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 대하여

아이팟 클래식(iPod Classic)

by 데이지


아이팟(iPod: 애플에서 만든 휴대용 미디어 재생 기기)에 대한 동경은 핀터레스트(Pinterest: 이미지 공유형 소셜 미디어) 감성 사진을 수집하면서부터 자연스레 생기게 되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사진 속 소품들 중 빈번하게 모습을 내비치는 아이팟의 자태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지금 저 아이를 당장 갖지 않으면 내 일상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이미 오래전에 단종된 기기이다 보니 미개봉 제품을 사는 건 웃돈을 주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기에 바로 중고 거래 사이트 접속하여 적당한 매물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동시에 옛 것을 그리워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일까? 무선 이어폰 시장이 요동치는 이 시기에 줄 이어폰을 꽂아 사용하는 낡은 디지털 기기의 중고 가격대가 생각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었고 판매 게시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엄청났다. 키워드 알림을 등록해 놓고 마음에 드는 매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고 몇 주간의 노력 끝에 내 품에 들일 수 있었다.


외관만 봐도 배가 부른 것도 잠시, 빨리 실사용을 하고 싶은데 기기에 집어넣을 음원 파일이 없었다. MP3 플레이어의 황금기를 같이 보낸 내가 시대에 적응해서 살다 보니 어느새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게 익숙해져 버렸고 차곡차곡 모아뒀던 음원 파일들도 세월에 휩쓸려 어디론가 떠내려가 버렸다.

‘우선 100곡만 넣자’

MP3 1곡 개별 구매가 700원, 내가 마지막으로 음원을 다운로드했던 시절엔 한 곡당 5-600원이었던 거 같은데 물가 상승률 대비해 많이 오르진 않은 것 같다. 개별 구매보다 매달 MP3 전용 이용권을 구매하는 게 더 저렴해서 당장 100곡은 다운 받지 못하더라도 이용권을 결제하기로 했다. 우선 이번 달은 30곡을 다운받을 수 있었다.

신중해졌다. 단문 문자 90자를 꽉꽉 채워서 보내던 때와 비슷한 기분이랄까? 요즘 한 곡 반복을 자주 하고 있는 음악과 더불어 평소 좋아하는 음악들 위주로 30곡을 간신히 추렸다. 음원을 다운 받고 아이팟과 컴퓨터를 USB 케이블로 연결하여 동기화 시켜주는데 이 과정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렇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전원을 켜고 제일 상단에 있는 곡을 눌러 재생시켰다. 줄 이어폰에서 음악이 재생되기 전, 기기에 내장되어 있는 하드디스크 작동하는 소리가 먼저 나를 마중 나왔다. 분명 음원 출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최신곡인데 이 오래된 기기에서 재생을 하니 마치 예전부터 존재하던 노래처럼 느껴졌다. 한동안은 이 재미에 꽂혀서 모든 음악을 아이팟으로 들었는데 2년 정도 지나니 점점 듣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래도 새로운 버릇이 하나 생겼다. 누구에게도, 그 어떤 알림에도 방해받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는 아이팟 하나만 손에 들고 소파에 반쯤 걸 터 누워 음악만 듣는다. 가끔은 모든 일을 하나의 기기로 할 수 있는 스마트폰보다는 그냥 그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기기가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났다.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처럼 옛날 물건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이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 같다.


디지털 기기에도 아날로그가 존재한다.

그리고 클래식은 영원하다.




| 낡음의 미학

손때 묻은 물건들을 소개합니다.


데이지

사진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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