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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Sep 30. 2024

날개 없는 우리가 대화하는 방법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퉁

 *일러두기 : [너의 데이지]에서 언급된 호스트는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호스트입니다. 


본 글의 주인공 '퉁'과 함께한 베트남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다시 보기

▶ 베트남 I 잊지 못할 나의 첫 번째 노숙


어느새 밤이 찾아온 하노이의 풍경


하노이 중심가에 도착한 버스.

그랩을 통해 호스트 집으로 향한다.


30분가량 달렸을까, 호스트 집이 

하노이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노이의 밤거리를 달려

구글 지도가 말하는 곳에 도착했지만,

문은 굳건히 닫혀있고,

불과 몇 시간 전 연락된 호스트는 잠적한다.                                       


'그랩'은 저렴한 오토바이 택시를 의미한다.

유심이 없어 그랩 운전사에게 빌린 와이파이로 

호스트에게 연락하지만 묵묵부답일 뿐이다. 


연락이 안 되는 나를 위해 

운전사는 본인의 폰으로 호스트에게 전화하며

문제 해결을 도와준다.


언제까지 운전자를 붙들 수 없다.


여전히 응답 없는 공백 앞에서 

운전사에게 말한다. 


"곧 오겠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전사에게 감사 인사로 

헤어짐을 표현하자, 그는 말한다.



"배고프세요?"


아침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나는

그의 물음에 자동으로 고개를 젓는다.

영어가 짧은 운전자는 내게 손짓과 몸짓을 동원해 말한다.


"친구의 연락 기다릴 동안 저녁 같이 해요.

제 이름은 퉁이예요."

그랩 운전사 Trần Thanh Tùng (짠 타인 뚱)


그랩 운전사 퉁은 내게 저녁을 대접한다.

그랩으로 방금 번 돈보다 피자값이 더 나올 거라며

괜찮다고 손사래 치는 나를 보고 말한다.


피자는 편의점 피자 맛이지만, 통과 함께했기에 그 무엇보다 맛있는 피자였다.





"하노이에 온 걸 환영해. 나의 선물이야."














함께 피자를 집어 들며 퉁은 말한다. 


"노 잉글라쉬.. 잉글리시.. 리틀 리틀.."


퉁은 결국 몸짓으로 자신을 표현하다

끝내 번역기를 손에 든다.


[나는 마약을 파는 사람이었다]


'마약...?'


번역기의 오류인지, 실제 그는 어떤 사람인지

그 앞에 생긴 수많은 궁금증은


그저 스쳐 지나갈 그랩 운전사를

하노이에서 만난 첫 번째 친구로 만든다.



권투선수였던 그는 운전기사, 매니저로 일을 하다

베트남, 중국, 라오스 국경 사람들에게

Biolamin이라는 약을 팔며 지내게 된다.

이후 흥미를 잃게 되어 헤어디자이너의 길을 택한다.



'세상을 이루는 독특하고 멋진 인생이 많구나.'


단지 그랩 운전사인 줄 알았던 그에게서

헤어디자이너가 된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듣던 중

잠잠했던 호스트에게 연락이 온다.


"퉁, 호스트가 잠깐 폰 확인을 못 했다고 연락이 왔네!"


"내일 저녁에 여기로 다시 찾아올게."







그저 지나가는 말일줄 알았지만,

퉁을 다음날 저녁 일을 마치고 나를 데리러 온다.


먼 길을 오른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오토바이에 오른다.

우린 퉁이 자주 간다는 쌀국숫집으로 향한다.


분붕(bun bung)은 베트남 북부음식으로 하노이와 타이빈에서 자주 보인다.


인상적인 노란색 면의 분붕을 사이로 퉁에게 질문한다.

그는 젓가락을 집다가도 호기심 어린 질문이 오면 

황급히 번역기를 사용해 대답한다.


"베트남에서 유명한 헤어디자이너인 Guy Tang와 같은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


주말 없이 한 달에 세 번의 휴일만 있으며

매일 8시 출퇴근으로 고된 노동을 하는 그지만,

웃음으로 가득 찬 그의 삶이 신기하게 다가온다.


"나는 나의 일에 만족하고, 일하는 게 행복해."


저녁 이후 우린 하노이의 중심 호수(Hồ Tây) 주변에서 11시가 넘도록 이야기 나눈다.


게임을 좋아하는 그는

나보다 많은 한국인 게임 프로그래머를 알고 있으며

배우 마동석을 좋아한다며, 그의 사진을 보며 근육을 흉내 낸다.


친근한 그의 웃음 때문일까

하노이 호숫가의 잔잔함 때문일까.

불과 어제 그랩 운전사와 손님으로 만난 관계는

친근하고 따뜻한 오빠와 동생의 관계처럼 느껴진다.


퉁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우린 하노이 호수에서 이야기 나눈다.

"아직 하노이를 구경하지 못했어."


하노이에 도착하고,

지난 여행에서 밀렸던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고 다음 여행을 계획하느라

제대로 하노이 여행을 하지 못했다는 내게 퉁은 말한다.



"내가 하노이 투어 시켜줄게."






다음날, 

그렇게 시작된 퉁의 하노이 투어.

이른 아침부터 호스텔 앞으로 나를 데리러 온 퉁에게 신이 난 채로 인사한다.



"퉁 안녕!! 신차오! (안녕하세요!)"



퉁은 식당 곳곳에 데리고 가며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며 자부심을 보인다.

자국 음식에 대한 마음이 느껴져 괜스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길 위에 놓은 낮은 식탁에서

경적과 엔진소리를 들으며

매연가스를 마시며

황홀한 음식을 먹으면

베트남에 왔다는 걸 깨닫는다.


퉁을 따라 튀김 '포'를 쌀국수 국물에 담가도 먹고

경적소리를 배경으로 길거리 식당에서 분짜도 먹는다. 

커피숍도 잊지 않고 들려 베트남 커피를 음미한다. 


커피숍이 굉장히 많은 하노이 도심부. 

한국에도 카페가 굉장히 많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가 즐비한 한국과 달리

개인 커피숍이 가득한 베트남에서 

하노이 거리는 사람 냄새가 풍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커피숍들이 좋다.


함께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아무개의 허접한 그림을 소중하게 다루는 34살 아저씨 퉁



과거에 종종 그림을 그렸다는 퉁에게 그림을 그려달라 했다.

그는 자신 없다며 거절했고, 대신에 내가 그를 그렸다.


그는 나의 조촐한 그림을 보더니

사진을 찍어 배경 화면까지 해놓는다.


이후 종이를 휴대폰 케이스에 보관하고 유심히 그림을 살핀다.

"너의 그림과 문구를 보며 종종 힘낼게"


그의 티 없는 미소와 마음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한 달에 세 번 있는 휴가 중 

하루를 온전히 내게 써주겠다는 퉁.


그랩 덕분에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면서도

그에게서 받은 친절과 나눔이 과분하다.


왜 이렇게 친절한 거야?

왜 자신의 시간을 희생해 나와 함께 하는 거야?

왜 나에게 음식을 사주는 거야?


수많은 왜와 어째서 속에서 감사함만 느낄 수밖에 없다.



"퉁, 어째서 나에게 베풀어주는 거야?"



"네가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해. "



우리가 공유하는 이 순간을 감사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어른에게서 보이는 순수함이 엿보이고

그 존재가 소중하고 감사해서

괜히 찡해진 코를 어루만진다.


하노이 삶이 행복하고 느리므로 나는 이곳이 좋다. / 베트남의 열악한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용의 아름다움과 제품을 제공하고 싶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헤어디자이너로 몇 년 일을 하다가

시골 마을에서 나만의 미용실을 차리고 싶어.


여전히 많은 곳에서 미용 조건이 열악하거든.

사람들에게 머리의 아름다움과 더 나은 제품을 제공하고 싶어."


그의 부모님은 퉁이 한 살 때 이혼하셨다.

형편치 않은 가정 아래 그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해 왔다.

권투 선수, 판매원, 매니저, 헤어디자이너 ···.

두 달 전부터 시작한 그랩 드라이버는

퇴근 후 돈도 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시작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열심히 일한다.


그의 꿈과 희망을 들으며

어느새 울컥하고 눈물짓는 내 모습이 보인다.


올해 34살을 맞이한 퉁에게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는 믿음을 믿는 어른에게서

여전히 어린애의 희망과 꿈이 보인다는 사실이

소중하고 아름다워서 나온 눈물이었다.



퉁은 언제나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를 보며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꿈이 있어. 
많은 곳을 여행하며 미용 서비스를 받기 힘든 사람들에게
미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모든 사람들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기회가 믿어. 
나는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워질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어. 




나는 베트남어를 하지 못하여

대부분의 대화는 번역기를 이용해 나누었지만,


우리는

번역기를 통해 전달된 글자를

단순히 받아 듣기 넘어

서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느낀다.


보이지 않는 의미를 느끼면서 나는 깨닫는다.


인간의 언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미소라고.


어떠한 표현 없어도

우리는 미소로 교류하고, 소통하고, 서로에게 따뜻함을 공유한다.


그리고 눈물짓는다. 

미소가 너무나도 따뜻해서.



인간은 날개가 없는 대신 웃는다. 웃음은 가슴의 날갯짓이다. -류시화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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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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