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순례길에서 만난 호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면서!
순례길 걸으면서 느꼈던 게 있어?"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어.
보고 듣는 것 하나하나가 다 섬세하게 다가왔어.
모든 것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아.
그 감정은,
경이로웠어."
*이번 글은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이와 대화를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긴 글이지만, 여유를 갖고 천천히 흡수하며 읽기를 권장합니다.
순례길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걷고 쉬기를 반복되며 하루의 루틴이 생긴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길 위에서 여러 순례자와 눈이 마주친다.
우린 '부엔까미노'를 외치며 서로를 응원한다.
그중, 어젯밤 알베르게에서 함께 인사 나눈 분과 만난다.
그는 베드버그에 심하게 물린 상처를 보여준다.
"괜찮으세요?"
"안 물리셨다니,
같은 알베르게지만 운이 좋았네요."
그는 이번이 4번째 순례길이라며 짧게 본인을 소개한다.
그는 인생에서 중요한 기로에 놓였을 때 순례길을 찾았다.
순례길을 걸으며 큰 고민을 다루는 것이다.
두 번째 순례길은 아들과 함께 왔고,
세 번째는 포르투갈 길을 걸었다.
"저는 베드버그 때문에 세탁소에 들려야 해서 먼저 가계세요."
"조심하세요!"
이후,
한참을 걷다 보니 익숙한 뒷모습이 보인다.
'앗, 아침에 만난 분이잖아.'
나는 걸음을 빨리 걸으며
상대 순례자와 걸음을 맞춘다.
"안녕하세요!
베드버그 상처는 괜찮으세요?"
우린 호구조사 하듯 이야기하지 않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면서 서서히 자신을 열어간다.
처음부터 이름을 밝히지 않고,
각자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공유하고,
서서히 우주를 공유하며 그는 말한다.
"나름 이렇게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는데, 의문이 들었어요."
텔레커뮤니케이션으로 유학을 나오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나온 상대방은 말한다.
"부모님 바람으로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회사를 다녔어요.
나는 곧이 곧대로의 루트를 쭉 밟아왔는데, 나는 왜 항상 괴롭지?
나는 왜 항상 우울하지? 란 생각이 들었죠.
친구들이 연봉을 비교하며 좋아하면서 살아왔죠.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모르면서 살아온 거 같아요.
내가 갇혀서 살았구나 생각했죠."
깨달음 끝에 그는 40대가 되어 첫 산티아고를 다녀온 뒤
평생교육원에서 심리학, 철학과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는 남들과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걸 익숙하게 겪어왔잖아요.
그러나 장미가 대나무처럼 크게 자라게 하면 금방 죽어버리듯이
자기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각자 자신의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게
좋은 미래이자 앞으로의 교육이 지녀야 할 가치이죠."
서로 알게 된 우주가 넓어지면서
상대는 본인을 호빈이라 소개한다.
우리의 대화는 점점 깊어지며 심오해진다.
호빈
"정신병이죠. 제가 우울증, 조울증 진단을 받았어요.
그 상태로 환자인 상태로 순례길을 걸었던 거고,
사실은 환자인 상태로 살아온 거죠.
근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구나 다 환자인 거죠."
예진
"저도 동의해요. 사실 누구나 다 어디인가 아프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호빈
"정상범위에서 많이 벗어나면 많이 아픈 거고,
덜 벗어나면 덜 아픈 거죠.
정상범위에서 덜 벗어나는 방법은
우리가 말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무의식에서 발현된다는 것을 인지하는 거예요.
손짓을 하겠도, 지금 고개 흔드는 것도 무의식으로 작동하는 거잖아요?
그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정도에 따라서
삶이 의미 있어진다, 아름다워진다, 좋아진다.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겠죠."
마치 유체이탈하듯이 지금의 나와 나를 바라보는 나를 분리하면
지금 걷고 있는 예진과 그를 바라보는 예진을
개별적으로 인식할 수 있잖아요.
내가 걷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는 거예요.
같은 원리죠.
내가 의식적으로 꺼내서 바라보면,
예컨대 내가 도둑질을 하는 순간에,
아 내가, 도둑질을 하려고 하네라고 의식적으로 꺼내서 생각하면
도둑질을 안 할 거라는 거죠.
그러면서 잘못하는 나를 발견한
나를 벌주지 않고, 칭찬하는 거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예진
"매우 좋은 전략인데요."
호빈
"고등학교 때 배운 철학이 철학이 아니더라고요.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인가.'
그게 철학이더라고요.
그렇게 하면서 나를 객관화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철학의 의미인 거 같아요.
사람들은 내가 생각을 한다고 표현하죠.
혹시 생각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요?"
예진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호빈
"10초 후에 무슨 생각을 할지 정해놓고 생각할 수 있어요?"
예진
"의식적으로 생각하면 할 수 있죠.
'메타인지'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내가 아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 것을 모르는지 아는 능력이요."
호빈
"그렇죠.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요.
혈액순환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피를 빨리 돌게 하고 싶으면 뛸 수야 있겠지만,
내가 가만히 앉아서 콧물을 나오게 할 수는 없죠.
창의력도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올라오면
그걸 내가 창조했다고 생각했다고 하는 거죠"
예진
"다른 한 면에서는 맞지만, 다른 면에서는 맞지 않죠.
예를 들어 저희가 이렇게 걷고 있을 때,
걸을 수 있다고 생각으로 표현하지는 않죠.
의식적으로 우리가 걷고 있다는 그 개념을 떠올리지 않잖아요."
호빈
"반대로 그것도 무의식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죠. 둘 다 맞죠."
예진
"무의식에서 어떤 생각을 끄집어내느냐가 의식이다 아니 다를 결정짓는 거네요."
호빈
"그렇죠.
특히나 예수, 부처님 같은 분들은 의식적으로 가치 있는 생각을 끄집어내서 ···.
이 이야기를 하면서 깊게 끄집어내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처음이에요."
예진
"(웃음) 감사합니다.
저는 한편으로 제가 나 자신을 통제한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했었거든요.
이게 나 자신을 속이는 행위인 건가?
예를 들어,
내가 괜찮지 않고 힘든데, 나는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게,
내 감정을 억누르고 숨기는 건가?
나를 속이면서 나를 옭아매고 있는 건가?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옳고 그름은 없다지만, 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더 적합한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했었어요."
호빈
"저는 아직 의식적으로 내 생각을 통제해서 바람직한 생각을 꺼내기보다는,
여러 가지 생각이 마구 나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더 많더라고요.
그중에서 내가 의식적으로 고르는 거죠.
예를 들어, 빨래가 너무 하기 귀찮을 때, 내가 나를 바라보면
‘자고 싶은데..’ 어, 내가 자고 싶어 하네,
내가 누워있고 싶어 하네.라고 생각하면서
어느 순간 내가 빨래를 하고 있더라고요."
예진
"저도 제 감정을 말할 때 그걸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예컨대 화가 났을 때
'내가 화가 났구나.'라고 객관화하고자 하죠.
그걸 알고는 있지만,.. 종종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도 있죠(웃음)
그는 문득 내게 묻는다.
"혹시,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자라거나
책을 늦게 접했어요?"
"강원도 고성이라는 시골에서 자랐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다들 구구단을 척척 외울 때
저는 남아서 보충 수업을 받곤 했죠(웃음)"
얇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자 호빈 님을 말한다.
"그렇게 자라는 게 좋은 거예요.
어린 시절에는 많은 지식을 얻기보다
자기 감각에 충실해야 돼요.
모르는 것에 대해 궁금해하고
스스로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우린 끊임없이 깊이 파고드는 철학적 이야기를 나눈다.
호빈 님과 대화를 나눌수록 사고가 확장됨을 느낀다.
무엇보다, 내가 느껴왔던 사실을
확인하고 확신을 준다.
내 생각에 더해 첨언을 하는 호빈 님 덕분에
대화를 하며 새롭게 얻어간다.
호빈
"친구들이랑 대화가 잘되어요?"
예진
"제가 사람에 맞춰서 대화를 잘해요.
친구들에 맞추어 가면을 잘 쓰거든요(웃음)"
호빈
"역할 연기를 하고 있구나.
저도 아빠 연기를 하고, 직장인 연기를 해요.
연기라고 생각하면 내가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죠.
내가 아빠에 몰입되면, 아빠 일을 못했을 때 상실감이 큰데,
연기라고 생각하면 한결 가벼워지죠.
아 내가 지구에서 연기를 잘하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죠."
호빈 님은 순례길 중에 달팽이 나무를 찾곤 한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면 무심코 지나가버릴 나무에 매달린 작은 달팽이를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관찰하면 발견할 수 있는 작은 달팽이 나무.
그 순간이 진정 깨어있는 순간이 된다.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가며
우린 이후에도 몇 번의 마주침이 생긴다.
우연한 마주침 속에서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우리 앞으로 펼쳐진 풍경에 탄식을 부른다.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우리의 대화는 깊어진다.
호빈
"예진 씨, 어제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셨죠?
오늘 걸으면서 다시 생각해 봤어요.
저는 자유를 원해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유가 없으면 인간으로서 의미가 없어요.
자유란 무엇인가?
무엇으로부터 구속받지 않은 상태인 거죠.
’ 자유롭고 싶다’라는 것에 말 자체가 자유롭지 않은 거예요.
굳이 자유롭지 않아도 되는 게 자유로운 거죠.
말과 행위에 대다수가 무의식에서 나와요.
그 무의식을 하나씩 알아가는 거고,
그 생각의 원인을 알았을 때,
원인을 알고 내가 실현했을 때,
비로소 자유로운 거예요.
어렸을 때 불렀던 노래들이 계속 떠오르는 것은
어린 시절의 내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거죠."
나는 일본 도쿄에서 사토시와 나눈 대화가 떠올라 빗대어 말한다.
“일본에서 만난 이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요.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
호빈 님의 말과도 비슷하네요.”
"오늘도 순례길을 걸으면서 어렸을 때 부른 노래가 계속 떠올라요.
무의식 속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찾아가고
어린 나와 그리고 어렸던 부모님과 무의식 중에 마주하고 있던 거죠."
호빈 님은 언제나 나의 질문에 다른 질문을 하곤 했다.
나는 그의 질문을 통해
내 질문의 답을 알아간다.
호빈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다른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예진
"정말 많죠!
예를 들어 인도 맥그로드 간지에서 만난 스님도 찾고 있고요."
호빈
"대부분이 알 만한 공통인사도 있을까요?"
예진
"음...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도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미가 있었을 테고.."
호빈
"반고흐는요?"
예진
"고흐가 삶의 이유를 찾았는지 안 찾았는지는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고흐는 고통 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끝까지 정신병원에서 고통스러워했잖아요.
그렇지만, 태오한테 쓴 편지나, 꾸준히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
사람을 계속 그리워했다는 기록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투쟁을 하신 거 아닐까요?"
호빈
"저는 ‘신’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아요.
신을 형상화해서 지옥과 천국을 나누는 게 싫어요."
예진
"신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규격화되고 사람들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관습 속의 신이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신이 형상화 되었다'는 것에 동의해요."
호빈
"지구를 둘러싼 에너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예진
"뭔가를 얻는 것에서 만들어내는 힘.
에너지가 가진 능력을 신이라고 보는 거예요?"
호빈
"신이라기보다는 창조하는 힘이라고 봐요. ‘creator’이라는 표현을 쓰죠."
무언가를 창조해 낼 때 가장 아름다운 인간으로서 살아간다고 하죠.
자유로운 인간은 창조력이 많다.
자유로운 인간을 창조하는데 거침이 없다··.
아 - 자유롭고 싶다.
아 - 신이 되고 싶다."
예진
"창조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말씀하신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의미인가요?"
호빈
"생각 안 해본 질문이에요.
노란색을 칠하고 넘어갔는데 이 부분이 밝은 노란색인지, 어두운 노란색인지 물어봐준 느낌이네요.
고마워요.
최초에 뭔가를 만들어낸 것은 단 한 번의 사실은 없었던 것 같아요.
순환이죠. 결국 그 변형을 창조라고 봐요."
호빈 님은 이어서 내게 질문한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예진
"믿는 것은 내가 소망한다는 의미 같아요"
호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에 대해서 저희는 믿는다는 표현을 쓰지 않아요.
“나는 우리 엄마의 아들이면 내가 엄마 아들임을 믿어!”라고 말하지 않죠.
그런데 사람들은 “신을 믿습니다."라고 말하죠."
그는 길을 가는 중에 큰소리로 말한다.
"신을 믿어요! 나를 도와주세요!!!!
신을 믿습니까!!"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이내 진지하게 대화에 몰입한다.
"까르마 역시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까르마를 알게 되면, 까르마를 믿는다고 하지 않고,
“까르마를 안다”라고 표현하죠."
예진
"까르마가 언급되어서 하는 말인데,
까르마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적이 있었어요.
인도에서 느낀 빈부격차 앞에서
명상 선생님께 그 이유를 물으니, '까르마'라고 대답했어요.
"그자들은 스스로 극복할 힘을 가졌다"
제가 다시 질문했죠.
"불구자와 같이 스스로 헤쳐나갈 수 없는 사람들도 까르마인가요?"
“그런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우리가 있는 것이다.”
선생님의 말처럼, 호빈 님도 세상의 빈부격차, 불평등이 까르마로 인한 거라 생각하나요?"
호빈
"답하지 못하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까르마는 사회 연결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삶을 마감하게 되면 우리의 까르마들이 다시 합쳐져
다른 삶의 시작 때 까르마의 일부들을 가져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거죠.
전생에 다른 사람들의 모든 영혼들이 다 합쳐져서
다음 생에 새롭게 태어나는 거예요.
10명의 의식이 다 녹여지는 거예요.
그런데 다음 세상에도 100명이 됐든 10명이 됐든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데 우리 10명이 섞여서 다시 태어나는 거죠.
이전 생에서 잘못으로 인해
다음 생에서 벌을 받는 의미가 아닌 거죠.
그저 전생에 다른 사람들의 영혼이 합쳐지는 개념인 거예요."
물론 내 개인의 의식이 그중 가장 많은 비율로 나에게 돌아오죠”
질량보존의 법칙이 의식. 즉 까르마에도 같이 적용된다는 개념이에요.
호빈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될 때.
사람은 왜 매몰되는 걸까요?"
예진
"자기의 감정을 객관화하기 못하는 사람들이
감정에 자기가 잡아먹히는 거 같아요."
호빈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진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것도 여러 가지인데,
저의 경우는 제가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을 때 화가 나는 거 같아요."
호빈
"정확해요.
감정은 자기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때이죠.
분노는,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화가 나요."
사람이 가진 용량이 다른 거예요.
나는 1L짜리 용량이 있어서 화를 가득 채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누가 지나가다 쳐다만 봐도 화가 나는 거죠."
예진
"사람마다 용량이 다른 이유가 궁금하고,
화를 비우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도 궁금하네요."
호빈
"선천적인 이유도 있지만,
0세부터 3세까지의 가정환경이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하네요"
부모님이 화는 안내지만, 화를 꾹 참아도 아이들은 다 알거든요.
용량이 달라지는 거죠.
화를 비우는 방법은, 간단하죠.
화가 나는 종류 중에 흔한 게 정치.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아서 침을 뱉는 거죠."
예진
"저는 화가 나면 객관적으로 저를 보려고 노력해요.
'아, 내가 화가 났구나' 라며 원인을 객관화하는 거죠."
호빈
"화를 바라보면 사라지는 게, 부처님의 말씀이거든요. ‘관조’.
왜냐면, 화를 내서 화가 사라지는 게, 단 한 번도 없거든요.
오히려 화를 내서 좋아질 게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호빈
"저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은 40km를 아무 부담 없이 걸을 수가 있지만
어떤 사람은 15km만 걸어도 무리가 있잖아요."
예진
"저는 세상은 공평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한쪽만 보면 불공평하죠.
그렇지만, 다른 것들을 다 고려해 보면 마냥 불공평하다고 볼 수 없어요.
아인슈타인도 물고기 나무를 타지 못하고 원숭이는 수영을 못한다고 말하잖아요.
유기적인 관계에서 다 연결되어 보면은 다르죠.
그러니까 각자가 다 잘하는 게 있는 거예요."
이런 방식으로 인생은 공평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여행하면서, 살아가면서,
표면적으로 불공평해 보이는 일들을 마주하면서
스스로 많은 의심을 했던 것 같아요."
호빈 님은 예시를 말한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아이가
스스로를 비교하며 불쌍하다고 여기는 이야기이다.
예진
"그렇기에 더욱 불쌍하다는 표현을 하지 않아요.
나의 입장에서 봤을 때 비교를 통해서 불쌍하다고 판단하지만,
사실 결국은 다 자신의 만족으로부터 나오는 거잖아요.
동남아시아 여행을 통해
나라의 국력과 상관없이
자기 국가를 사랑하고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결국 행복이란 건 내 안에서 찾는 거란걸 깨달았죠.
가엽다, 불쌍하다, 불평등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결국 다 우리 스스로의 판단에서 비롯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빈
"우린 불공평하지 않아요.
인간 인간은 모두가 다 충만하니까
다 이미 완벽하니까
개인은 이미 다 넘어 완벽하니까.
하지만 세상은 불공평해요.
내가 먹고 싶은 빵을 어떨 때는 못 먹고
내가 갖고 싶은 비행기를 못 사니까요."
예진
"저는 완전 반대로 생각해요.
세상은 공평한데 우리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갖고 싶은 빵이 있으면, 자기가 빵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잖아요.
갖고 싶은 비행기가 있으면 그 비행기를 얻으려고 또 내게 시간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공평하죠."
호빈
"그것도 동의해요. 그것도 모순이 공존했어요."
예진
"(웃음) 맞아요.
인생은 모순이니까요.
호빈
"모순의 연속과 모순의 공존은 같이 될 수 있겠네요
예수님의 말 중에도 모순이 많거든요.
사랑하라 하고 돌로 쳐라라고 하니까."
예진
"그렇죠. 종교는 모순투성이예요.
그런데 제가 깨닫는 사실은 옳고 그름은 없는 거 같아요.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삶도 결국은 자기만의 삶의 방식인 거죠.
자기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는 것뿐이지,
옳고 그름의 잣대 없이 살아가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어요."
호빈
"내가 바뀌어야지만, 세상이 바뀌어요.
사회라는 단어로 이야기하지만,
사실 사회는 내 머릿속에 있는 게, 다 다르죠.
지금 예진님 사회, 제 사회는 완전히 다 다르겠죠.
서로가 각 가자 자기만의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단 말이에요.
내가 바뀌면 사회가 바뀌죠."
호빈 님은 산티아고를 통해 얻은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근본적인 변화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방법을 깨닫는지 아닌지였고,
우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우린 지나가다 한 마을에 들러 잠시 쉬어간다.
호빈 님은 담배를 사고 돌아와 함께 빵을 나눠먹는다.
호빈
"저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사이비도 찾아가고, 산중의 토테미즘도 찾아가고 그랬어요.
세상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봤죠.
그렇지만 산속의 그런 구루들은 자신의 얼굴을 박은 기념품을 팔더라고요."
나는 진리를 좇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삶의 의미를 찾는 청년과
삶의 의미를 쫓아온 중년.
우린 따뜻한 차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간다.
호빈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에서 말한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개념 없는 직관으로
맹목적으로 신과 영성을 자꾸 찾는 거 같아요.
저 역시 개념 없는 직관에 치우치다 보니
사고를 막 찾아 헤맨 거예요.
논리적으로 알고 싶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발도르프를 접하게 됐죠."
* 발도르프 교육 (Waldorf education)
발도르프 교육은 1919년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가 창시한 교육 방법론입니다. 이 교육법은 학생의 창의성과 자아를 존중하고, 발달 단계에 맞춰 교육을 제공하며, 감각적 학습과 예술적 활동을 통해 자유로운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목표이다.
호빈
"우리의 삶을 굉장히 과학적으로 설명하죠.
예를 들어, 지구는 4가지 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력 척력 중력 전자기력.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은 살짝 떠오르고
여름은 떠올랐던 게 확 커지고
가을은 모으고
겨울은 꽁꽁 더 뭉친다.
살짝 피어나고 확 만개하는 것은 양,
가을과 겨울은 모아지는 것은 음.
봄이 지나면 봄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되듯이
우리의 삶도
아기였을 땐 봄
청소년기의 여름
40~50대의 가을
6~70 80대의 겨울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지구도 마찬가지고
태양계도 마찬가지고
우주도 마찬가지죠.
이런 식으로 삶을 과학적으로 표현한다고 말하죠."
예진
"발도르프! 처음 듣지만, 교육 방향이 제가 생각한 것과도 비슷한 거 같아요.
발도르프 교육의 교육 철학은 뭐예요?"
호빈 님은 내 질문을 받고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연다.
호빈
"제가 지금 고민하는 이유는
(찻잔을 가리키며) 이게 뭔가요라고 물어봤는데
컵이라고 말을 해야 될지, 도자기로 말해야 될지,
물을 담는 거라고 말해야 될지, 원통이라고 말해야 될지,
즉각 직사각형이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예진
"컵이라 대답한다고 생각해 주세요."
호빈
"교육의 목적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자유롭게 크도록 도와주는 거죠.
아이들 있는 자유를 찾도록 도와주는 게 교육의 목적인 거죠."
예진
"좋은데요.
그게 바로 호빈 님의 삶의 이유잖아요."
우린 철학 탐구에 푹 빠진 채로
다시 순례길을 출발한다.
호빈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잘 살아간다는 건 또 다른 말로 '잘 죽어야지'라는 의미이죠."
예진
"이게 언어의 차이인데,
‘잘 죽어가야지’라고 생각하면, 죽음에 초연해지고,
순간을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해서 더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거 같아요."
호빈
(웃음)
예진
"왜 웃으시죠?"
호빈
"제가 지금.. 부처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거 같아서요.
무슨 공자님과.. (웃음)"
예진
(웃음)
하루는 다현 언니와 돗자리를 들고 피크닉을 나온다.
햇살이 내려 나무 그늘이 펼쳐져있던 순간은
해가 올라갔는지 햇살은 사라졌다.
여전히 소풍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던 호빈 님도 피크닉 장소로 찾아온다.
"저도 같이 이야기 나눠도 되나요?"
우린 눈을 감고 호빈 님의 제안에 따라
눈을 감고 우리를 이루는 소리가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 나누었다.
그 당시 우리를 이루는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울림만을 느낀다.
새소리, 바람소리,
오로지 우리를 이루는 구성하는 자연의 소리에 집중한다.
차소리, 심장소리, 사람들 이야기하는 소리,
시청각을 이용해, 심상을 이용해 들은 소리에 집중한다.
호빈
"이걸 하려는 목적은 감각을 키우고 사고를 줄이려는 목표이죠
이게 현재를 사는 방법이에요."
예진
"저도 정말 공감하는 게, 제가 살아있음을 느낄 때는 현재를 살 때더라고요.
지금 이 순간의 바람만을 느낄 때, 현재를 살 때, 살아있음을 느껴요."
호빈
"사실 현재에만 내 감각이 열리고
생각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대부분이거든요.
생각에 빠지는 문제에 접하게 되죠. 이건 자명한 진리.
불교에서는 이걸 소승불교라고 하죠. 자신의 현재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는 관련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렉산더 대왕이 나무통에 기거하고 있는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원하는 것을 다 이뤄주겠다고 말해요.
디오게네스가 대답해요.
“알렉산더 대왕님, , 당신이 지금 햇빛을 가리고 있는데,
한 발자국만 옆으로 옮겨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해요.
이 사람이 원한 거는 금, 은, 보화가 아니라 순간의 햇빛인 거뿐이었죠."
호빈
"고민이 뭔데요?"
예진
"사실 저는 큰 고민이 없어요.
굳이 생각해 보자면,
염색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죠 (웃음)"
호빈
"대부분 고민은 사실 큰 고민이 아니죠
이러나저러나 삶을 살아지죠.
고민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대부분은 뭘 하든 상관없어요."
예진
"그렇죠.
결국은 그걸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한 거 같아요.
무엇을 하든 그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고,
제 삶을 살아가면 되는 거죠."
호빈
"결국 모든 고민은 왼쪽으로 가면서 동시에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 거죠."
예진
"맞아요.
결국 마음 끌리는 거 하는 거 같아요."
호빈
"우리는 깨어있을 때 살아있고, 자는 순간 반은 죽죠.
태어나면 on이고, 자면 off에요.
바꿔 생각하면,
죽어있는 게 정상상태이다가
우리가 잠깐 태어난 걸 수도 있잖아요.
별들을 봐요.
원래 켜져 있는 상황이 off고 사라졌을 때 on이 된 거라 상상해 볼 수 있죠.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잘 때가 on인 거고, 깨어있던 게 off인걸 수도 있죠."
그는 이어서 질문한다.
호빈
"죽음이 두렵나요?"
다현
"너무 두렵죠. 죽음이 두려운 거뿐만 아니라. 모든 게."
호빈 님은 내게 묻는다.
예진님은 죽음이 두렵나요?
예진
"(오랫동안 침묵 이후)
제 주위의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아직 안 겪어봐서,
소중한 사람이 죽음에 대한 것은 실감이 나지 않는 거 같아요.
저 자신의 죽음은 두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거 같아요.
저는 항상 죽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언제나 이 순간이 마지막이고,
곧 죽는다고 생각해서 그런 면에서는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언젠가는 사라질 거야,
나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어 와 같은 두려움은 없어요.
달라요."
다현
"나이가 들어서, 아파서 죽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예진
"없어."
호빈
"저는 포루투갈길 걸었을 때 피네스테야의 이름 모를 산에 올라가서 느낀 감정이 있어요.
‘와 내가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그 말은, 내가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한다는 거였죠."
예진
"저는 그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거 같아요."
호빈
“만일 누군가가 ‘나는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아!’라고 말하면,
진짜 두려워하지 않아서 이야기한 거 같지만,
아이가 도리도리 안 해!라는 말을 하는 거랑 같죠,”
아이가 진짜 도리도리를 안 할 때에는 ‘나 도리도리 안 해’라는 말을 하지 않잖아요.
예진
"어떻게 죽고 싶으세요?
어떻게 늙고 싶은가요?"
다현언니는 내 질문에 웃으면서 먼저 답하라 말한다.
예진
"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고 언제나 젊게 생각하고 싶어.
‘난 늙었으니까 안돼’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여전히 난 할 수 있어!"
호빈
"저는 ‘단칼에 죽고’ 싶어요.(웃음)
어떻게 죽어가고 싶은지 그런 고민 안 하고 살다가 죽고 싶어요. "
예진
"현재의 삶에 충실하게 사는 삶."
호빈
"결국 그거죠.
내가 시행착오를 알게 된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거죠.
저는 십 대 때 스무 살에 죽을 거라고 많이 말했어요.
어릴 때 힘들었나 봐요.
결핍이 결핍된 아이를 만든 거죠.
배고픔도 좀 알아야 하고, 굶주림도 겪었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스스로의 삶에서 결핍의 존재를 모른 채로 살아온 거죠,.
지금의 제가 그걸 깨달아서 다행이에요."
예진
"스무 살에 안 죽은 게 다행이네요 (웃음)"
다현
"저는 끝없이 배우는,
끝없이 많은걸 취미로 가져서 경험이 많은 40살을 꿈꿔요.
40살이 젊다고 말은 못 하고, 늙다고도 말하지 못하는 나이이니까"
호빈
"첫날에 만난 아일리쉬 아저씨를 만났는데,
그 사람 직업이 스토리텔러라고 말하더라고요.
예진 씨도 희망을 찾아가고 싶다고 했잖아요."
예진
"희망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가는 거예요.
제 삶의 이유는 희망인 거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믿음이 건죠. "
호빈
"희망은 너 안에 가득 차있다고 조언하려 했는데,
이미 그걸 실현하고 있네요."
나는 웃으면서 호빈 님에게 삶의 이유를 기록해도 되는지 묻는다.
그는 순례길 위에서 말한 삶의 이유를 곱씹으며 데이지 꽃을 집어 든다.
삶은 현재의 연속이란 걸 첫 까미노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현존할 때만이
내가 즐겁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이에요.
그렇기에
제 삶의 이유는 늘 현재에 현존하는 거예요.
그의 대답을 들으며 이전 말을 떠올린다.
'우린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로서
현재를 자각하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최후의 순간에서 비롯된
실존적 깨달음은
현재를 살아가게 한다.
현재는 살아가며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죽음은 우리에게 삶의 이유를 준다.
삶은 죽음이다
죽음은 삶이다.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향해간다.
삶의 일부인 죽음은
삶의 방식을 알려준다.
죽음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알려준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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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