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스페인에서 만난 신용환
산티아고순례길을 시작하며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걷기도,
홀로 고독하게 한계에 도전하며 걷기도 했다.
그 여정의 끝 무렵, 100km를 남기고 사리아에 도착했다.
사리아에서부터는 친오빠와 함께 걷는다.
# 순례길 24일 차: 어 오빠, 왔어?
"오빠!!!!"
기차를 타고 도착한 오빠가 카페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생전 해외에서 만난 적 없던 오빠.
스페인 작은 마을에서 재회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오빠와 세계일주를 시작한 뒤로 오랜만에 만났지만,
마치 어제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반가워!'보다, '왔구나!'의 느낌이다.
"어, 왔어?"
우린 짧게 포옹을 마치고 슈퍼에 가서 음식 꾸러기를 산다.
햄과 치즈를 얹어 슈퍼에서 먹으며
오빠가 한국에서 스페인 작은 마을에 오기까지의 3일간 여정을 듣는다.
"중국 공안들이 계속해서 나를 검사했어..!
스페인에 왔을 때, 버스 정류장에서 정말 우연히 버스를 타게 되었다니까!"
오빠는 빵도 먹지 않고 마구마구 말들을 쏟아낸다.
3일 동안 환승도 하고, 기차, 버스도
스스로 탄 여정을 매우 흥미로워한다.
여행의 시작점에서
벌써부터 여러 가지 사소한 것들에 반응하고,
신기해하는 오빠의 모습을 보니
내가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첫 국가였던 일본에서 공항 가는 과정에서부터 마음 졸이고
순간의 조그만 선택에도 떨려했던 순간들.
한참 첫 설렘을 이야기 나누다가
우린 크레덴셜 발급을 해주는 카페에 갔다.
걷다 보니 문득, 오빠가 스페인에 왔다는 걸 실감한다.
"오빠! 우리가 지금 스페인에 있어!"
잔뜩 신난 채로 크레덴셜을 받았다.
호기롭게 시작을 외치며 남매의 순례길을 시작한다.
오빠는 말한다.
"오늘 40km를 가야 하는 거의 계획에
차질 없이 해내볼게!"
짧게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지도 이야기 나누며 걷기 시작한다.
출국 전까지 오빠 집에서 살았기에,
오빠는 내가 출국한 뒤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예진, 네가 출국하고 한 달 동안은 크게 공허하더라."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큰 힘이 되고,
큰 존재가 되어준다는 사실이 고맙고 좋았다.
동시에,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되는 존재라는 사실이,
내가 조금씩 성숙해지는 사실이 실감 났다.
"나를 유럽으로 불러줘서 고마워.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나의 에너지를 받아 자기도 조금 태도를 바꿔보고 싶어. "
나는 여행하면서 느꼈던 것들, 있었던 일화들을 이야기 나눴고,
오빠는 고민과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중간에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감사함을 가지며 걷고 또 걸었다.
한 15km 정도 걸었을까,
오빠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잠시 버스 정류장에서 쉬며 오는 길에 딴 사과를 먹었다.
"꿀맛이지?"
"응. 완전."
푸르게 잘 익은 사과는
순례길 위에서 비타민이 되었다.
오빠는 점점 느려지는 걸음 속에서
사과를 먹으며 말했다.
"걷는 게 마냥 쉽지 않네."
우린 10km만 더 걸어보고
30km가 되었을 때 다시 쉬기로 결정했다.
다시 큰 마을을 지나가며 걷는데,
오빠의 걸음은 점점 더 느려졌다.
"예진아,
나는 앞으로 더 걷기에는 힘들 거 같아."
오빠는 오랜 시간 비행을 하고,
밤 버스를 탄 뒤에
거의 15kg에 육박하는 배낭을 메고 걸어왔기에
그의 피곤함을 충분히 이해했다.
"나도 처음에 생장에서 출발할 때 25km 걷고 엄청 힘들었거든.
오빠는 무거운 배낭으로 여기까지 걸은 게 정말 대단한 거야!"
오빠는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했다.
나는 진심으로 오빠가 대견했다.
한국에서 오빠와 나는
정은 찾아볼 수 없는 남매였다.
서로에게 관심도 없는 남매.
순례길 위에서 오빠를 다시 만나고는
오빠가 나를 위해 배려하는 모습과
나도 모르게 오빠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게 신기했다.
나, 가족을 꽤나 챙기는 사람이구나.
나중에 남들에게도 가족처럼 챙기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예진아, 10분만 더 쉬었다 가자.."
오빠는 더 이상 걸을 수 없겠다는 듯, 휴식을 호소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다리 풍경을 보면서 잠깐 쉬었다.
"지금까지 700킬로를 걸은 네가 참 대단하다."
"마냥 쉬운 길이 아니지.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비를 맞으며 홀로 걸어오는데,
해가 뜨는 걸 보니가 눈물이 절로 나오더라.
속도에 상관없이 꾸준히 끝까지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고 있어."
15분만 더 힘내서 가보자는 나의 말에
오빠는 힘을 내어 다리를 건넜다.
우여곡절 20km의 첫 순례길을 마친 오빠는
누구보다 피곤한 표정으로 행복해했다.
우린 내일 계획을 세웠다.
동키 시스템으로 오빠 배낭을 미리 목적지에 보내고
40km를 걷기로 했다.
씻고 난 뒤, 피곤에 휩싸인 우리는
오후 6시임에도 곧바로 잠을 청했다.
잠들기 전 천장을 바라보며 요 근래 드는 생각을 돌아봤다.
하루빨리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다.
풍경을 보고 사진을 찍고,
진정으로 길 위에 있는 이 순간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게,
비가 안 내릴 때,
날씨가 좋을 때 최대한 많이 걸어놓아야 하고,
체력이 남았을 때 최대한 빠르게 가야 한다.
나는 목표한 양이 있고,
그 양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온전히 길을 즐길 수 없어왔다는 것.
목표한 40km를 걷지 못했지만,
20km를 오빠와 함께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오빠가 스스로 걸을 수 있다고 되뇌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모습이 참 좋았다.
카메라를 들 때, 밝게 웃으며 브이를 하는 모습이 참 좋다.
책임감 있는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오빠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이번 여행에서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
어느덧 순례길도 3 일남짓 남았다.
이 순간이 참으로 소중하면서
동시에 빨리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내일 날씨도 해가 뜨기를,
감사함이 참 가득해지는 길 위에서,
오늘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참, 소중하다.
순례길 위의 소중함들을 느끼면서 조금이나마,
지금 그걸 남기기 시작하면서 참으로 감사하고, 좋다. 졸리다....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겠으나,
90킬로 남짓밖에 안 남은 이 순간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700킬로의 순간들 속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끝나고 편안하게 혹은
매우 불편하게 알베르게에서 묵어오면서,
한 층 씩 더욱더 나의 어설픔을,
나의 모자람을,
나의 이기심을 느끼면서
언제나 감사함을 가진다.
#순례길 25일 차: 조금씩 조금씩
새벽 6시, 밖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지만,
감사하게도 태풍과 같이 폭풍처럼 내리지는 않았다.
오빠의 배낭을 동키시스템으로 보낸 뒤 7시 즈음 출발했다.
여전히 해가 뜨기 전 시간이기에
스페인의 새벽은 어둡다.
숲 속을 뚫으려 산을 넘는데
비가 점차 심해지더니,
온 바닥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젖은 신발로 휴대폰 전등과 우리의 직감에 의지하며
걷고 또 걷는다.
어두운 새벽이면서 비가 억수로 내리고,
여전히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길고 길었다.
우린 묵묵히 앞만 보면서 걸었다.
오빠와 간격이 벌어진 채로 걷기도,
억수로 불어오는 바람을 뚫고
노래를 들으면서 걷기도,
그 노래에 의지해 생각을 온전히 비우고 하며
그저 걷고 또 걷는다.
오빠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걷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예정된 여행 계획을 맞추기 위해서
오늘은 무조건 40km를 걸어야 하는 상황.
점점 강해지고 그칠 줄 모르는 비바람에
나조차도 정신이 혼미해졌다.
오로지 내가 걷는 발 앞만을 보면서 걸었다.
눈앞에 있는 길만을 바라보며 차근차근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10km 정도를 걷다가
갈림길에서 오빠를 기다리는데,
비바람을 맞으며 처음 걸어본 오빠는
거의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온통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서는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못 가."
오빠는 고통 속에서 선언했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앞에는 가야 한다는 선택지밖에 없다는 것을.
"지금 도로변에서 추위에 떨면서 그저 바닥에 앉아 쉬는 것보다
우선 다음 마을까지 가는 거 어때?"
오빠를 타이른 뒤에 꾸역꾸역 오빠와 함께 걸었다.
서로가 정신이 혼미하지만,
우선 다음 마을까지 가자는 목표아래에서 계속해서 걸었다.
오빠는 어디가 아프기 시작했는지
혹은 투정버튼이 시작되었는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먼저 떠나는 나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오빠.
기다리고, 다시 출발하고, 또다시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아. 힘들어. 힘들어. 힘들어."
다시 만날 때마다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오빠가 귀찮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오빠가 고마웠다.
그 속에서 나도 스스로 한계를 넘어가며 정신력을 붙잡았다.
그렇게 열 감정이 교차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오후 5시 반이 되었다.
한계에 왔는지, 오빠는 투정을 더 심하게 했다.
급기야 바닥에 주저앉아서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못 가."
오늘 알베르게까지 10분 남짓 남은 상황.
오빠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간다' 밖에 없었다.
나는 오빠에게 위로도 하지 않고 그냥 갔다.
오빠는 욕지거리로 온갖 투정을 부리면서도
다시 조금씩 따라왔다.
그 모습은 마치
강아지에게 간식으로 유인해 따라오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전화를 한 통밖에 안 할 수가 있어?"
나는 오빠의 투정을 들으며 나를 찾아오는 감정을 맞았다.
오빠가 계속해서 투정 부리는 모습이 싫었다.
어린아이처럼 자꾸 의지하려는 모습이 싫었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면서 걷는 게 싫었다.
서로가 예민해진 상황.
우리의 목적은 순례길을 걷는 건데,
서로에게 감정낭비로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일단 도착하고 얘기하자"
오빠는 다시금 묵묵히 나를 따라오더니 말했다.
"예진아, 너도 힘들지?"
처음으로 내 심정을 살펴준 오빠의 말을 들으니
투정 부리는 오빠에게 가진 미운 감정이 미안했다.
작지만 소중한 오빠의 공감을 받아 우린 힘을 내 계속해서 걸었다.
다 함께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행복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알베르게 따뜻한 물은 어찌나 좋던지,
그저 따뜻한 물을 틀어놓고 샤워하는 게
이렇게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다시 느꼈다.
하루 저녁을 마무리 한 뒤,
잠들기 전 침대에서 오늘 느낀 감정을 곱씹는다.
비가 억수로 내려 땅만 보고 걷는데 속상함이 밀려왔었다.
'순례길 풍경도 음미하면서
'걷는 행위'의 의미도 느끼고 싶은데,
영락없이 계속해 내리는 빗줄기가 속상했다.
다른 한편으로 다른 생각도 들었다.
'또 언제 태풍의 한가운데에서,
비를 맞으면서 8시간을 걸어보겠어!'
또 다르게 생각하면,
'이런 걸음 역시도,
하나의 인생의 연속이니까!
인생의 모든 순간이 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걷는 길처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도 있고,
우박이 내리는 날도 존재하며,
그 속에서 다시 떠오르는 태양에 감사하고,
무지개에 기뻐하며,
빗길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투정 부리고 불평하는 오빠에게 느꼈던 미움,
그 속에서도 나를 공감해 준 오빠에게 느낀 감사함,
나를 스쳐간 모든 모순적인 감정들을 돌이키며 생각했다.
순례길은 참 인생과 같구나.
#순례길 26일 차
아침에 동키 서비스 관련처리를 하느라 오빠는 먼저 출발했다.
오랜만에 노래를 들으며 혼자 걷기 시작했다.
비는 오다 말고를 반복했지만,
어제처럼 강풍이 들이닥치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여유를 한 껏 즐겼다.
한참을 걷다 보니 오빠가 보였다.
조금 심각해 보이는 상황을 느끼며 다가갔다.
물집이 심하게 잡힌 오빠가 압박붕대를 풀고 잠시 쉬고 있었다.
오빠는 그간의 고통을 줄곧 참아왔지만,
본인도 계속해서 걷는 게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내게 물었다.
"그래. 예진아, 택시나 버스를 타는 게 나을까?"
나는 오빠가 힘들어하는걸 충분히 이해하지만,
솔직한 내 심정을 말했다.
"오빠가 지금까지 걸어온 60km가 아까워.
지금 힘든 건 이해하지만, 결국 택시를 타고 마무리하게 된다면,
난 오빠에게 많이 실망할 거 같아."
오빠는 다시 힘을 내서 걷기로 했다.
우린 편의점에서 산 초콜릿과 빵을 먹으며 거리에 앉았다.
15km를 걸어 목표의 절반 치를 온 상황이었다.
"예진아, 나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야."
"그래.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간다' 밖에 없어.
그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건 우리만 손해이지.
걸어가면서 힘이 되는 생각을 하는데 더 나아."
점심 먹기 전에 주룩주룩 내리던 비에 햇살이 채워졌다.
우리를 비추는 햇살에 몸이 조금 따뜻해졌다.
"오빠, 오늘은 내 속도대로 갈 거야.
오빠도 오빠 속도로 맞추어 걸어봐."
우린 각자만의 속도로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남은 15km를 홀로 걷기에 오빠는 크게 다짐하며 말했다.
"처음에는 너의 속도에 맞춰서 걸어볼게.
나중에라도 포기하지 않고 걸을게."
출발하려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거세기는 빗방울이지만,
오빠는 나의 속도를 따라 열심히 걸었다.
"아!!!"
중간중간 고통에서 나오는 아우성도 지르고
짐승처럼 헉헉 거친 숨소리를 내보이지만,
그는 소리 지르며 계속해서 걸었다.
"할 수 있다!!!!"
꿋꿋하게 걸어오는 오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오빠가 고마웠다.
자꾸만 불평하는 오빠와 같이 걷기 싫고,
부정적인 오빠에게 영향받는 게 싫으면서도
바뀌고자 노력하는,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오빠 모습에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빠와 조금씩 벌어지는 간격에 따로 걷기 시작하며
새로운 순례자와 인사를 나눴다.
오렌지를 건네며 순례자는 말했다.
"월요일에는 일기예보가 좋아요."
우리가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게 될 월요일.
화창한 예보 속 식을 받으며 더욱 힘을 내어 걸었다.
지나가던 순례자는 라벤더를 비벼 내게 선물해 주었다.
나눔을 아는 손길이 참 곱고 예뻤다.
걸어야 하는 km가 조금씩 작아졌다.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지난 800km를 걷던 순간이 밀려왔다.
갑작스러운 기억들에 울컥함을 느꼈다.
순례길이 어느덧 벌써 끝이 되었다는 사실,
순례길 이후의 진짜 다시 여행이 시작될 거라는 사실 등
머릿속에 생긴 공백을 차지하는 무수한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비가 억수로 내리다가 다시 그치기를 반복했다.
어느덧 비가 내려 땅만 보고 걷는 게 익숙해질 무렵,
다시 해가 뜨면 또 눈물이 왈칵 흘렀다.
비가 한창을 내리다가 개었지만,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들이 비를 흉내 내며 계속 떨어진다. 귀엽다.
빗물이 무섭도록 내려
땅을 가득 채웠다.
이로 인해 생긴 진흙은 질퍽질퍽하게 내 신발을 적셨다.
진흙에 움푹 파여 결국 신발이 다 젖고 만다. 이런!
빗물이 고인 부분들을 요리조리 피해 걸어보려 하지만,
결국 다 젖고 만다.
동시에, 비로 인해 생긴 아름다운 장면을 바라봤다.
빗물이 강해져 거센 물살의 강들을 이룬다.
길목길목마다의 조성된 숲 같은 거리들은
영화같이 아름다운 장면의 연속이었다.
갖가지 감정과 생각이 교차하고
질펀한 진흙길, 아름다운 숲 속 길을 교차해 걷다 보니
오늘 마지막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순례길 27일 차: I hear a symphony
마지막 날에도 친오빠의 코골이를 당해낼 수 없었다.
코골이를 피해 히터와 떨어져 잠드니 추위에 4시에 일어났다.
일어나 멍도 때리며 정신없이 끝나가는 유럽 여행을 돌아봤다.
정신없이 유럽 여행을 마치고,
순례길을 시작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쭉 걸어오기 시작한 그날의 종지부를 찍는구나.
정신없이 걷고 또 걸으며 어느덧 마지막 날.
우리는 20km 뒤로 산티아고 대성당을 맞이할 예정이었다.
걸음을 순조롭게 시작했다.
도로를 뚫기도 하고, 숲 속을 걷기도 했다.
비가 갠 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순례길에서
감사하게도 우리를 계속 괴롭혔던 비는 내리지 않고
아름다운 별들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오빠들이 좋아하는 이디엠 노래에 맞춰
리듬감 있게 걷다 보니 1시간도 안되었는데 4킬로를 걸었다.
비가 개고 해가 뜨려고 날씨가 좋아지려는지
하늘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구름이 짙게 땅까지 내려앉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빠르게 흐르는 속도 앞에서 오빠는 조금씩 뒤쳐졌다.
대성당 미사를 보기 위해서 빠른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
그럼에도 나는 오빠와 산티아고 대성당에 함께 보고 싶었다.
저녁 버스로 바로 포르투갈로 떠나는 우리는
오늘 낮 12시에 진행되는 미사가 유일한 기회였다.
12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어느새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오빠는 그런 마음에 부흥하지 못한 채, 조금씩 뒤쳐지고 있었다.
"오빠, 할 수 있어.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해"
오빠를 다독이고, 응원을 불어넣었다.
신나는 노래에 맞춰 하나 둘, 하나 둘을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오빠의 걸음을 얼마가지 않아 다시 느려졌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나에게 오빠는 답했다.
"나도 마음은 빨리 가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줘."
나는 말했다.
"오빠가 몸이 안 따라 준다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몸은 안 따라주는 거야.
오빠가 머릿속에 있는 그 생각을 없애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채워야지.
오빠, 지금처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워봐."
나는 빠르게 걷다가 벌어지는 간격에
오빠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어느덧, 10km가 적힌 비석을 지나쳤다.
"오빠, 10km만 남았어. 우리 갈 수 있을 거 같아!"
오빠는 내 말을 듣고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예진아, 먼저 가."
나는 오빠 말에 당황해하며 이유를 물었다.
"네가 나의 속도에 맞추다가 너까지 미사를 못 볼 거 같아."
오빠는 말하면서 코끝이 찡한 채로 울먹거렸다.
나도 그런 오빠를 보면서 괜히 울컥했다.
오빠의 마음이 공감되지만, 나 역시 오빠를 기다려주고,
미사를 포기한 채 함께 가주지 못한 미안함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 역시 그랬다.
함께하는 소중함보다
우선 내가 경험하는 소중함을 우선시하며 살아왔다.
순례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일요 미사를 봐야 하고,
오빠와 함께 끝까지 이야기하며 걷는 것보다
내가 먼저 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울컥한 채로 오빠와 헤어져
나는 걸음을 더 빨리했다.
남은 건 어느덧 2시간 남짓.
조금씩 속도를 냈다.
괴롭히던 비와 우박이 그쳐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경이 연속으로 펼쳐졌다.
조금씩 떠오르는 햇살이 나무숲에 번져 주홍빛의 빛의 향연을 만들어냈다.
수증기로 가득해져 무거워진 구름은 바닥까지 내려와 마을의 운치를 더했다.
비가 개어 무지개도 저 멀리 보인다.
나는 앞선 순례자들을 속속들이 추월하며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얼마만큼 남았는지를 알려주는 비석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점점, 지난 시간, 내가 수없이 목표하며 향해온,
나를 포기하지 않게 하고,
한 방향으로 가게 만들어 준 목표지점인,
산티아고가 다가왔다.
산티아고에 들어와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한다.
내가 어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쭉 걸어온 그 산티아고,
산티아고의 거리를 걷고 있다.
12시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들어가니, 미사는 시작되었다.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물끄러미 미사를 바라본다.
물끄러미 이해되지 않는 스페인어로 진행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바라본다.
다 함께 일어나 기도를 드릴 때도 나는 그저 앉아서 멍 때린다.
오빠의 울컥한 목소리와
정신없이 도착한 산티아고 일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멍 때린다.
그러자 무의식이 침범한다.
내가 도착했구나.
내가 지금 앉아있는 이 성당에 오기 위해 지난 28일 동안 걷고 걸었구나.
그러다, 갑자기 계속 눈물이 흐른다.
아니, 계속 눈물이 나온다.
사정없이 흐른다.
지난 순례길이 내 생각을 거치지 않고 감정으로 바로 흘러나온다.
흘러나오다 못해, 사정없이 쏟아진다.
나는 무릎 꿇고 기도한다.
더욱 단단해지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미사 이후,
성당을 둘러보는데 오빠한테 전화가 온다.
미사를 보느라 연락 확인을 못한 나에게
잔뜩 짜증이 난 목소리다.
"아니, 언제 나와?
아까 도착해서 계속 기다렸잖아."
오빠의 투정을 들으니 갑자기 짜증이 난다.
오빠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싫다.
성당을 나오면서 오빠를 미워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어떻게 이렇게나 부정적일까,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별로지?
짜증 내고 툴툴대는 신용환이 싫었다.
꿈이 없고, 세상에 회의적인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오빠에게 상처 줄 말을 장착한 채로
광장으로 씩씩대며 걸어갔다.
그러나,
저 멀리 광장에서 오빠를 보니
오빠를 향한 모든 미운 감정이 사라진다.
오빠에게 날리고 싶어 무수한 욕들은 다 사라지고,
그저, 오빠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나는 오빠를 보자마자 꼭 안으며 말한다.
"우리 오빠, 고생 많았네.
수고 많았어.
동생 말 듣고 120km 걷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여러 한계도 넘었을 테고,
혼자서 힘든 순간도 많았을 텐데,
이렇게 산티아고에 도착했구나.
우리 오빠, 참 수고 많았다."
스파르타식으로 걷는 내 속도를
다른 일반인도 따라가기 힘들었을 텐데
생전 본인의 한계를 뛰어넘은 적 없는 이가
나를 따라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저 오빠 속도 맞춰서 함께 걸어주면 되는데,
내 속도에 오빠를 맞추려고 했을 때에도
나에게 무어라 하지 않은 오빠가 얼마나 감사할까.
오빠의 널찍한 등을 껴안으며 말하는데
울컥함에 사무친다.
오빠도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예진아,
나 포기하지 않았어."
난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말한다.
"오빠, 축하해.
오빠는 무엇을 하든 잘 해낼 거야."
"내가 살면서 성취감이란 걸 느낀 적이 없다고 했잖아.
이번 사리아에서부터 120km를 걸으면서 조금은 알 것도 같아."
우리가 지금 함께 흘리는 눈물은 오빠에게 알려줬다.
자기가 무언가를 노력해서 그걸 얻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눈물 나는 일인지를.
이후 나는 오빠와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어느덧 유럽 여행을 마무리하고,
오빠는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우린 공항에서 마트에서 사고 남은 빵을 먹으며 작별 준비를 한다.
나는 오빠에게 여행에서 아쉬운 점을 묻는다.
"마지막이 되니까 그냥 좋았던 것만 생각나는 거 같아.
지금 이 순간이 아쉬운 거 같아. 지금 이 순간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게 아쉽네"
오빠는 지난 여행을 통해 느낀 점을 말한다.
목표를 달성할 때의 성취감,
사소한 재미,
소소한 행복까지.
해가 뜨는 사실에 대한 감사함,
호스트가 음식을 대접할 때의 감사함을 말한다.
나는 장난스레 덧붙인다.
"나는 지금 이 순간들이 참 소중해.
언제 또 공항에서 이렇게 음식들을 펼쳐서 3일 지난 빵과
먹다 남은 리코다치즈를 이탈리아 공항에서 먹겠어.
우리 둘 다 나중에 크게 될 사람들이잖아.
이 순간을 기억해야지."
웃으면서 맞장구치는 오빠에게
나는 내 우주를 일부 공유한다.
"나는 고3 때 자존감이 낮았었어.
인간관계와 대입 준비로 인해 자존감이 가장 낮을 때였지."
오빠는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말한다.
"예진아,
오빠가 자존감이 가장 낮은 시기는 지금이야.
어느새 시간이 나를 사회에 던져놓았는데,
마땅히 잘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었거든.
네 덕분에, 잊지 못할 이 여행 덕분에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어."
나는 오빠에게 말한다.
"오빠는 할 수 있어.
한국 돌아가면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작은 것부터 실천해 봐.
오빠는 아직 젊잖아."
우린 순례길 완주 때처럼
진하게 서로를 안는다.
오빠는 눈물 흘리며 말한다.
"나와 함께해 줘서 고마워."
오빠는 이내 삶의 이유를 묻는 내게 대답한다.
예진아,
한국으로 돌아가서 내 인생을 즐겨야겠어.
나의 희망, 나의 데이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나의 목표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야.
오빠의 눈물을 보면서 깨닫는다.
아, 결국 내 욕심이구나.
그저 오빠를 그 자체로 인정해 주면 되는 건데,
내 욕심에 오빠를 맞췄구나.
지금 오빠에게 필요한 건 '왜 이렇게밖에 못 해?' 같은 질타가 아니란 걸.
오빠에게 필요한 건 그저,
기다려주고 옆에서 응원해 주는 것뿐이란 걸.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거, 그거 하나뿐이란 걸.
진정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말은 격려라는 것을.
사람 마음은
바늘 하나 꽂을 때 없을 만큼 빡빡하면서도
바다처럼 포용력이 많아진다.
오빠를 그저 오빠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모든 게 달라 보인다.
서로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고 상대를 인정하면 되는 것을.
우린 저마다 각자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남과의 다름을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는 오빠의 눈물을 통해 깨닫는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사랑하는 일,
그리고 기다려 주는 일뿐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해당 편은 영상을 통해서도 생생히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d-k9aVieJA&t=638s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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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