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로
비엔티안에서 핑과 헤어진 후 새로운 비포장도로에 올라선다.
옆 사람의 살갗이 닿을 정도로 사람을 가득 채운 봉고차는
수도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으로 향한다.
마땅한 대중교통이 없는 꽝시폭포로 가는 길.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Lo Saechao(이하 로)와 함께 꽝시폭포로 향한다.
"싸바이디!(안녕하세요)"
동글한 코에 짙은 눈썹의 로는 차를 몰고 내게 반갑게 인사한다.
라오스 화교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그는 능숙하게 꽝시폭포로 나를 안내한다.
꽝시폭포 이야기 보러 가기 ▶ 라오스Ⅰ삶이 힘들지라도 여전히 아름답다는 걸 잊지 마
로는 어릴 적 꽝시폭포에 와서 친구들과 함께 숨바꼭질하곤 했다.
로가 이끄는 길을 따라 폭포 뒤에 숨겨진 산에 오른다.
수많은 관광객이 들리는 꽝시폭포지만, 로가 어린 시절 뛰어다닌 곳은 관광객의 발길이 흔적조차 없다.
고요한 새소리만이 가득한 공간은 동화 속에 있는 느낌을 준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동화 속의 공간.
코를 흘리며 친구들과 뛰어놀았을 어린 시절의 로를 상상한다.
"과거에 농사를 짓기 위해 많은 사람이 필요했기에 많은 자식을 가졌지.
2차 세계대전 전에 나의 아버지도 13명의 자식들 사이에서 태어났어.
그 당시는 집에서 아이를 배곤 했어."
로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마치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에게서 얼핏 들은 과거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로와 만나기 전, 우연히 마주친 장년의 한국 여행자 분들이
비엔티안 풍경을 보며 혼잣말로 하던 말이 떠오른다.
"여기는 딱 과거 한국 모습이랑 똑같네. 우리도 이런 시절이 있었지."
내가 보내오지 않았던 그 시절은 어떤 이야기로 가득할까,
과거 한국은 이런 모습이라면,
지금 로의 삶은 과거 한국인들의 삶과 비슷할까.
꽝시폭포에서 오후를 보내고 메콩강의 밤을 맞이하면서
나는 그에게 삶을 묻고,
그는 내게 자신의 우주를 공유한다.
비포장 도로 위 흙먼지를 헤치며 학교에 가던 소년의 행진
로는 루앙프라방에서 8명의 형제, 자매 사이에서 여섯째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3명의 자식 사이에서 태어난 로의 아버지는
무역하며 밥벌이를 했지만,
봉급은 8명의 자식을 키울 형편이 안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로가 6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살던 집 한 채와 자식이 전부였던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기 위해친척의 손을 빌렸다.
로는 이후부터 삼촌과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형 오토바이를 타고 고등학교를 다녔지.
고등학교 첫날에 오직 나만 오토바이가 있었어.
그렇지만 나는 기름이 없어 멀리는 못 갔지 (웃음)"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로의 눈동자는
메콩강의 투박함과 닮았다.
우린 폭포를 나와 메콩강이 보이는 로컬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꽝시폭포를 나와 저녁으로 들린 근처 식당은
창문 없이 메콩강을 커다랗게 맞이하고 있다.
메콩강의 투박함은 내게 편안함을 준다.
그의 눈빛에 잔결무늬를 내는 메콩강이 비친다.
농사를 짓기 위해 많은 자식을 거두던 과거, 라오스는 대학교가 없었다.
로의 형은 초등학교만 졸업해 양계장 농부가 되었다.
“라오스에 있는 대학교는 사실 생긴 지 오래되지 않았어.
루앙프라방에 있는 수파누봉대학교(Souphanouvong University)는
한국 정부에서 설립을 도와줬을 거야.”
*수파누봉 대학교: 한국 정부가 라오스에 지원한 최초의 대학으로 포스코 등 국내기업과 강원대등 국내 대학의 도움으로 2008년 루앙프라방에 쑤파누웡대학교 개교를 이루었다.
비엔티안에 있는 라오스 국립대학(동독대학교)에서 한국어학과는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학과라고 한다.
한국의 손길은 오늘날까지 많은 라오스 사람에게 영향을 끼쳐온다.
한국과 굵은 인연에 놀란 나를 보며 로는 말을 이어간다.
로가 지내온 시절은 외할아버지에게 듣던 72년 새마을운동 전 한국을 연상케 한다.
시대가 주는 가난에서 태어난 외할아버지는 교육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
로의형도 마찬가지다.
교육을 중요시한 형의 희생 덕분에 로는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졌다.
커뮤니케이션을 배우고 싶었지만,
당시 대학(University)이 없는 루앙프라방을 떠나 비엔티안에 가야 했다.
형은 로를 지원해 주겠다 응원했지만,
로는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는 관광학으로 루앙프라방에 있는 대학(College)에진학했다.
“우리 집은 부유하지 못했어.
나는 가난하게 자라면서 두 가지를 다짐했어.
돈을 많이 벌고, 여행을 많이 다니자.”
그는 항공사 표 판매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기술을 익히며 투어 상품 개발을 해나갔다.
현재는 여행사 투어와 자동차 보험 일을 하고 있다.
보험이란 개념이 보편적으로 인식되지 않은 라오스에서
사람들을 설득하긴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관련 법과 조항도 부족하다.
“라오스는 여전히 발전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국가이지만,
나는 라오스의 매력을 알리는 여행상품을 만들고 싶어.”
그의 삶은 오늘날 한국을 만든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간 젊은이 삶을 불러일으킨다.
주린 배를 잡고 삶을 개척해 간 주역들의 삶.
"모든 건 나의 관계로 일어나는 거야.
나의 모든 것이 다른 자연, 사람, 무언가와 연관되어 발생하지.
가령 나의 사소한 행동도 무언가에 영향을 주기 마련이야."
로의 삶과 철학을 듣다 보니 어느새 메콩강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져버린 저녁을 바라보며 로에게 묻는다.
"너의 삶의 이유, 너의 데이지는 뭐야?"
"(영상 속 답변) 데이지가 희망이라는 거지? 희망.
희망은 목표이지. 좋은 에너지야.
우리는 희망하며 살아갈 힘을 얻지. "
“(추가적으로 로는 덧붙인다)
내 삶의 이유는 목표야.
내 여행 상품을 만들어 라오스 여행을 알리고 싶어.
그렇게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돈을 보내고 싶어.”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는 라오스의 투박함이 정겹다.
그 정겨움은 참 사랑스럽다.
여름밤이 되면 논밭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
고요한 강 위로 송골송골 맺힌 밤하늘의 별
로의 삶을 들으며 잔잔히 울리는 메콩강을 바라본다.
라오스 풍경이 불과 몇십 년 전의 한국 풍경이라 여겨지니
당연히 받아온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빠른 경제성장에 따른 부가적인 문제,
한강의 기적 세대 갈등 및 과거 한국의 발전을 두고 여러 평가가 존재하지만,
라오스가 그 자체로 보여준 단출함을 통해 나는 그동안 잊고 지내온 가치를 다시 배운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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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