.

두 번째 잘못은 옥좌에 올라앉아 내 홀을 손에 잡은 것이다.

세 번째 잘못은 세상에 악을 더하게 한 일이다.“


너는 스스로 이렇게 만들었다.

암곰이 처음 나무등걸을 건드렸을 때는 새끼곰을 놀라게 했을 뿐이나

두 번째로 밀어젖혔을 땐 새끼곰을 죽였고,

세 번째로 집어던졌을 땐 스스로를 파멸시켜 버렸다.

네가 한 짓도 그와 똑같은 일이다.“


그는 생각해 냈다.

그 농가의 아낙네가 걸레를 깨끗이 빨았을 때에야 비로소 테이블을 깨끗이 닦을 수 있었던 것을.

그와 같이 자신의 걱정을 그치고 자기의 마음을 맑게 할 때 타인의 마음도 맑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대자는 다시 깨달았다.

소 거간꾼들의 화톳불도 불기운이 강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생나무에 불이 붙었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을 때 타인의 마음에도 불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대자는 그 이야기를 남김없이 강도에게 들려주고는 죽어버렸다.

강도는 그 시체를 매장하고 대자가 가르쳐 준 대로 생활하며 대자와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내가 지금껏 무사히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지나가던 타인의 사랑과 측은지심 덕분이었다.

나도 기꺼이 사랑을 나눠주는

지나가는 타인으로서 살고자 한다.


Leo N. Tolstoy(1828-1910) 톨스토이는 니콜라이 일리치 백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으며, 카잔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다가 인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억압하는 교육방식에 환멸을 느껴 중퇴했다. 젊은 시절의 톨스토이는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였으며, 특히 도박과 성욕의 유혹에 굴복한 후 처절한 환멸을 맛보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톨스토이는 말년까지 이런 모순적인 모습 때문에 괴로워했으나 반면에 작품과 사상의 원동력으로 삼아서 작품활동을 해나갔다. 1851년에 형을 따라 육군장교로 입대해서 체첸공격에 가담하기도 했으며, 1858년 귀향해서 농민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다. 또한 러시아에서 농노제가 폐지되기 전에 톨스토이는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영지에서 농노제를 폐지하는 계몽실험을 벌였다가 실패했다. 톨스토이는 당대의 지식인이나 상류층과의 교류를 불편해했고, 농민의 소박한 삶에 대한 존중과 농민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작품에 담았다. 1862년에 34세의 톨스토이는 18세의 소피아 이슬레네프와 결혼해서 8남매를 낳았으나 이상주의자인 톨스토이와 현실주의자였던 소피아의 성격차이는 극명해져서 톨스토이의 말년을 더욱 힘겹게 만들었다.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이며, 주요 작품으로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의 장편소설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 <<바보 이반>> 등의 중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등의 단편소설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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