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목줄을 풀고 알을 깨는 행위다. 새로워지려는 발악이다.
그러므로 여행한다.
난 그때보다 지금 더
여행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일 년 사철 메여있어야 하는 농사라는 생계수단 때문에,
회사에 눈치 보여 신혼여행도 제대로 다녀오지 못하던
붙박이, '정주형 삶'을 사시던
우리 조부모님, 부모님 세대와 달리
우리는 이동의 맛을 알아버렸다.
이제는 인생을 걸어도
집과 땅을 소유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더 찬란한 미래를 위해 지금, 오늘을 희생하는 삶은 무가치하니,
알뜰살뜰 모으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탕진하자는
소확행, 욜로 마인드가 아니다.
코로나19 전에 경험한 크고 작은 여행들을 통해
이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의 가치를 맛보았기에
상황이 이렇다고 안 보고 안 들은 셈, 없는 셈 칠 수 없는 것이다.
"경험이 최고의 자산이다."라는 명제가 참인지 굳이 검증할 필요가 있을까?
여행을 더 자주, 멀리,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건
그만큼 비례하여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쌓는 행위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보통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공부를 통한 학위 취득,
일을 해 금전적 보상을 얻는 행위만큼이나
우리에게 이동은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고 믿는다.
경험과 지혜가 체계적으로 자 산화되었을 때 진정한 경쟁력을 가진다. 나만의 경험사례는 story-telling 형식으로 정리하여 그 배경과 성공요인 등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다면 최고의 간접경험 매뉴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자산 화하는 것이야말로 나이가 들면서 더 큰 가치를 발할 수 있는 최고의 투자다.
나와 다른 가치관, 의식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야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사람은 비교할 때 가장 빨리 이해하니까.
그러나 해외에서 만난 정말 생소하다 못해 자극적인 광경에 길들여져
우리나라의 멋을 알지 못했다.
코로나 시국에 여기저기 다녀보니
내가 나고 자란 나라라 하기가 무색하게 모르는 것투성이고,
나와 다른 결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보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다.
내 삶의 공간과 시간, 관계를 재정의 하는 것도 여행의 방법이다.
이제는 집과 회사 등 고정된 공간뿐 아니라
이동하는 지하철과 버스 안 자주 찾는 카페 등
오래 머무르지는 않지만, 의미가 있는 공간들이
삶의 중요한 페이지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매 순간을 잡으며(Seize the Moments) 음미하는 일상의 여행,
이미 인스타그램에서는 그런 시도들이 무수히 축적되어 있다.
살아온 날들만큼의 여행의 기회가 있었지만, 마땅한 수확이 없었다.
공부하지 않았고 배우려 하지 않았다.
다름을 관찰하고, 생각하고, 더 나은 삶, 좀 다른 삶을 추구하지 않았다.
겸손하지 못했고, 유들하지 못했다.
책상에 앉아만 있고, 딴짓을 한 것이다.
여행만큼 기회비용이 큰 행위가 없는데도
그 시간을 통해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
아는 것 하나 없이 겉만 번지르하고
스스로 닳고 달았다고 느끼면서도
알을 깨지 못했다.
변화에 민감하고, 새로운 사실에 환희를 느끼는 순수한 마음과 겸손한 태도는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다.
아이 같은 마음을 가장 갈구하게 된다.
좋은 피부, 건강한 몸은 돈과 시간을 좀 투자하면 어느 정도 얻을 수도 있지만,
마음은 그럴 수가 없다.
나이 든 사람들의 모든 불행은,
어제와 오늘의 삶이 다르지 않고
맺고 끊임 없이 연결되는 '지루함'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 들고 싶지 않다.
지루한 게 싫다.
그래서 여행을 쉬지 않는다.
여행은 결코 소비로 끝나는 행위가 아니다.
때로는 나와 다름을 만나는 행위를
돈 벌고 공부하는 상업적인 가치 위에 두게 될 때가 많다.
아무리 바빠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가치다.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살아갈 재미를 느끼지 못해 그렇다.
아니, 그보다도 떠났다 돌아오면 한가득 얻어오기 때문이다.
독서와 여행은 보상이 확실하다.
보고 들은 인풋이 신선하고 매력적이어야
내 생각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가장 날 선 최신의 것을 만나야
내 일도 푸릇푸릇하고 생각도 영민해진다.
세상은 저어만치 가는데
나만의 성을 쌓고 소꿉놀이하는 건 싫다.
그런 삶을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내 성향이 아니다.
살아있고 싶다. 깨어있고 싶다.
언제든 새로움을 만나고 변화될 준비가 되어있는
말랑말랑한 상태를 말한다.
여행은 티켓과 숙소를 예약하고 일정을 짜고
짐을 꾸리고 며칠 몇 시부터 시작되어
얼마 후에 종료되는 에피소드가 아니다.
새로운 자극을 갈망하는 순간,
그 자극으로 내 삶이 좀 달라져 가는 과정,
떠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다름에 대한 목마름은 커져간다.
매일 정기적으로 먹어도 마셔도 잠을 자도
인간이면 누구나에게 배고픔과 목마름 졸림이 또다시 찾아오듯
여행은 삶의 일부다.
새롭게 되고자 하는 열망은 선하고 아름답다.
신선하고 아삭하다.
여행은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행위다.
사람은 결국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
익숙한 공간과 관념을 탈출하지 않으면 그 세계에 갇힌다.
자주 목줄을 끊고 알을 깬다.
그러므로 여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