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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 열린책들(2019)

阿Q正傳 by 魯迅

by 앨리의 정원

작가 - 루쉰, 역자 - 김태성



[외침]


나도 젊은 시절엔 많은 꿈을 가졌다.

그것이 어떤 꿈이었는지 나중에는 대부분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결코 애석하게 여긴 적은 없다.

흔히 추억이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고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적막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신상의 실오라기>로 이미 지나간 적막한 세월에 붙들어맨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나는 완전히 잊어버리지 못해 괴롭다.


그저 그럭저럭 먹고사는 가정생활에서 갑자기 하층 수준의 생활로 전락해 본 적이 있으신가?

그러하면 아마도 그런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N시에 있는 K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아마 무언가 다른 출구를 찾아 타향으로 도망가

다른 종류의 인간들을 만나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낯선 사람들 가운데서 혼자 아무리 외쳐도

그들이 찬성도 반대도 없이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을 때는

어쩔 수 없는 법이다.

나는 마치 막막한 황야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무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얼마나 큰 슬픔인가!

결국 나는 내가 느낀 이런 감정이 적막이라고 생각했다.



[고향]


배 밑바닥에 철썩철썩 부딪히는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가 나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생각했다.

나와 룬투는 결국 이렇게 멀어지고 말았지만 우리 후세는 아직도 함께 어울렸다.

홍얼이 지금 쉐이셩을 그리워하지 않는가?

나는 그 애들이 다시는 우리처럼 서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또 그들이 함께 어울리려고 나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고달픈 생활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 다른 사람들처럼 괴로움으로 방종한 생활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새로운 생활을 가져야 한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것을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사실 땅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죽음을 슬퍼하며]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즈쥔을 위해, 또 나를 위해 나의 회한과 비애를 적어두고 싶다.

이미 잊힌 회관 한 구석의 내 낡은 방은 이렇게 조용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세월은 정말 빠르다.

내가 즈쥔을 사랑하고 그녀를 의지하면서 이 적막과 공허에서 도망친 지 벌써 만으로 한 해가 되었다.

세상사는 또 무척이나 공교롭다.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뜻밖에도 빈방이라고는 또 그 방 한 칸뿐이었다.


우리는 이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함께 길을 걸을 수 있었고 공원에도 몇 번 갔지만 살 곳을 찾으러 다닐 때가 가장 많았다.

나는 길거리에서 가끔씩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비웃으며 멸시하는 경멸의 눈초리를 느꼈다.

조금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이런 눈길에 온몸이 움츠러들기 때문에 나는 오만과 반항심으로 버티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그녀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고 이런 일들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다.

의젓하게 천천히 걸어가는 품이 마치 태연하게 무인지경으로 들어서는 것 같았다.


평안과 행복이 함께 응고되어야만 영원히 이렇게 평안하고 행복할 수 있다.


인간이란 참으로 우스운 동물이라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심각한 영향을 받곤 한다.


나는 즈쥔에게 진실을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 이상 나는 그녀에게 영원히 나의 거짓말을 바쳤어야 했다.

진실이 아무리 고귀하다 해도 그것이 즈쥔에게 심각한 공허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물론 거짓말도 일종의 공허다.

그러나 종말에 이르면 기껏해야 무거움과 침울함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허위의 무거운 짐을 짊어질 용기가 없었던 탓에 오히려 그녀에게 진실의 무거운 짐을 지우고 말았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 뒤로 이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위엄과 냉대 속에서 이른바 인생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녀의 운명은 내가 준 진실에 의해 결정되어 버렸다.

사랑없는 인간은 죽고 마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삶의 길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뎌야만 했다.

나는 진실로 마음의 상처를 깊이 감추고 묵묵히 전진하고 싶었다.

망각과 거짓말을 나의 길잡이로 삼고.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책상에 꽂혀있던 신기한 이름의 책.

이 책이 선생님께 사랑받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루쉰(1881-1936)은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사상가로서, 1881년 중국 저장성 사오싱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전통적인 한문교육을 받던 루쉰은 할아버지가 과거시험 부정으로 투옥되고, 아버지가 사망한 후 가세가 기울어 학비가 무료인 난징의 한 학당에서 공부했다. 이때 루쉰은 서양문물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서양문물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루쉰은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러일전쟁 뉴스에 비친 중국인의 무기력한 모습에 절망과 분노를 느껴 자퇴하고 문예활동을 시작했다. 이 무렵 동유럽 문학과 슬라브계 민족의 저항시에 큰 관심을 갖게 된 루쉰은 1918년 잡지 <신청년>에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문화혁명을 촉발시켰다. 1926년 군벌 정부의 탄압으로 베이징, 광저우, 상하이 등을 떠돌며 당대 작가들과 혁명 문학 토론을 벌였던 루쉰은 1936년 폐결핵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소설, 에세이, 비평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해서 중국의 시대정신으로 추앙받았다. 주제와 서사, 수사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루쉰의 작품들은 삶의 경험을 소재로 한 그의 인생역정을 그대로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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