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졔 Dec 20. 2023

아주 작고도 사소한 습관이 있나요?

무의식적인 습관 의식적으로 분석해 보기

사람은 모두 습관에 따라 움직인다. 그 습관은 새로 생겨나기도, 사라지기도 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혹은 처음부터 무의식적으로 행해진다는 것이다. 


 나도 여러 습관들을 가지고 있다. 좋다고 생각되어 평생 함께 살아가고 싶은 습관부터, 아주 싫어서 얼른 고쳐버리고 싶은 습관까지. 


 오늘은 나의 그 습관들 중에서 저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도 왜 그러는지 모르는 하나의 작은 습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음료를 마실  나는 대부분 끝까지 마시지 않는다.” 


 나는 특히 카페에서 음료를 시켜서 마실 때, 전부 다 마시지 않는다. 마시지 않는 것인지, 마시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데에 열을 내다가 음료를 마시는 것을 잊을 때도 있지만, 혼자 있을 때도 꼭 마지막 몇 모금은 남긴다.


 사실 이 습관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 덕분에 내가 그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넌 꼭 이렇게 남기더라.’라는 말로, 지난 연인은 내가 남긴 음료를 가져가 마시는 것으로 알려주었다지.


 왜 나는 마지막 몇 모금은 꼭 남겨 두는 걸까?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보았다.



1.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 이건 맞다. 나는 어떤 것의 ‘시작’에는 굉장한 호기심과 열정을 보이는 반면, 끝까지 그 열정을 끌고 가는 뒷심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성공시키고자 하는 일일수록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하자.’라는 다짐 하나로 시작하곤 한다. 영화도, 책도 보다가 재미없으면 그만둔다. 정말 어렸을 때는 시작한 영화는 눈을 비벼가면서라도 끝을 보고 자고, 시작한 책도 꾸역꾸역 마지막 장까지 읽었었다. 그러면서 ‘한 번 시작하면 어떻게든 해내는 나’ 에심 취해 있었다.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끝장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꽤나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일 년에 하나 하면 다행일까? 그래서 그렇게 목표로 잡은 행위 외에는 딱히 끝장을 봐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않았다. 그중 가장 부담을 내려놓았던 것이 ‘먹는 것’이었다. 식판에 밥을 받아오면 무조건 다 먹어야 한다는,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면 아까우니 웬만하면 다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오다 2020년 정도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며 남기는 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끝장을 봐야 하는 카테고리에 음식을 포함시키지 않게 된 것이다.  


2. 따뜻한 음료가 식거나 차가운 음료가 미지근해진 것이 싫어서 


- 이것도 맞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커피는 식은 따뜻한 아메리카노이다. 혹은 식은 따뜻한 차. 처음의 그 온도를 계속 유지해 줄 수는 없는 걸까, 음료도, 사람도. 뭐 사실 나부터 항상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긴 하다만.


3. 음료를 싹싹 비워 마시고 나면 괜히 기분이 안 좋아서


- 이건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부터 생긴 기분이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다 보면 에스프레소가 아래로 내려가서 다 마셔갈 때 즈음에는 컵 바닥에 에스프레소가 조금 쌓여 있다. 아지랑이처럼 퍼져 있는 에스프레소를 보면 너무 쓸 것만 같아 고 부분은 마시지 않고 싶다. 그리고 실제로는 안 쓰더라도, 싹싹 비운 음료가 담겨 있던 컵을 보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나 자신이 약간 허겁지겁 밀어 넣는 돼지같이 느껴진다. 혹은 갈증에 허덕이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이상하게 음식이 담겨 있던 접시가 비워진 것과 다른 느낌이다.    




 써 놓고 보니 좀 우습기도 하다. 습관 하나에 이렇게 진지하게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이. 


 결론은, ‘그냥 그러고 싶어서’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쓰기 전까지는 고치고 싶은 습관 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었는데, 하나하나 뜯어서 생각해 보니 음료를 조금 남기는 습관은 나의 정신건강 및 만족감을 위한 행위였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습관이 나를 지탱하고 있는 습관 중 하나였다니. 갑자기 나의 이 사소한 습관이 너무 예뻐 보이네.  


 당신은 어떤 사소한 습관을 가지고 있나요? 

 어쩌면 그 사소함이 당신을 지탱해주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 작고 어여쁜 습관이 말이에요. 






이전 03화 여자가 술도 좀 마시고 그래야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