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순례길에서 만난 하다현
순례길에서 만난 첫 사람들 이야기 ▶ 너는 뭘 해도 잘할 거야
순례길 여정을 함께하게 된 5인방.
순례길 5일 차, 새로운 가족을 맞이한다.
길에서 마주친 다현 언니와 민성, 지영 언니.
우린 길 위에서 인사를 나누고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 되면서
순례길 여정을 함께한다.
다현 언니와 민성 언니는
같은 대학에서 영화를 배우고 있다.
걷는 걸 싫어하는 민성 언니는
엄마의 추천으로 순례길을 고민하던 중
다현 언니와 함께 오게 되었다.
"내 고등학교 때 버킷리스트였어!"
다현 언니는 2년 휴학을 한 뒤
1년 반 동안 촬영 현장에서 일을 했다.
이후 버킷리스트를 위해 순례길을 찾았다.
수많은 우연이 스친 뒤
우린 스페인 순례길 위에서 만났다.
다현 언니와 웃음 코드가 비슷한 나는
길을 걸으며 별것 아닌 거에 웃고
함께 서로에 대해 질문한다.
다현 언니는 유아교육과 실업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유치원 선생님을 꿈꾼 적이 한 번도 없다.
"글로 작성된 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게 좋아.
연출은 더 큰 능력이 필요하기에
나는 촬영감독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지."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를 하며 영화 입시를 준비 한 뒤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동진 평론가가 말했어.
영화는 책의 배움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이야."
언니는 책을 통해,
현장 일을 통해
영화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영화는 하나의 메시지 전달을 위해
2시간가량 하나의 정제된 메시지는 보내는 거야."
나도 영화계 쪽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기에
언니에게 고민하고 있던 질문을 던진다.
"요즘엔 책도 영화도 하향하는 흐름이잖아.
쇼츠나 짧은 영상도 집중해서 보기 힘든 세상이니까.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영화도, 책도 위기이지만
영화를 하든, 글을 쓰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굳이 하나에 매진 안 해도 되잖아."
"영화를 공부하러 간 사람들이
영화 쪽을 포기하는 이유가 뭐야?"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대게는 현장 일이 고되니까.
촬영 시에는 잠을 못 자거든.
사람을 혐오하는 순간도 오고."
드라마는 스토리보드가 없어
현장에서 배우와 조율하지만,
영화는 달라."
다현 언니는 촬영 감독이라는 명확한 진로 외에도
자기만의 확고한 꿈이 있다.
"서른 살에 친구들과 작업실 카페를 만들고 싶어.
친구들이랑은 작업실로 쓰지만,
손님들에게는 카페가 되는 거야."
"언니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
"어떤 집에서 살기보다
어떤 가구를 놓고 싶은지 생각해 봤어.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나누는 게 좋으니
원형 탁자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창문이 있고, 둥근 계단이 있는 2층 집이면 좋겠다!"
언니는 어린 시절 이야기도 공유한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이야기부터
엄마, 할머니와 함께 지내온 삶,
색소폰을 연주하는 오빠와의 관계까지.
이야기가 끝날 무렵 말미를 단다.
"결국 다 사람 사는 거지.
다 똑같은 가족이야"
삶을 이야기하며 걷는 순례길이기에
서로 우주를 공유하며 걷기에
길을 더욱 풍성해진다.
하루는 아침에 같이 발걸음을 맞춘다.
우린 하루 시작을 함께하며
각자 삶에 대한 고민과 진로, 삶에 대해 공유한다.
"나는 빨리 이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어."
"'빨리'한다는 게 뭐야?
왜 성공을 하고 싶은데?"
나는 언니의 대답 속에서
집요하게 철학적 부분을 꺼내 묻는다.
"여성으로 촬영감독이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똑같이 인맥을 쌓아도 남자 촬영감독이 선택되는 경우가 많아.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하지."
"그럼 결국 인맥을 어떻게 쌓느냐가 촬영감독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거야?"
"꼭 그것만은 아니야.
카메라를 어떻게 잡는지의 감각이 있잖아.
촬영하며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것들도 중요하지."
어느 날 아침,
다른 언니 오빠들은 일찍이 떠나고,
다현 언니와 단둘이 남아있다.
"언니, 나는 오늘 일기마저 쓰고 가려고.
먼저 가도 돼"
"나도 지금 써야겠다."
우린 함께 일기를 쓰다가
천천히 오늘의 순례길을 시작한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
비닐봉지와 우비로 무장하니
시계는 8시 30분을 가리킨다.
"좋아. 준비됐나?"
"준비됐다 오버--"
출발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비는 그쳤지만,
우린 서로 장난을 치며
무장된 모습을 만족한다.
다현 언니는 말한다.
"엊그제인가,
순례길을 걸으면서 '행복하다!'라고 소리쳤는데,
진짜 행복감을 느낀 거 있지,
의도하지 않았는데,
말하니까 정말 행복해져서 울컥했어."
"(웃음) 맞아.
순례길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느껴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구나.
현재를 살고 있구나.
이 순간을 살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고
느낌으로, 감각으로 온전히 느낄 때 울컥하지.
아, - 내가 지금을 살고 있구나."
우린 길 위에서 몰래 포도를 따먹는다.
몰래 먹는 맛으로
한참 걷다 보니 은의 길이 펼쳐진다.
비가 온 뒤로 아스팔트는 은색이 강하게 반짝인다.
"우와! 일기 쓰느라 늦게 출발해서
이 아름다운 길을 볼 수 있던 거잖아!"
노란색의 일출은 선명하게 은의 길을 채우고,
뚜렷하고 구름은 하늘을 광활하게 덮는다.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나눠서 좋다."
"아까 먼저 안 가길 잘했지? 흥-"
하루는 기부제 알베르게에서 다현 언니 단둘이 묵게 된다.
저녁 식사 이후, 촛불과 함께 순례길 소감을 밝힌다.
"제 어릴 적 버킷리스트였던 순례길을 하게 되어 기뻐요.
사람들이 자신이 어린 시절에 꾼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소감 뒤로 다현 언니가 소감을 이어 말한다.
"저는..."
목소리는 이내 떨리며 언니의 울컥함을 감추지 못한다.
순례길을 걸으며 언니가 느꼈을 아픔과 행복을 떠올린다.
나는 조용히 언니의 손을 잡는다.
"저는.. "
서로의 소감을 마친 뒤,
눈을 바라보며 부엔까미노를 외친다.
저마다 자기 안의 울컥한 감정을 다독이며
서로를 포옹한다.
"다현 언니~ 아까 울컥했대요~"
진지하고 경건했던 시간이 지나고
언니의 지난 행동을 걸고 장난을 친다.
언니는 웃으며 장난을 받아치고,
우린 파란 매트리스 위에 누워 오늘을 돌아본다.
한 방에 다 같이 잠드는 구조이기에
어느덧 잠에 빠진 다른 순례자의 코골이 소리가 들린다.
피식
우리도 서로의 숨결을 공유하며
또 다른 장난을 치기 전에 스르륵 잠에 빠진다.
부스럭부스럭
순례자들이 준비 소리에. 눈뜨니 7시.
이미 아침이 준비되었다는 듯
알베르게 봉사자가 순례자들을 깨운다.
비바람 예보에 맞추어
걷기도 전에 바람이 세차게 분다.
바람막이로 꽁꽁 준비를 마친 뒤, 여정을 출발한다.
걸으면서 비는 안 오고, 생각보다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았다.
"우리가 숲 가운데를 걷고 있어서
나무가 우리를 감싸줘서 그런가 봐."
"나무야 고마워! 사랑해!"
있는 힘껏 나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러나, 걷기 시작한 지 몇 분 안 되어 비가 내린다.
조금씩 거세지는 비는
바람과 함께 완전히 세차게 내린다.
우비로 비를 뚫고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간다.
헉 헉
다현 언니와 멀어져
어느새 홀로 걷게 된 길.
생각보다 쉽지 않은 우중 순례길에 숨을 헐떡인다.
가빠져오는 숨소리와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이하는데,
비가 개기 시작한다.
우와! 무지개다!
한참 맑은 하늘을 즐기며 걷다가
또다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는다.
오락가락하는 하늘 아래에서
추억 속 노래를 듣다 보니
갑자기 울컥해 눈물을 터뜨린다.
노래가 감동적 이어서일까.
혼자서 걷는 이 길이 갑자기 물밀 듯이 밀려와 나를 감싸서일까,
서럽게 소리 내 운다.
비를 뚫고 무사히 도착하니
미리 도착한 언니 오빠는 수고했다며 반긴다.
저녁을 만들며 바라본 부엌 창가 너머로 일몰이 진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연상되는 하늘은
아름답게 우리를 비춘다.
"그러고 보니 우린 항상 일출을 함께 했는데,
일몰은 처음같이 본다.
매번 저녁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못 봤잖아."
"오늘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쳤기에
이렇게 아름답고 오묘한 일몰을 볼 수 있는 걸까?
힘든 일을 겪고 나니,
더욱 아름다움이 펼쳐지다니."
우린 오늘 순례길의 여정을 다시 떠올렸다.
비를 쫄딱 맞으며 힘들게 걸어오고 나니,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의 향연들을 볼 수 있던 걸까.
힘듦이 있으니, 행복이 찾아오고, 감사함을 마주하는 걸까.
비가 갠 뒤,
우린 알베르게 근처에 돗자리를 핀다.
순례길 하루의 끝이 주는 여유를 느끼며
나는 다현언니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가족 친구 그리고 사람이야.
혼자서는 살아갈 수 있지만,
즐겁게는 못 살아갈 거 같아.
사람들과 즐거움과 기쁨,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으니까.
일정상 순례길을 일찍 끝내야 하는 나는
언니 오빠들과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인사를 하려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온다.
나도 모르게 정들어버린,
인연이 닿아 참 감사한,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지고
혼자만의 길을 걷게 된다는 사실에 눈물이 핑 돈다.
언니 오빠들은 노래를 부른다.
"우리 다시 만나리 --"
다현 언니도 노래를 같이 부르다 그만 울컥한다,
"그만!! 그만!!"
언니의 반응에 나도 다시 울컥해져 눈물을 숨기지 못한다.
실제 감정이 북받쳐 울컥하게 되는 그 순간.
우린 다시 만나기를 기약한다.
"우리 다시 만나리 ---"
"순례자 메뉴가 18유로!?
나는 차라리 굶을래.."
하루 예산을 3만 원으로 책정한 나는
슈퍼 빵으로 저녁을 갈음하려고 했다.
다현 언니는 내게 말했다.
"내가 사줄게"
"어째서?"
"너는 저녁을 받을 가치가 있으니까.
오늘이 바로 그때야.
너에게 베푸는 날 말이야."
나는 언니를 보며 괜찮다고 말하지만,
언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너를 사주는 게 아니야.
지금까지 네가 해온 것이 지불하게 만든 거야."
비바람을 맞으며 걷고,
알베르게에서도 차가운 공기에 있다 보니
곧 감기에 걸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몸이 무겁고, 얼굴이 뜨거웠다.
그러나, 다현 언니가 베푸는 저녁의 수프를 먹는 순간
온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그날 먹은 수프의 따뜻함은
언니의 말과 함께 오래도록 따뜻하게 내 마음에 남았었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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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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