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에 들어서기 전,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라.
문(gate)으로 번역된 שׁער [sha‛ar ; 샤아르]는
여닫는 문이 아닌
특정 방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뜻한다.
남성 명사형 단어인 샤아르와
발음만 약간 다른
샤아르의 동사형 단어 שָׁעַר [shâ‛ar ; 샤아르]는
'열다'라는 뜻으로
여기에서 문을 여는 문지기가
누구를 통과시킬 것인지 확인하고 조사하여
통과시킨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생각하다'라는 뜻으로도 번역된다(잠23:7).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방으로 벽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여섯 규빗 길이의 측량하는 갈대를 잡았는데 각 규빗은 보통의 한 규빗에 한 손바닥 너비를 더한 것이라 그 벽을 측량하니 두께가 한 갈대요 높이도 한 갈대며 (겔40:5)
-Now there was a wall, all around the outside of house, and in the man's hand a measuring reed six cubits long, each cubit a cubit and a handbreadth. So He measured the thickness of the structure, one reed; and the height, one reed.
-והנה חומה מחוץ לבית סביב סביב וביד האישׁ קנה המדה שׁשׁ־אמות באמה וטפח וימד את־רחב הבנין קנה אחד וקומה קנה אחד
성전의 문은 아무나 통과할 수 있는 문이 아니었다.
문지기가 그 문을 통과할 자격이 있는지 측량해
합당하다 인정받은 사람들만 통과할 수 있었다.
이 관점을 통과하는 사람에게 적용해보면
다른 차원의 해석이 가능하다.
사야르 동사형인 '살펴보아 열다'라는 뜻은
'성문 위에서 쳐다 보다' 라는 뜻이다.
성문을 통과하려는 이를 미리
위에서 내려다 보고 그를 들일지 내칠지
결정을 내린다는
문지기의 시선까지 담고 있는 동사다.
이 성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가
이 단어의 의미를 깨닿는다면
성문을 무사히 통과 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나 자신을 성문 위에서
내려다 보는 사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현재의 나를 높이서 바라보고 관찰하는 것이다.
성문 위에 서면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성문을 지나기 위해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샤아르는
신전의 문 위에서 거룩한 신전으로
들어가려는 나 자신을
'관조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생각'의 의미와 만나는 지점이다.
문은 갈대(reed)로 만들어졌다.
갈대를 뜻하는 קנה [qâneh ; 카네]는
'갖다, 얻다, 사다, 만들다'라는 뜻의
동사형 단어 קנה [qânâh ; 카나]에서 유래된
남성 명사형 단어다.
히브리어 어원으로 본 갈대는
단순히 갈대라는 이름의 식물 뿐 아니라
창조자께서 소유하고자 하는 것을
'측정하시는 단위'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흐르는 생각이 아닌
자나 저울로 재듯,
평가하고 단속하는 의미로의 생각에 가깝다.
지향하는 목표를 향해 전진하도록
매 순간 내 행보를 판단한다는 의미가 짙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삶의 여정 가운데 잠시 멈춰서서
지금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 지를
정교하게 헤아리는 훈련이다.
- 배철현 교수님의 <심연> 31페이지를 조금 더 들여다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