Идиот by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이런 안다니 신사들은 이따금, 아니 어떤 특정한 사회계층에서는 꽤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모르는 게 없고, 그들의 오성과 능력이 지닌 어지럽고 요란한 탐구열은 막무가내 한쪽으로만 쏠리는데,
물론 이는 현대의 사상가가 할 법한 말을 빌리자면, 인생에서 더 중요한 관심과 견해가 결여됐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모르는 게 없다’는 말은 상당히 제한된 범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는 바로 학문에서 자신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타협과 목표에 도달하고자 했고 또 도달했으며,
심지어 오직 그것 하나만으로 출세한 학자, 문필가, 시인, 정치인을 보아왔다.
저는 사년 남짓 러시아를 떠나 있었습니다.
게다가 떠날 당시 저는 거의 정상이 아니었지요!
그때도 저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지금은 더더욱 모릅니다.
제겐 좋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사실 조언을 구해야 할 일이 하나 있긴 한데, 누굴 찾아가야 할 지 모르겠더군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밤낮없이 생각했죠.
나는 내 운명을 시험해보고 싶었고, 특히 어떤 순간엔 몹시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런 순간들이 종종 있죠,
특히 홀로 외로울 때엔 말입니다.
애초부터 나는 너를 결코 죄지은 여자로 보지 않았고 다만 불행한 여자로 여겼을 뿐이다, 라고 말해줬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녀를 위로해 주고,
또 그렇게 자신을 모든 사람보다 비천한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무척이나 설득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녀는 알아듣지 못한 것 같더군요.
단 한 가지 맞는 말은,
사실 내가 어른들과, 세상 사람들과, 성인들과 어울리길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그걸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과 어울릴 줄 몰라서입니다.
그들이 나하고 무슨 말을 해도, 나한테 아무리 친절해도, 그들과 함께 있으면 왠지 늘 거북했고,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와 친구들한테 갈 수 있다면 너무도 기뻤는데,
하지만 내 친구들은 언제나 아이들이었고, 그건 나 자신이 아이여서가 아니라,
그저 내 마음이 아이들한테 무작정 끌리기 때문이었지요.
‘나는 이제 사람들의 세상으로 간다.
어쩌면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지 모르지만, 새로운 삶은 이미 도래했다.‘
나는 내가 할 일을 성실하고 의연히 수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어쩌면 내게 지루하고 괴로울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나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직접 겪기 전에는 판단하지 말라는 걸요.
당신은 악당이 아닐뿐더러
당신을 특별히 타락한 사람으로 여겨서도 안된다는 것을 이제 잘 압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그저 어디든 있는 가장 평범한 사람,
그저 성격이 무척 나약할 뿐 남들과 조금도 색다를 데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럼,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 건가? 맞아, 형제,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지. 말해봤자 헛소리야.
자네와 함께 있을 땐 그런 여자가 아닐 테니까. 그런 짓을 하는 걸 보면 오히려 자기가 몸서리를 칠 걸.
하지만 나하고 있을 땐 바로 그런 여자야.“
독창성의 결여는 먼 옛날부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착실하고 일 잘하고 실무적인 인간의 첫째가는 자질이자 최상의 추천서로 여겨졌고,
적어도 99퍼센트의 사람들이 늘 이런 견해를 품어왔으며,
단 1 퍼센트의 사람들만이 언제나 다르게 보았고 또 다르게 보고 있을 뿐이다.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따금 그들은 자기 가정에선
매사가 다른 모든 가정과는 어쩐지 딴판으로 흘러간다고 의심하곤 했다.
다른 모든 집에선 일이 술술 풀려나가는데 자기 집에서만은 왠지 매끄럽지 못하고,
다른 집들은 모두 궤도를 따라 잘만 굴러가는데 자기들은 걸핏하면 궤도를 이탈한다.
다른 집들은 언제나 예의 바른 소심함을 보여주는데, 자기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가족이 이를테면 무슨 창발성이 뛰어나거나 또는 의식적으로 독창성을 선호해서
궤도를 이탈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만약 그랬다면 전적으로 점잖지 못한 성향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말해 의식적으로 설정된 목적 같은 것은 정말이지 조금도 없었는데,
그래도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볼 때 예판친 가족은 대단히 존경받을 만한 가정이긴 했으나,
무릇 존경받는 가정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모습이었다.
요즘 들어서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는 모든 것을 오로지 자기 탓, 자신의 ‘불행한‘ 성격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녀의 괴로움은 커졌다.
그녀는 쉴 새 없이 자신을 ‘멍청하고 막돼먹은 괴짜‘라고 욕하면서 의심으로 자신을 괴롭히며 끊임없이 허둥댔고,
아주 대수롭지 않은 무슨 일에 부딪힐 때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늘 자신의 불행을 과장하곤 했다.
“여기 있는 사람은 죄다, 죄다, 당신의 새끼손가락만도 못하단 말이에요, 당신의 지혜, 당신의 마음씨에 죄다 미치지 못한다고요!
당신은 누구보다 정직하고, 누구보다 고결하고, 누구보다 훌륭하고, 누구보다 선량하고, 누구보다 현명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당신이 방금 떨어뜨린 손수건을 몸을 굽혀 주워들 자격조차 없어요…
대체 무엇 때문에 당신은 자신을 비하하고, 누구보다 낮은 위치에 자신을 세우는 거죠?
어째서 당신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왜곡하는 거예요,
어째서 당신에겐 자부심이란 게 없냐고요?“
“내가 정말 자네를 믿지 않는 줄 아나?
나는 자네가 하는 말을 모두 믿고, 자네가 한 번도 나를 속인 적이 없을 뿐더러 앞으로도 절대 속이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래도 난 자넬 좋아하지 않아.“
사람들은 이따금, 현실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기묘하고도 부자연스러운 꿈을 꾸곤 한다.
잠이 깬 뒤 당신은 그 꿈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어떤 기이한 사실에 놀라게 된다.
무엇보다 당신은, 꿈을 꾸는 동안 이성이 당신에게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왜냐하면 이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인생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연쇄에서
대부분의 경우 언제나 필요불가결한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평범한 인물들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바로 그들의 언제나 변하지 않는 평범함에 있다든가,
혹은 이 인물들이 어떻게든 평범함과 고착된 틀의 궤도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죽을 힘을 써도
결국엔 한평생 변함없이 그 틀 안에 머무르고 만다는 사실을 들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조차,
그들은 그들 나름의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전형성을 얻게 되니,
다시 말해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자신 그대로 머무르려고 하지 않고,
그럴 만한 아무런 자질도 없으면서 독창적이고 독자적인 인간이 되고자 발버둥치는 데에
범인으로서의 특징이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대단히 많으며, 심지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다.
이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주된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시야가 좁은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훨씬 영리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첫 번째 부류가 더 행복하다.
시야가 좁은 ‘평범’한 사람에겐 이를테면 자신을 비범하고 독창적인 사람이라 여기고
아무런 주저 없이 그것을 즐기는 일만큼 쉬운 게 없다.
순진한 교만, 자신과 자신의 재능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 어리석은 인간의 이 신념.
첫 번째 부류의 특징인 순진한 교만의 전형은 고골이 그려낸 피로고프 중위에게서 탁월하게 제시되었다.
피로고프는 대단한 자기만족에 빠진 인물인지라,
한 해 한 해 ‘승진 궤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그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견장이 더욱 두꺼워질 것이고,
그리하여 마침내 굉장한 존재, 이를테면 사령관이 될 수 있으리라고 공상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을 테니 말이다.
아니, 공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니,
장군으로 승진하는 이상, 사령관으로 임명되지 못할 게 뭐 있겠는가?
그리고 이런 인물 중 얼마나 많은 자가 나중에 전쟁터에서 무서운 실패를 저지르고 마는가?
또 우리의 문인들, 학자들, 계몽의 사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피로고프가 있었던가?
나는 ‘있었던가‘ 라고 말하지만, 지금도 그런 인간들은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첫 번째 부류보다 훨씬 불행하다.
이 영리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에겐 결코 그처럼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말년에 이르러 간장이 다소 나빠질 뿐, 그게 전부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운명에 복종하기까지,
이 부류의 인간들은 젊은 시절부터 인생의 순종적인 말년에 이르도록
더러 어리석기 그지없는 몸부림을 대단히 오랫동안 치곤 하는데,
이 모두가 독창성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이런 양반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기들이 무엇을 발명하고 발견해야 하는 것인지,
한평생 대체 무엇을 발명하고 발견하고자 하는 것인지, 화약인지 아메리카인지,
죽는 날까지 실제로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데 있다.
사실 그렇죠.
우리는 우스꽝스럽고, 경솔하고, 나쁜 습관에 젖어 있고, 권태로워할 뿐 아니라,
무엇을 제대로 볼 줄도 모르고 이해할 줄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스꽝스럽다는 것은 때에 따라선 오히려 좋은 일이며, 그편이 오히려 낫습니다.
서로를 더 빨리 용서하고 더 빨리 화해할 수 있으니까요.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순 없고, 완전한 상태로부터 바로 시작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너무 빨리 이해하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여러분이 이미 그토록 많은 것을 이해했고 또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당신을 백치라고 부르는데 동의하지 않거니와,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분노해요.
당신은 그렇게 불리기엔 너무 현명하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모든 사람과 다르다 할 만큼 색다른 분이에요.
이건 당신도 인정해야 할 겁니다.
내가 내린 결론으로는, 지금까지 발생한 이 모든 사건의 기초는,
첫째로 당신의 이른바 선천적인 무경험과 당신이 지닌 보기 드문 순박함, 또 더 나아가 적정선에 대한 감각의 극단적 결여,
그리고 끝으로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신념의 거대하고도 혼란스러운 누적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직접 겪기 전에는 판단하지 말라.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마린스키 빈민병원 의사였던 미하일 안드레예비치 도스토예프스키의 둘째 아들로 출생했다. 1838년 페테르부르크 군사아카데미의 공병학교에 입학하지만 러시아 문학과 유럽 문학에 심취해 창작과 번역활동에 주력했다. 1846년 중편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해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새로운 고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849년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발언과 벨린스키의 금서를 읽은 탓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처형 직전에 감형되어 시베리아에서 4년간 수형생활을 하면서 심각한 뇌전증 발작을 겪었다. 1864년 ‘죄와 벌’, 이후에 ’악령‘,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을 꾸준히 출간했다.
위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가 평생 숙고한 종교적, 철학적 성찰과 작가적 역량이 집대성된 걸작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