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와 베트남 경계에서 만난 이고
저마다 여행하는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에겐
호텔에서 편히 쉬고 잔뜩 쇼핑하는 것이 될 수도,
누군가에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이제껏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는 것이 될 수도,
혹은
누군가에겐
필수 방문 코스를 따라 사진을 잔뜩 찍어오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예시를 나는 관광이라 부른다.
가령 한국에 왔으니 남산 타워에 갔다
북촌 한옥마을을 거닐며 근처에서 한식을 먹으며 관광객이 될 수 있지만
나는 동네 주민이 가는 허름한 시장 골목에서
쭈그려 물건 파는 할머니와 나눈 이야기를 통해 여행자가 됨을 느낀다.
여행과 관광은 다르며
내게 여행이란
그 사람의 삶을 엿보는 것이다.
한 나라, 도시에 가면
그 공간을 살아온
이들의 삶을 느끼는 것.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지내온 공간을 구경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것이 나의 여행이다.
라오스를 떠나 베트남으로 향하는 버스.
이른 아침 한적한 버스정류장,
버스를 채운 이는 나와 장발의 한 남성뿐이다.
한국의 중고차인 듯, "OO 학원"이란 문구가 문에 적혀있다.
라오스를 여행하며 만난 과거 한국의 발자취는 여행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배웅한다.
생각보다 편한 버스에 편안히 라오스와 이별 준비를 한다.
잠시 잠에 빠지기도,
창가를 보며 멍을 때리기도,
여러 생각에 잠기도 한다.
방비엥에서 만난 세종 선생님들께서
"우리 어린 시절의 한국 모습이야"라고 말했기 때문일까,
차창 너머 보이는 라오스 풍경은 내게 많은 생각을 안긴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판잣집,
빈번히 인사하는 비포장도로,
도로를 가로지르는 검은색의 자동차배기가스,
거리 위에 옹기종기 모여 멍 때리는 사람들,
불과 몇십 년 전의 한국 풍경이라 생각하면,
지금껏 당연하게 누려온 한국에서의 삶이 낯설어 보인다.
교육으로 가져온 윗세대에게 감사함은,
가슴 깊이 울리는 마음으로 물든다.
두 명의 승객을 태운 버스는 마을 굽이굽이 지나며 마을 사람을 태운다.
페이스북 영상을 누구보다 크게 틀어놓고 보시던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꺼낸 음식이 신기하게 생겨나도 모르게 흥미롭게 바라본다.
내 눈길을 느끼곤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나눈다.
후에 그는 뒷좌석 학생의 과일을 감칠맛 나게 먹는다.
버스라는 한 공간에 있기에
우린 눈빛으로 음식을 공유한 사이가 된다.
이전에 알고 있는지 고려 없이
서슴없이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달리던 버스는 오랫동안 걸음을 멈춘다.
무슨 일인가 다른 승객을 따라 내리니 고장 난 바퀴를 수리하고 있다.
승객들은 아무렇지 않게 정차 마을의 시장을 구경한다.
한국이라면,
승객을 가득 채운 버스가 가던 길을 멈추어
바퀴를 수리하는 일이 벌어질 리가 없기에
멈추더라도 운전사를 향해 핏줄을 세우며
항의하는 승객들이 있을 게 뻔하기에
라오스에서만 펼쳐질 수 있는 이 상황이 마냥 좋다.
털털털 다시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빵을 먹는다.
마을 시장에서 200원도 되지 않는 싸구려 빵이 참 좋다.
기사가 버스를 멈추어 한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는다.
어리둥절해하며 바라보는 나에게 밥을 먹으라고 손짓한다.
먹지 않는 승객은 밖에 앉아 잠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빈자리에 앉아 옆 손님이 먹는 음식을 가리킨다.
식당 아주머니는 능숙하게 접시를 내놓는다.
라오스에서 마지막 만찬이 될 음식을 한껏 음미하며 먹는데,
날 태워야 할 노란색 버스가 사라진 걸 깨닫는다.
허둥지둥 국수를 흡입하고 도로에 나오니
밖에서 기다린 승객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말없이 정차해 밥을 먹는 기사가,
사라진 버스를 보고 허겁지겁 국수를 끝내고
도로로 나온 나 자신이.
그저 웃기고 재밌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버스에도 오후 어스름이 찾아온다.
멈추지 않는 버스 기사에게 소리치며 버스에 오른 어린 소녀는
투정 부리며 자리에 앉고, 기사는 무어라 이야기한다.
이 모습이 마치 이미 알고 있는 가족처럼 보이지만,
단지 승객과 기사의 관계라는 사실은 내게 놀라우면서 재미있게 다가온다.
덜그럭 덜그럭
12시간을 달리는 버스에서 만난 라오스 사람들은
5일 동안 라오스를 여행하며 만난 이보다 더 많다.
버스에서의 움직임, 차창 너머의 움직임은
라오스 사람들의 생활을 내게 더 깊숙하고 가까이 느끼게 한다.
여전히 도착의 기미가 보이지는 않고 시곗바늘은 6시 10분을 향해있을 때
6시 30분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나는 애를 태운다.
탈 수 있다며 나를 안심시키는 버스 기사의 말이 무심하게
결국 30분이 넘는 분침에도 버스는 환승 정류장에 도착하지 못한다.
장발의 한 남성도 환승을 같이 해야 하는데,
속이 타는 나와 달리
그는 흘러가는 대로 두는 듯 아무렇지 않다.
애간장을 태우는 나를 뺀 모두가 여유롭게 버스 도착을 기다린다.
나의 애간장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35분이 되어 아슬아슬하게 환승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몸은 부리나케 사파행 버스에 오른다.
사파행 버스는 막 출발하려는 듯 정류장 밖을 나선다.
"사 파!!! 사 파!!!"
애가 탄 마음과 함께 사파를 외치니
묻지도 않고 나와 장발 남자의 짐을 버스에 태우고 타라고 한다.
적어도 빨리 매표소에 가서 표를 끊고 오라는 말을 할 줄 알았던 나는
신원확인이나 표 검사도 없이, 돈도 내지 않고 무작정 버스에 타라는 무질서함이
마냥 재밌어 웃음이 쏟아져 나온다.
장발의 남자도 웃으면서 말한다.
"unorganized"
슬리핑 버스인 버스에서 무사히 버스에 올랐다는 안심에 바로 잠에 든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어느새 깜깜해진 창을 보며 눈을 뜬다.
환전을 안 해 라오스 돈밖에 없는 내게
장발의 남성은 자신이 대접하겠다며 저녁을 제안한다.
이고는 일본 후쿠시마에서 배우로 몇 년간 일을 했다.
다른 배우들처럼 본인도 극 배우에서 영화배우도 넘어가려고 했지만,
연기에 열정이 사라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 길로, 호주로 워홀을 다녀오고,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동남아시아 여행을 하는 중이다.
식당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종업원은 어버버 음식을 주문하려는 그를 그냥 지나친다.
겸연쩍어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그만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런 나를 보고 웃음 짓는 그.
그에게서 나온 멍청함에 웃음을 막지 않는다.
그 멍청 구리함이 좋았다.
얼마 못 잔 듯하지만, 시계는 어느덧 새벽 2시 30분.
나를 깨우는 이고에게서 사파에 도착 소식을 듣는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새벽 한가운데에 내려진 일본인과 한국인은
이 새벽을 어떻게 보낼지 궁리하며
사파를 거닐며 24시간 카페를 찾는다.
껌껌한 거리 위 불 켜진 일부 식당 중
오렌지주스를 파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우린 새벽을 보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고는 어느덧 여행의 막바지에 왔고, 이후에 일본으로 다시 돌아간다.
"유럽 여행을 했을 때야.
잠시 정차한 곳에서 담배를 피우러 나왔는데,
그 버스가 나를 두고 출발했더라고.
그 안에 있는 배낭은 다시 찾지 못했어."
이번 라오스 여행에서도,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어."
'너의 배낭과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건 정말 큰 일이잖아!
"배낭을 잃어버리고,
휴대전화를 잃어버리고,
없는 채로 사니까 아무렇지 않더라고.
알고 보니, 그건 내게 필요 없던 물건들이었던 거지."
무덤덤하게 말하는 그의 표현을 들으며
사파행 버스를 타지 못할까 전전긍긍한 내 모습과 대비해
아무렇지 않게 당근 주스를 마시던 그의 모습이 스친다.
멍청한 무덤덤을 가진 그가 웃기면서
그런 그의 멍청함이 더 좋아진다.
그에게 묻는다.
"이고, 너는 삶의 이유가 뭐야?"
내가 삶을 사는 이유는, 즐기기 위해서지!
(My answer is to have fun!)
이제껏 그의 철학과 삶의 태도를 '멍청함'이라 서술했지만,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가 가진 확실함
그 뚜렷함을 드러내는 단순함.
그 단순함은 남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하기 위해
그는 멍청함을 가진다.
그 멍청함을 닮고 싶다.
배시시 웃는 그의 멍청함을 나는 닮고 싶다.
이고의 그리스 여행 중 흑인 페니스를 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중,
사파 호스트인 빠오가 나를 데리러 와 이고와 작별 인사를 한다.
어느덧 시계 분침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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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