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만난 핑
라오스 메콩강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투박하고 남루한 냄새가 느껴진다.
일출을 보려 부스스 눈을 뜬 새벽 6시.
강가 너머로 트로트 같은 행사 노래가 공기를 타고 들린다.
촌스러운 노래에 아침이 아닌지 헷갈리지 말라는 듯 닭들은 여기저기 울어댄다.
강가에서 장난치는 라오스 아이들은 해맑은 웃음을 가진다.
삼삼오오 사람들은 강가에 모여 휴식을 취한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남송강에서
촌스럽고 투박한 라오스의 냄새를 맡으니
느껴지는 정겨움이 참 사랑스러워 보인다.
태국 국경을 넘어 라오스에 오니 흩날리는 먼지가 나를 반긴다.
호스트 핑과 짧게 통화를 마친 뒤,
그를 기다리며 검정 매연가스를 내뿜는 차의 행진을 바라본다.
낡은 판자로 세운 건물은 위태롭게 버스정류장 사무실이 된다.
얼굴을 뒤덮은 흙먼지 사이로 도착한 핑과 포옹으로 인사한다.
핑이 일하는 병원에 나의 배낭을 내려놓으니 핑이 내게 키를 건넨다.
"내 오토바이 열쇠야. 일 끝날 때까지 이걸로 둘러보고 있어."
한 번도 오토바이를 운전한 적 없다며 당황해하는 내게
그는 아무럴지 알게 말한다.
"라오스에서는 오토바이 면허 없어도 타도 돼.
한번 타고나면 생각보다 쉬울 거야.
타기 어려우면 걸어 다녀도 되고."
불과 십 분 전에 만난,
오토바이 운전 경험도 없는
이방인에게 자신의 오토바이 열쇠를 주는 핑.
한국이었다면 절대 발생하지 않을
서슴없이 이방인을 믿는 그의 모습이 놀랍다.
사람에 대한 낯섦이 상대방의 신뢰를 낮추지 않는다는 사실이
울타리 없이 부대끼며 사람과 어울리는 이곳이기에 가능한 걸까 생각한다.
급하게 인터넷으로 오토바이 운전 영상을 찾아본다.
병원 주차장에서 잠시 연습을 한 뒤
떨리는 마음으로 가속페달을 밟는다.
느리게 이동하는 오토바이는 조금씩 속력이 붙고,
무지로부터 나온 조심스러움은 점차 짜릿함으로 바뀐다.
무더운 열기 속 속력이 가져다주는 바람을 느끼며
비엔티안 이곳저곳을 구경한다.
"첫 운전해 보니 어땠어?"
"진짜 짜릿하더라.
덕분에 비엔티안 모든 명소를 봤어!
걸어 다녔다면 오늘 다 못 봤을 거야.
근데 어떻게 나를 믿고 열쇠를 줄 수 있는 거야?"
"다행이다.
이곳에서는 어릴 적부터 오토바이를 타.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지.
네가 한 번도 안 타봐서 걱정할 필요가 없어.
당연히 처음이 있는걸."
차창 넘어 한국 옛 거리와 중첩되는 라오스 모습은 내게 한국 정취를 준다.
대문 앞을 놀이터 삼은 라오스 아이들은 친구와 소꿉놀이한다.
지게차 위로 쌓인 포댓자루, 각종 농사 기구, 나무 판지와 그 위에 놓인 바구니 ···
잘 닦이지 않는 흙길 위의 핑의 집은 외갓집을 떠올리게 한다.
괜스레 편안해지며 마음으로 멍을 때리는 동안
핑은 집에서 편한 옷을 갈아입고 말한다.
"오늘 밤까지 즐길 준비 됐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위를 능숙하게 달리는 핑을 따라
잔뜩 신이 난 채로 핑의 마을을 구경한다.
여전히 라오스에서도 (태국 송크란과 같은) 삐마이 축제가 진행되고 있어
곳곳에서 물놀이하고 있다.
이동하는 오토바이를 향해 웃으며 물을 뿌리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맞은 물은 신난 우리 감정의 촉매제가 된다.
시원한 물을 맞으며 붉은 라오스의 흙길을 달리는 이 순간.
지나가는 가게에서 들려오는 뽕짝 한 노래의 촌스러움,
도로 옆으로 펼쳐진 푸르른 밭,
볼록 튀어나온 돌 위를 덜컹거리며 넘는 조그만 충격,
흘러나오는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며 핑에게 말한다.
"핑! 나 지금 기분 완전 최고야!"
힘껏 소리 지르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지금이 네가 꿈꾸는 삶에 있다.
더 마음껏 사랑하고 노래하고 느끼자.
축축이 젖은 머리는 달리는 오토바이의 바람과 함께 춤춘다.
함께 기분 좋은 핑과 잔뜩 소리를 지르며 이 순간을 만끽한다.
우리의 흥분이 가라앉을 즈음,
핑은 자신의 우주를 보여준다.
핑은 라오스를 여행한 미국인과 만나
그와 교제하던 중
그에게 결혼을 고백받았다.
어릴 적 멋모르고 했던 결혼을
이혼으로 마무리하고
자신의 삶을 살기로 한 핑은
그의 고백을 거절했다.
"난 여전히 그를 사랑해.
그는 계속해서 세계여행 하며
지금 다른 나라를 여행하지만,
우린 계속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지.
그가 새로운 상대방이 생겨도 나는 괜찮아.
그렇지만, 난 그를 여전히 사랑해."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듯한 그의 말은
비포장 도로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 바람을 탄다.
고민 없이 지금을 즐기라는 듯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물을 뿌린다.
핑과 거리 일대를 돌아다니다 어느새 하늘은 어둑해진다.
우린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라오스의 밤을 느낀다.
야시장의 밤을 촌스럽고 유치한 노래가 채운다.
부모님을 따라 나온 어린아이들을 보며 괜스레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젊은이들이 모인 곳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다른 이와 말을 섞기도 한다.
한창 진행하는 EDM 축제에서 같이 방방 뛰기도 한다.
핑이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이 닿았다는 프랑스인 친구 루이도 합류해
우린 메콩강 근처 조용한 공간에 자리를 잡는다.
평화로운 메콩강을 배경으로 귀뚜라미 소리가 울린다.
뚤뚤뚤 울리는 소리 사이로 우린 서로를 공유한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며,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잔잔한 메콩강처럼 잔잔하게 서로의 우주를 공유하며
대화는 은은하게 공기로 퍼진다.
뚤뚤뚤 우는 귀뚜라미를 배경으로
라오스에서의 삶을 말하는 핑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핑, 그러면 너는 삶의 이유가 뭐야?"
핑은 질문을 잘못 이해한 듯,
라오스는 아직 가난하기에 대답하기 힘들다고 답한다.
"아니, 라오스에서 사는 이유 말고,
너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 말이야.
너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나, 네가 숨 쉬는 이유."
메콩강의 밤공기를 채우듯 잔잔한 물결소리가 들린다.
핑은 잠시동안의 침묵을 만든 뒤 입을 연다.
"내 삶의 이유는 나의 부모님이야.
나는 나의 부모님이 있기에 살지."
신이 난 채로 오토바이를 타고 올 때
이혼 경험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상처를 토로한 그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 순간 핑을 다시 잡아준 것은
단단한 부모님의 존재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용해진 공기를 뚫고 핑은 말한다.
"단돈 1달러에 엄청난 풍경을 배경으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다니.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아름다운 메콩강의 야경을 배경으로
근사하게 펼쳐진 레스토랑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는 이 순간.
그곳은 라오스이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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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