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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Oct 03. 2024

C'est la vie

베트남 호찌민에서 만난 트람

*C'est la vie : 그것이 인생이다



사람의 욕구는 대개 결핍에서 비롯된다.


사랑받지 못하며 자란 아이는

애정을 갈구하며


가난을 일찍이 깨달은 아이는

경제적 자유에 대한 갈망을 키운다.


언제나 바깥세상에 호기심이 많던 아이는

여행을 꿈꿨다.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자기 모습을 상상하고,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걸 종이에 적는 건

십 대 시절 그의 열정이었다.


그는 자신이 여행하지 못한 결핍을

훗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결핍에서 비롯된 그의 욕구는

꿈이라는 이름으로 피어오른다.


그는 자신의 희망 길에 오른다.

길 위를 걸으며 나직이 읊조린다.


"내게는 앞으로 나아갈 힘은 있지만

뒤로 물러설 힘이 없어."







하노이 (북)에서 호찌민 (남)으로 가는 기차여행. 30시간 걸린다

저녁 어스름이 질 즈음 하노이에서 오른 기차는

밤을 달려 아침을 맞이한다.


해외에서 첫 기차 여행이란 설렘도 잠시,

하루를 훌쩍 넘긴 시간 동안 기차에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땅을 밟고 싶다 생각이 든다.


나의 첫 번째 해외 기차 여행


요리조리 자세를 바꿔가며 잠들다

빈 옆좌석에 다리를 내밀고 잠든 저녁.


차창 역무원 부름에 잠에서 깨니

아침 6시의 초침 소리와 함께

창문 너머 호찌민 시가 보인다.



기차역 가까이 마을을 이룬 사람들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수없이 많은 오토바이 행렬이 행진한다.

빨간 천 위에 노란색 별이 새겨진

베트남 국기가 마을 곳곳에 보인다.


호찌민 기차역에서 내리면서



하루하고도 반나절 만에 땅을 밟는 순간.

뻐근한 몸을 움직여 기차역을 나선다.

하노이보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피부로 스민다.



아침 6시에도 수많은 오토바이가 도로에 즐비하다.


이른 시간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도로는 수많은 오토바이로 가득 찬다.


그랩 운전사 뒤에 앉아 호스트 집으로 이동하면서

출근하는 수많은 오토바이 군단과 인사한다.


오토바이의 엔진소리는 내게 말한다.

"사이공(호찌민)에 온 걸 환영해"





호찌민 호스트 트람 집의 책상.


집에 도착하자마자

기차역에서 쌓인 피로를 물에 씻겨낸다.

젖은 머리를 털며 나오는 내게

호스트는 인스턴트 라면과 옥수수, 계란을 건네준다.


잠시 가만히 앉아 따뜻한 옥수수를 움켜쥐었을 뿐인데

천국이 느껴온다.


"오늘 너의 계획이 뭐야?"


호스트는 내게 묻는다.


"우선, 조금 쉬어야겠어."



지난 60일간의 여행은 내게 많은 변화를 주었고,

휴식에 대한 개념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휴식을 취했으니

도착해 곧바로 활동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면,

지난 60일의 여행은 내게 말한다.



'장기간 이동했으니 하루 정도 정리하고, 휴식을 취해야지.'



언제나 시간을 쪼개어 바쁘게 삶을 살아온 나는

여행을 통해,

나에게 적절한 휴식이 무엇인지,

나는 언제 휴식이 필요한지를 깨닫는다.


휴식 역시 여행의 일부라는 사실을,

휴식을 통해 다음 발자국을 더욱 깊이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균형을 이루는데 휴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깨닫는다.


트람이 퇴근하기 전까지 나는 휴식을 취한다.

트람이 퇴근한 뒤,

트람의 친구들을 만나기 전, 그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고수를 잔뜩 쌀국수에 담는 트람을 따라 하며 

베트남 거리 위 분위기와 함께 쌀국수를 음미한다. 


"나도 어릴 적, 데이지 너와 같이 세계여행을 하는 게 꿈이었어."


"에이, 지금 하면 되지. 

지금이라고 세계여행 못할 이유 있나?"


"지금 나는 너무 늙었어. 

종종 여행을 다니긴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중요한 다른 게 있으니까."



"너에게 중요한 게 뭔데?"



"나이가 들면서 여러 목표를 이루니까 깨닫는 게 있더라.

무언가를 이룬 뒤의 행복은 길지 않구나.

그건 단지 며칠이야.

지금 나의 꿈은 '평화로움'을 느끼는 거야."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조부모님과 함께 지내왔어.

그러던 중, 내가 16살이 되는 해에 가족 간의 관계가 틀어졌어.

조부모님과 따로 지내게 되었지.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은 홀로 살아가는 법을 많이 배웠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삶에서 배운,

본인의 깨달음을 내게 들려준다. 



"대학교에 진학하며 

네트워크시스템엔지니어(Networking System Engineering) 학과를 전공했어. 

공부가 어려워서 그만두려고 했었지.

그렇지만, 등록비 문제도 있기에 계속 공부했고, 끝내 졸업했지. 


그런 점에서 지금 IT업계에 일하고 있는 건 행운이야.

베트남에서 여성으로 IT업계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거든."


가족과의 이야기, 

대학 생활 이야기를 통해 트람은 내게 말한다. 


"무언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사실 중요하지 않아.

그 발생한 사건에 대한 나의 방식이 중요한 거야."




"삶에서 겪었던 큰 변화는 뭐야?"


"재작년에 더 이상 이전 직장에서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모두 나보고 미쳤다고 했지만, 난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어. 

이후에 오토바이도 새로 사고, 집도 새롭게 하며 새로운 삶을 출발했지."


그런 과정과 변화를 겪으면서 나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깨닫더라. 


문제가 올 때, 사실 그건 문제가 아니야. 

단지 상황에 어떻게 하느냐의 이야기이지. 

우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이야."



주위에서 미쳤다며 트람을 비난할 때

스스로 옳다고 나아가는 믿음을 가진 트람. 

성장 가능성을 쫓아 본인의 목소리를 듣는 그가 멋지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와 링크드인을 통해 자신에게 연락 온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나는 과거에 삶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삶은 공평해.

사실 이런 논제도 우스울 정도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야.


단지 좋은 사람이 되는 거지.

문제를 가진 이를 발견하면 그를 도와주면 되는 거야."



호치민이 오토바이 제일 많아. 그래 너가 최고야!



트람의 말을 들으니

내가 느낀 베트남 사람들의 이미지가 스친다. 



친절한 사람들.

그들은 친화력이 좋다. 


처음 본 사람이어도 

원래 알고 있듯이 지나가다 이야기 나누고 

쉽게 머리를 만진다. 


난 그런 그들의 모습이 참 좋다.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신경 쓰지 않고 


현재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함께 추억을 나눈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느낀 게 많지만, 

서로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  

지금의 당신에게 집중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잖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게 느껴져서 참 좋아. 

친절은 나는 너를 존중한다는 다른 표현이잖아."



삶의 여러 문제에 질문하고 답을 갈구하는 젊은이에게

트람은 삶의 경험으로 다져진 깨달음을 전달한다. 



"C'est la vie. 

그것이 인생이야."



젊은이는 트람에게 묻는다. 

"트람, 너의 삶의 이유는 뭐야?"


베트남 호찌민, 트람 삶의 이유


내 삶의 이유는 부모님이야.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많은 돈을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
부모님은 내게 많은 힘을 주셨어. 
나도 과거에는 너와 같이 여행하는 것이 동기였지만, 지금은 부모님이야. 
그들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해. 




"트람, 희망을 믿어?"




"믿어. 희망은 다음 단계를 위한 행동이야. 

네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행동.

나의 희망은, 지금 있는 회사에서 매니저가 되고 싶어.

희망을 위해 노력해야지."








# 에필로그. 트람과 함께 보낸 베트남 명절에서


4월 말에서 5월초는 흥왕기념일로 베트남의 공휴일이다. (흥왕: 베트남 건국 아버지)



호찌민에 있던 날은, 베트남의 큰 명절날이었다.

공항 근처에 있는 트람의 이모 집과 친구 집에서

트람의 가족, 친척, 친구들과 함께 베트남 명절을 함께 보냈다.



친구들은 내게 베트남 전통 요리를 하나씩 설명해 주며

먹는 방식도 알려주었다.

어제 무엇을 했는지,

남자 친구와 무엇을 했는지,

우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놀리며 웃기도 했다.


문 사이로 살랑살랑 바람이 들어온다.

지붕 위를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온다.

편안하고, 친근한 이 순간이 좋다.




트람과 친구들. 그들과 함께 호치민 일대를 함께 구경했다.


명절에도 함께할 정도로 완전히 가족처럼 부둥켜 지내는 그들이 참 좋다.

전화해서 부르면 바로 나와 놀러 가는 모습,

서로의 속사정을 알고, 힘든 걸 함께 힘들어해 주는 모습,

장난 어린 표정과 말투로 시시콜콜 이야기 나누는 모습.


집단 내 존재해 오지 않던 이방인까지도

포용해 함께 어울리는 그들에게 참 고마웠다.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신경 쓰지 않고

현재의 서로와 함께 추억을 나누는 이 순간이 감사하고,

학력과 능력을 재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 이들에게 배운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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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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