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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Sep 05. 2024

부모가 된다는 건

태국 방콕에서 만난 지트라

*글에서 나온 호스트는 여행자커뮤니티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호스트입니다. 



푸껫에서 수도 방콕으로 넘어오니 

태국 최대 명절인 송크란 연휴 날이 찾아온다. 

방콕 거리 곳곳은 송크란 축제를 즐기기 위해 무장한 사람들로 즐비하다.


여행자 거리 까오산 로드에서 한껏 즐긴 송크란 축제


여행자 거리로 유명한 까오산 로드는 홀딱 젖어있는 이들로 떠들썩하다. 

배낭여행자인 나도 한껏 송크란 축제를 즐긴다. 


방콕 송크란 축제 이야기 ▶ [나의 데이지] 태국 I 살갗을 스치는 물결을 느껴


축제가 끝난 뒤, 전날 밤의 광란의 공기는 온데간데없고 거리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한바탕 축제를 즐긴 뒤,

침대에서 게으름을 한참 피우는데 방콕 호스트 지트라가 내게 묻는다. 


"데이지, 명절을 맞아 고향에 다녀올 건데, 같이 갈래?"


국가 휴일을 맞아 지트라 가족과 함께 

방콕에서 한 시간 떨어진 지트라의 고향(Nakhon Pathom)으로 가려는 가족들은 떠날 준비를 한다.

느릿한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빠르게 나갈 채비를 하며 말한다.


"당연하지!"


지트라의 고향(Nakhon Pathom), 지트라 부모님의 집이다.


지트라의 고향은 

방콕과 불과 한 시간 거리지만,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간격이 두고 위치한 1층짜리 주택들은 조그만 마을을 이루고

각 가정이 갖는 나무 농장이 드문 드문 보인다.

우린 상다리 부러질 듯한 밥을 먹고

근처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온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문을 통해 살랑살랑 들어오는 자연 바람을 맞는다.

배부른 배와 함께 찾아온 선잠의 달콤함을 음미하며 여유를 즐기니

지트라는 자신의 앨범을 꺼내와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낸다.


"어렸을 적에는 밤에 불이 켜지지 않아서 등을 켜서 공부했었지.

마을 자체가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어.


내가 장난감을 갖고 싶었다면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 했어.

바나나 잎, 나무들로 만들었지. 모든 것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 했지.

재밌었어(웃음)"


지트라의 모습. 데이지 꽃을 들고 있다.

그는 집에서 몇 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유일했던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교육적 시설이 없던 마을이기에, 

학교에서도 영어 선생님이 없어 체육 선생님께 영어를 배우곤 했다. 


"집에서 나는 제일 어렸기에 친척들,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어. 

동시에 혼자서 마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지. 

자유가 없었어. 


책만이 유일하게 나를 세계로 보내는 친구였어."


혼자서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던 그에게

다른 세계를 알려준 것은 오로지 책이었다.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조그만 도서관 안의 모든 책을 다 읽곤 했지.

놀러 다니고 콘서트를 보기보다 책 읽는 걸 더 좋아했어. 소설을 굉장히 좋아했어."



책이라는 세계를 접한 뒤, 

그는 온종일 학교 내의 도서관을 왕래했다. 

그에게 도서관의 모든 책을 읽는 건, 

세계를 여행하는 방식이었다. 



털털털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과 함께

그의 말을 물끄러미 듣던 중에 나는

밀려오던 선잠을 털어낸 뒤 자세를 바로 잡으며 말한다. 


"지트라! 너의 삶을 더 들려줘!"





망고 나무에서 망고를 능숙하게 따며 건넨다.

"어렸을 때 나는 꿈이 없었어. 

말했던 것처럼, 나의 마을은 아주 작았잖아. 

내가 아는 직업은 간호사, 의사, 선생님뿐이었어. 

딱히 꿈이 없었기에 마을 모두가 나보고 똑똑하다며 의사가 되라고 해서, 난 내가 의사가 될 줄 알았어. 

후에 마을 사람들은 내가 정부에서 일하길 원하셨지. 




책과 친구가 된 그는 방콕에 있는 쭐랑롱꼰(Chulalongkorn)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당시 태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대학이다. 

마을 이장이던 아버지는 지트라가 정부를 위해 일하기를 원했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그는 정치학공부를 시작했다. 


"남들이 정해놓은 꿈이 사라지고 나니까

이후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


방황하던 그에게 대학은 새로운 지평이 열어주었다. 

교육봉사 등의 경험을 물론, 다양한 친구를 사귀며

그는 한 번뿐인 대학 생활을 즐겼다. 


"학과 내 대부분의 친구가 명품을 들고 다니며, 

구내식당이 아니라 비싼 식당을 찾는 거야. 

친구들이 자차를 몰고 다니는 모습은 그 당시 꽤나 충격적이었지."


그 속에서 그는 자신의 길을 열심히 나아간다. 

친구들과 달리 가족에게 보낼 돈과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하기에

전화교환원으로, 정부 부처 직원으로 생계를 벌었다. 


지트라와 가족들

일하면서 만난 지금의 남편과 함께 회사를 차린 그는 

그로부터 5년 뒤, 소중한 아들을 갖게 된다. 


정신없이 지내온 삶은 지트라에게 '엄마'란 직책을 부여했고

엄마라는 역할은 세월을 그 무엇보다 빠르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책을 파고들던 꼬마 소녀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되어 아들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아들아,

너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해. 


다른 이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네가 해야 하는 좋은 일을 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야.”



대도시에서 공부하고 의젓하게 생계비를 벌던 학생시절을 보내고

두 아들을 둔 강한 엄마의 모습이 된다. 


그의 삶에서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굴곡은 

엄마라는 이름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엄마라는 이름 앞, 

지트라는 무엇이 그를 살아오게 했을까.

그의 삶을 듣던 중에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나의 두 아들이야. 
나의 아들, 나의 가족이 각자의 삶에서 행복해지는 거야. 
사회가 더 나아지길 바라고, 
사회를 이루는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그는 뒤이어 말을 덧붙인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지금 내 열정은 오래되었어.

코로나 이후는 완전히 없어졌다고 볼 수 있지.

코로나 전에는 상대적으로 동창회도 가고 활동적이긴 했는데,

완전히 에너지를 잃은 느낌이야.


지트라의 두 아들. 지트라 삶의 이유


그러나 코로나 이전에도, 이후에도

매일 내 삶은

나의 아들,

나의 남편,

나의 어머니,

나의 가족이야."






태국 방콕에서 맞이하는 일몰

여행을 시작한 뒤

사람들에게 삶의 이유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언제나 삶의 이유는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해 온 나는


'내 가족'이라는 지트라의 답변은

내게 조그만 충격을 주었다.



나도 모르게 받은 충격의 이유를 곱씹는다.


삶의 이유가

내 안이 아닌, 다른 이에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가족이란 존재가

나의 존재 자체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이기에

그것이 기정 피가 섞인 존재이더라도

삶의 이유가 타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나는 한 번도 고려 사항에 넣지 않았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내 삶을 온전히 타인의 삶으로 맞추고

내 존재를 온전히 타인의 존재를 통해 받아들이는 걸

이해하는 순간인 걸까.


훗날 많은 이들에게서

지트라와 같은 답변을 듣고 나서

조금씩

조금씩

그들을 공감하기 시작했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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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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