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만난 미스터퍼펙트
킬링필드(killing field)는
캄보디아의 폴 포트(Pol Pot, 1928~1998)가 공산 혁명을 통해 '민주캄푸치아(1975~1978)’를 출범시켜
캄보디아를 사회주의로 완전 개조하고자 시도하는 중에 자행된 대학살.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도 포함한다.
<세계문화사전, 2005. 8. 20., 강준만>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공산주의를 들고 일어난 폴포트는
농업생산량의 극대화를 이루어 캄보디아를 부자로 만들겠다고 밝힌다.
새 시대를 꿈꾸며 응원하는 국민은
이후 4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4명 중 1명이 학살되었다.
도시민은 강제로 시골로 이주를 와야 했고,
매일 14-18시간 가량의 육체노동을 했다.
쉼 없이 일한 뒤 주어진 죽 한 그릇으로 많은 이들이 굶주림을 이기지 못했으며,
가족이 아닌 이들을 가족이라 부르게 하는 집단생활을 강요했다.
자본주의 경제 논리는 사라지고,
폐쇄된 국경 내에서
캄보디아 국민은
매일 정해진 의복만 입으며,
정해진 노동을 하며,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급기야 고위 간부는 희생자의 쓸개를 보약으로 먹기도 하고,
숙청하는 총알이 아깝다며 머리를 내리쳐 죽이기도 했다.
1975년부터 시작된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국민 800만 명 중, 200만 명을 살육했다.
캄보디아 프놈펜을 떠나기 전,
'킬링필드' 사건을 알게 되었다.
캄보디아의 역사를 100년이나 후퇴시키고,
캄보디아를 동남아시아 최빈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사건의 현장에 가보고 싶었다.
시엠립행 버스를 예매한 버스정류장 앞.
툭툭기사는 킬링필드로 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관광객을 포착한다.
동양 관광객을 꼬드겨 본인 툭툭에 태우는 데 성공한다.
*툭툭(tuk tuk):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인력을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릭샤라고도 불리며, 소형택시의 기능을 한다.
킬링필드에서 버스정류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툭툭 기사는 자신의 집을 보여주겠다며 가던 길을 멈춘다.
"갑자기 너의 집을 보여주겠다고?"
운전석에서 나온 툭툭 기사는
당황해하는 나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행 걸이를 꺼낸다.
"어때? 나의 침대가? 음하하"
행 걸이를 펼치며 자랑스레 본인의 침대를 자랑하는 그는,
나보고 누워서 편하게 가라며 헹걸이에 오르도록 도와준다.
헹걸이에 올라 창문 없는 툭툭으로 프놈펜의 풍경을 바라본다.
온통이 큰 자갈밭과 듬성듬성 나 있는 푸른 풀들이 눈앞에 놓인다.
이동하면서 그에게 소리가 닿길 바라며 큰 소리로 묻는다.
"여기서 먹고 자는 거야?"
그는 후방거울로 나를 바라보다 운전 거리를 바라보며 대답한다.
"그치.
나는 내 집이 자랑스럽고, 좋아. 음하하"
쾌활하고 호탕하게 웃는 그의 웃음소리는
덜컹거리며 이동하는 툭툭에 어우러진다.
"시간 남으면 같이 밥 먹자! 음하하"
매우 환대적인 태도로 묻는 말에
시엠립으로 넘어가기 전 남는 시간 동안
그와 함께 있는 게 재밌을 거라 느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까?"
툭툭 기사는 본인을 '미스터퍼펙트'라고 부르라며 호탕하게 소개한다.
"원래 이곳(프놈펜)과 같은 도시에서 일을 하다가 시골로 내려갔었어. 음하하.
10년 동안 시골에서 농사하면서 노름했지.
당시 결혼을 했었는데, 노름으로 돈을 크게 잃고 이혼하게 됐지 뭐야. 음하하"
4년 전, 이혼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는 호탕한 웃음을 빼먹지 않는다.
"이후 농사하다가 프놈펜으로 다시 와 툭툭 기사가 되었지.
생각보다 툭툭 기사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그는 툭툭 기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듯
개인 예약이나 팁을 많이 주는 손님을 만난 사례를 이야기한다.
"지금 나에게 있는 돈으로
(식당 옆 건물을 가리키며) 저 건물을 사라면 살 수도 있어."
"그럼에도 왜 툭툭에서 지내는 거야?"
"홀로 지내본 적이 있었는데, 적적하기만 하더라고.
가족도 꾸리지 않은 상황에서, 저 건물을 사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사랑하는 나의 툭툭에서 자는 게 더 낫지 음하하"
언제나 걸걸한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지만,
그가 툭툭에서 자고 지내기까지 보낸 적적함과 도박으로 잃은 것에 대한 기분을
그의 웃음에서 조금은 발견한다.
그는 덧붙여 말한다.
"나는 내 일이 좋고, 지금 이 삶에 만족해. 음하하"
누구보다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은
툭툭 기사에 대한 나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툭툭 기사.
웃음에 가득 찬 미스터퍼펙트.
그를 보며 어렴풋이 가진 툭툭 기사에 대한 내 마음을 떠올린다.
그 마음이 연민인지, 동경인지를 떠나
행복해하는 그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그들의 삶이 불운하다, 그렇지 않다는
오로지 나의 인생이 잣대에서 비롯된 거구나.
나는 남들의 삶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그들 삶에서 자신만의 행복이 있다.
그저,
각자의 삶을 살면 된다.
어떤 삶도 남에 의해 평가될 수 없다.
어떤 삶도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삶이다.
호탕하게 웃는 미스터퍼펙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오늘을 즐기는 거야.
좋은 가족이 또 생기면 좋기야 하겠다. 음하하
방 한 칸 크기도 안 되는 툭툭에서 먹고 자는 미스터 퍼펙트는
누구보다 행복한 웃음을 가지며 살아간다.
그는 자신의 툭툭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런 그를 보며
나도 내 삶을 더욱 사랑하기로 했다.
본 편은 [너의 데이지 1 : 동·동남아시아] 브런치북의 마지막 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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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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