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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Sep 26. 2024

순수하고 맑은

베트남 라오까이에서 만난 쑹



라오까이의 아침을 반기는 빠오의 강아지들

비가 내린 어젯밤의 흔적이

수증기 안개가 되어 라오까이의 아침을 가득 채운다.


저절로 눈이 떠진 아침 5시 30분.

부엌으로 나가니 일찍 일어난 내가 놀라운 듯

빠오의 아내가 동그란 눈으로 쳐다본다.


부지런히 불을 때며 아침 준비를 하는 그는

활활 타오르는 땔감 나무 위 솥을 지키고 있다.

그 앞에 타오르는 불꽃은 아궁이 때던 시절의 감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에게 살포시 인사한 뒤 라오까이의 산책길에 오른다.



뿌연 수증기를 비집고 펼쳐진 계단식 논은 내게 아침 인사 한다.

자욱하게 깔린 안개 넘어 자태를 드러낸 라오까이.


이른 아침부터 거리에서 흥정을 시작한 부지런한 상인들,

곳곳에서 꼬끼오 울어대는 닭 소리와

인기척에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가 들린다.


빠오네 강아지들. 안녕!


마을 아침이 가져다주는 청명함은 낯설지만,

그 낯섦이 익숙하게 다가온다.


낯선 익숙함은

조용하고

편안하며

따뜻하다.


가볍게 산책을 마친 뒤, 돌아와 아침을 먹는다.


싹싹 밥그릇을 비우고 나자

빠오의 동생 쑹은 흐몽족의 전통 옷을 꺼내기 시작한다.


수줍게 전통 옷을 꺼내며

내게 건네는 이유는 


어젯밤 이야기로 시작된다.






흐몽족의 전통옷을 입고, 빠오의 어머니와 함께.

어젯밤,

쑹을 따라 교회에 가서 흐몽족 예배를 구경한다.

베트남 산기슭의 한 교회에서 찬양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리듬에 맞추어 나오는 배경음악으로

쑹은 하나님을 향해 절실히 찬양한다.


쑹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베트남 고산지대 조그만 마을 소녀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에게 살며시 번역기로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


"저는 취미가 없어요.

제게 취미를 소개해 줄 수 있나요?"


그림 그리기, 산책하기, 노래 부르기 등

여러 취미를 제시하며

그가 자라온 팔레트 위보다

더 넓은 색채를 더해주고자 한다.


나 역시 아직 넓혀야 할 그림 앞에서 아쉬움을 느끼던 중

쑹은 예배하는 목사를 향한 시선을

내게로 돌린 뒤 번역기를 보인다.


"내일 저와 함께 라오까이의 아름다운 산에 가지 않을래요?

저와 흐몽족 옷을 입고 가요."



2024년 기준으로 쑹은 20살을 맞이한다.


고등학교를 가지 않은 쑹은 집과 마을을 누비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다음 주부터 마을에서 열리는 바느질학교에 다닐 예정이다.


쑹은 영어로 말하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마다

소녀 같은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순수하고 깨끗한 웃음은 덩달아 나도 미소 짓게 한다.


그에게서 나오는 순수한 미소에

당연히 그를 십 대 초반이라 생각했던 나는

곧 20살이 된다는 말에 적잖이 놀란다.


한국 고등학생에게서도 이다지 순수한 미소를 본 적이 있었나?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며, 

시험 공부에 매진하며 지내오는 

한국 고등학생의 모습이 스친다.


우린 언제부터 쑹의 미소를 잃어왔던 걸까?


쑹은 귀여운 헬멧을 쓰며 라오까이 마을의 전경을 보러 이동한다.

아침의 어스름이 라오까이 마을을 지배하는 듯,

여전히 안개가 마을에 스민다.

쑹의 오토바이에 올라 자욱한 안개를 뚫으며 이동한다.


은밀한 안개는 우리만의 상영회가 되어


우린 돌에 걸터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노란색의 라즈베리를 따 먹기도,

가는 길을 멈추어 사진을 찍기도 한다.


Rock Gargen에서 우린 뿌연 안개가 걷히는 걸 지켜보며 이야기 나눈다.



우린 서로가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한다.


드문드문 터지는 와이파이를 연결해

쑹은 '호랑수월가'를 재생한다.


주몽과 같은 사극풍의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쑹은

호랑수월가를 웅얼거리며 노래하며 묻는다.


"이 가사의 의미가 뭐예요?"


이뤄지지 못한 애달픈 사랑의 이야기를 해주며 나는 묻는다.


"이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일찍 결혼을 하잖아.

쑹도 성인인데, 결혼할 생각이야?"


"저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안 되었어요."


이미 쑹의 마을 친구들은 결혼할 상대가 있으며

결혼하여 남편 집으로 가게 되는 이곳 풍습으로

곧 성인이 되는 쑹도 결혼 상대를 찾아

빠오 집을 떠날 거로 생각했다.


우린 번역기로 대화를 나누었다.


"만약 제가 능력이 된다면,

나는 옷을 파는 가게를 열고 싶어요.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거예요."


쑹은 내일부터 가게 될 바느질 교실에서 2개월 동안 배운다.

이후 마을에 자신의 수선 가게를 차리는 것이 꿈이다.


순수하며 깨끗한 소녀 쑹.

그의 미소는 자욱한 안개를 정화하는 듯

어느새 마을 전경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아름다운 베트남 라오까이 마을을 배경으로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저는 제 삶의 이유를 찾아가고 있어요.

꿈이 있지만,
그 꿈을 위해서 사는 건 아니에요. 
아직 삶의 이유를 모르겠지만,
찾고 있어요."














무언가를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많은 과정이 수반된 결과이다.


무언가 내게 들어와

나에게 의미가 되는 경험이 되고,

경험은 내 생각이 되어

후에 실천으로 나아간다.

실천 이후 우린 '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의 태도에서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변화하는 나의 삶과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알을 갓 깨고 나온 병아리가 삐약 삐약 우는 것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쑹이 미소를 짓는 것처럼.


삶의 이유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지평선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인도네시아에서 받은 요한의 친절이 떠오른다.


요한 이야기 다시 보기 ▶  요한 이야기 


내게 무조건적인 베풂을 알려준 요한.


인도네시아를 여행할 당시

무료로 안내원이 되고, 나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준 요한의 과도한 친절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 쑹과 함께 전통 옷을 입고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쑹도 요한과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쑹도 전통 옷을 빌려주어 마을 일대를 함께 구경했기에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는데,

우린 함께 친구가 되어 서로를, 서로의 시간을, 서로의 추억을 공유한다.


요한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를 깨닫는다.


'나는 언제나 이익적으로, 돈으로만 생각했구나.

함께 나눈 시간의 가치, 서로 웃으며 행복을 나누는 것의 가치로도

우린 함께 하는구나.

정말 중요한 건 돈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돈으로 많은 부분을 평가했구나.



내게 큰 깨달음을 준 쑹의 순수한 미소를

집으로 향하는 오토바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가슴에 꼭 담아둔다.


쑹이 찍어준 소중한 사진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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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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