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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Sep 09. 2024

이 순간에도 미얀마에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

태국 방콕에서 만난 엉

송크란 축제 이야기 ▶ [나의 데이지] 10화 : 살갗을 스치는 물결을 느껴



송끄란 축제 기간을 맞추어 방콕으로 갔다.

어릴 적 텔레비전 너머로 보았던 여행자의 거리, 까오산 로드가 내 눈앞에 펼쳐진다.

송끄란 축제를 하루 앞두고 까오산 로드는 이미 사방에 물줄기로 가득하다.

수많은 이들이 까오산 로드 위에서 물총을 장전하며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을 만끽한다.


정신없는 인파를 뚫고 엉과 친구들을 만난다.

시끄러운 소음을 뚫고 짧게 인사를 나눈다.

서로의 무기를 확인한 전사는 조금씩 전투 거리로 행진한다.

한 걸음 내딛는 전사의 살갗을 수많은 물이 스쳐 간다.


엉과 다른 친구는 모두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다.


전사들은

차가운 물에 소리를 지르고

함께 노래 부르며

흥에 겨워 춤을 춘다.


서로의 젖은 모습을 보고 웃기도 하고

시원한 맥주병을 사이로 짧게 삶을 공유한다.


스피커 넘어 고동치는 음악은

우리의 목소리를 잠식하더라도

우린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엉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데리고 와 

다음날 축제에도 나와 함께한다.


우린 모두 어김없이 축제에 온몸을 맡기지만,

엉은 고동치는 EDM 소리 너머 자신의 삶을 조금씩 보여준다.


어제는 온전히 리듬에 몸을 맡겼다면,

오늘은 조금씩 서로에게 시간을 맡긴다.


엉의 어린 시절




엉은 미얀마에서 태어나 군부 독재 속에서 엘리트층에 속해온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말하곤 한다.



"군부 권력에만 잘 보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었지.

미얀마를 흔히들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속한 계층에서는 부족한 거 없이 뭐든 다 했어."




출처: The New York Times

*미얀마 군부 독재


1886년부터 영국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아온 미얀마.
1948년 '버마 연방'이란 이름으로 독립했다.
그러나 국립운동가이자 국방부 장관이었던 네 윈1962년 쿠데타를 일으키며
26년간 군부독재가 진행된다.
이에 1988년에 혁명이 일어나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고,
무렵, 독립 영웅 아웅산의 딸,
아웅 산 수치가 민주화를 위해 정치에 뛰어든다.
이후 2020년 아웅 산 수치 당이 정권을 투표로 잡았지만, 군부는 부정선거라고 말하며 아웅 산 수치를 15년간 가택 연금한다.
2021년 군부 쿠데타가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군부 독재가 이어지고 있다.



축제 속 끊임없이 요동치는 강렬한 EDM을 뚫고

그는 큰 소리로 내게 말한다.


"젊은 시절의 나는 참 어리석었어.

나는 내가 가진 권력으로

온갖 유흥을 찾아다니며 젊은 날을 다 보냈지.

사회가 말하는 온갖 나쁘다는 짓은 아마 다 해봤을 거야.

매일 술을 마시고, 클럽에 가며, 여자와 노름하기에 바빴지."


엉의 어린 시절

번쩍이는 클럽의 조명은 엉의 얼굴을 비추고 빠르게 사라진다.

나도 그에게 소리가 닿길 바라며 소리친다.


"(웃으며) 지금도 술잔을 잡으면서 클럽에 있잖아.

나이가 들면서 무상함을 느낀 거야?

무엇이 너의 생각을 바꿔놓은 건데?"


"지금은 축제니까 즐기러 온 거지만,

젊을 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는 멍청이였어.


나이가 든 것도 한몫했겠지.

그렇지만, 군부에만 잘 보이면 되는 그곳이 싫어지는 순간이 오더라.

그곳은 군부에 조그만 것만 잘못하면 바로 죽음이야."


사진: Unsplash의Pyae Sone Htun

미얀마 군부 독재가 시작된 이래

군부의 폭력으로 구금된 사람 약 2만 명.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 약 260만 명.

군부는 3년 동안 8만 채가 넘는 집을 불태웠다.

많은 이들은 자신을 위해, 마을을 위해, 가족을 위해 무기를 들고 거리를 나갔다.


엉은 군부 세력의 온실 속에 있다

무장 군인에 맞선 젊은이들을 지나쳐

태국 방콕으로 도망 나왔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반기를 들고 죽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단 말이야."


미얀마 군부 독재가 시작된 이래

군부의 폭력으로 구금된 사람 약 2만 명.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 약 260만 명.

군부는 3년 동안 8만 채가 넘는 집을 불태웠다.


많은 이들은 자신을 위해, 마을을 위해, 가족을 위해 무기를 들고 거리를 나갔다.


엉은 군부 세력의 온실 속에 있다

무장 군인에 맞선 젊은이들을 지나쳐

태국 방콕으로 도망 나왔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반기를 들고 죽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단 말이야."



끝날 것 같지 않던 축제 뒤로 날이 밝아온다.

잠잠해질 기미가 없는 물총놀이는 밝아온 날에도 진행된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엉과 단둘이 남아 아침을 맞이한다.


까오산 로드 입구 길거리 포차에 아침을 먹으러 간다.



밤새 축제에 머물러 생긴 몽롱함에 정신을 붙잡으려 하는 동안

엉은 근처에서 음식을 가져온다.


아침 식탁에서 중간중간 끊긴 엉의 이야기를 다시 엮는다.

조금씩 연결된 실타래 위에서 엉에게 다시 질문한다.


"엉, 어느 시점부터 군부 세력에게 정이 떨어진 이유가 뭐야?"


엉은 새벽을 새운 피곤함은 온데간데없이

조금은 울먹인 목소리와 물이 고인 눈동자로 내게 말한다.



"우연히 길에서 아이들을 만났어.

아이들은 참 예쁘더라.

날 보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지.


아이들이 함께 밥 먹는 걸 지켜보는데

그 아이들에게 대포가 날아왔어.


환하게 웃던 아이들은 한순간에 사라졌어.

그들이 신던 슬리퍼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군부 세력이 증오스러웠어.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죽일 수가 있는 거지?


그들이 증오스럽고, 화가 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그래서 나는 태국으로 온 거야."



그의 눈망울을 보면서 나는 

씹고 있던 계란말이가 목에 턱 막히는 느낌이 든다.


울분을 토하는 그의 모습 뒤로

축제를 즐기며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즐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미얀마에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게 아름다운 아이들이 

내 눈앞에서 한순간에 사라지는데도,

순수하고 죄 없는 아이들이 죽어가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턱 막힌 목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의 떨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마침내 입을 연다.


"이렇게나 군부독재인 게 분명하고,

수많은 민간인이 죽어가고 있는데,

왜 나아질 기미가 없는 거야?

선과 악이 너무나도 분명한데,

왜 몇 년 동안 악이 이길 수 있는거야?"



그는 나의 질문에 

이미 본인도 수백 번 답을 찾아보려 한 듯 대답한다.


"그야 누구도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기 때문이지.

어느 국제사회도 미얀마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잖아.

우리가 지금 이렇게 울분을 토해도 결국 달라지는 건 없고,

우리도 미얀마의 상황을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고 무엇을 하면 달라질 수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내가 군부 세력층에 있었지만,

그들은 인정사정없는 무차별한 집단이야."


그의 말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이방인이 들어도 숨이 막히는데,

엉이 느껴온 감정은 얼마나 답답하고 텁텁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우린 마땅히 채울 단어를 찾지 못한 채 정적을 유지한다.

소리의 공백은 축제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의 소음으로 가득 찬다.


소음을 뚫고 엉에게 묻는다.

"엉, 너는 삶의 이유가 뭐야? 왜 이 삶을 사는 건데?"


엉은 오랫동안 생각하다 입을 연다.





사실, 매우 간단한 질문이지. 
그렇지만 답하기 힘들어. 

여전히 나는 내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거든. 
내 삶의 이유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야.

나는 사람을 도울 때 행복해.
언제나 다른 이를 도우려고 노력해.

 내가 알면 알수록 다른 이를 더 많이 도울 수 있기에  
더 열심히 알고자, 일하고자 노력해.






출처: ASPI Strategist


오늘날 미얀마


출처: 서울신문


44년 전 대한민국




"지금이 미얀마의 가장 어두운 순간이지만 곧 여명이 올 것이다."

- 만 윈 카잉 딴 민족통합정부 총리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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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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