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산자 부부
세계 일주를 떠나기 전,
우연히 발견한 블로그.
은퇴 후 세계 일주를 떠난 산자 부부이다.
준비 과정부터 여행이야기를 꼼꼼히 작성했기에
여행하면서도 종종 그들의 블로그를 챙겨보곤 했다.
산자 부부 블로그를 접하는 빈도가 많아지며
어슴푸레 그들의 여행을 응원하게 되었다.
응원은 우연히 반가움으로 바뀐다.
'산자부부도 지금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잖아!'
블로그를 통해 우리가 같은 도시를 여행한 것을 발견하였고,
그들을 향한 응원은 그들에게 연락하는 용기가 된다.
"안녕하세요!
시간 되면 만날 수 있을까요?"
산자 부부의 추천으로 우린 가성비 샌드위치 가게에 간다.
60대인 산자 남편은 젊은 시절부터 세계 일주를 꿈꿨지만,
세계 일주는커녕 배낭여행도 간 적 없다.
그저 양복 입은 채
다람쥐 쳇바퀴처럼 출퇴근하는 삶의 연속을 보내왔다.
"젊은 시절 몰래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을 갔던 게 생각이 나네.
그때 한국어 강사 자격증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홀로 조금씩 여행을 다니면서 울분을 풀었지만,
그는 꿈은 은퇴 후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서로 꿈의 한가운데에 있는 세 배낭여행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다.
우린 여행으로 얻은 생각을 공유하며 대화를 채워간다.
"스위스 인터라켄에 갔을 때,
거기서 본 한국 부모는 아이에게 뭐든지 다 해주려고 하더라고요.
그에 반해, 외국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두었죠."
그들이 바라본 시선은
내가 여행하며 갖지 못한 '부모의 시선'이다.
올바른 양육은 무엇인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 등을 공유한다.
자식 농사를 다 끝낸 뒤 출발한 세계 일주는
대학을 휴학한 젊은이가 얻지 못한 통찰력을 준다.
"여행하면서 뭐가 좋았어요?"
"나이가 들면서
여러 관계가 생기면서 관계된 이들에게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 많은데,
남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없어서 좋아(웃음)"
산자 부부의 통찰력은 깊이 있는 시선으로
따뜻한 엄마의 품을 느끼게 한다.
"70살을 바라보고 있으니,
동년배 사람들을 보면 아쉽죠.
타인의 시선을 너무나 인식하다 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을 인정하지 못하잖아요."
"오직 의사, 변호사 등의 직업이 되어야지
삶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잖아.
실제 사회가 그렇게 만들기도 하고."
나는 그의 말에 깊게 공감한다.
여행하며 만난 한국 분 대다수는
나이를 이유로 많은 부분에 제약을 걸었다.
"저도 공감해요.
사회가 규정해 놓은 루트를 가는 사회인들을 인정하죠.
그게 나쁘다, 틀리다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나이를 이유로,
언어를 이유로,
세계로 나가지 않는 이들에게
산자 부부는 본인의 여행으로 말하고 있다.
그들은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영어를 못해도 여행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제 아내도 영어를 못하지만 이렇게 세계 일주를 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잖아요!"
"저의 부모님에게 꼭 말하면 좋겠네요. (웃음)"
"그런 생각은 여행하면서 느끼신 거예요?"
"여행하면서도 느끼고,
동시에 독서와 사색하면서도 느끼죠."
그들은 여행하면서
독서하며 사색하는 시간을 갖고자 노력한다.
매번 바쁘게 돌아다니며
경험에 목말라하던 내 지난 여행과 달리
내면 확장과의 균형을 맞춘 그들의 여행은
안정적이며 색다르게 다가온다.
"매일 러닝을 하려고 노력해요.
나이가 있으니
지금 하루 이 악물고 더 운동을 하죠."
"지난 삶에서 후회되는 게 있으세요?"
"많죠."
"젊을 때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산자는 말한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막연하게라고 크리에이터가 되는 삶을 꿈꿔봤어요.
유튜브나 작가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요."
네이버가 생기면서 바로 블로그를 시작한 산자.
그는 미디어로 표출하려는 욕구가,
여행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나이가 들어서도 잊지 않았다.
그의 열망은 영겁의 시간 속에서 발현되며 오늘날 그를 만든다.
그의 말을 들으며 문득
지금 이 시기를 살아가는 순간이
참으로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매체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낼 수 있는 시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행운이고,
행복한 일이구나.
지금 이런 인프라가 있기에,
지금 상황에서
내가 더 펼쳐낼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무궁무진하구나.
산자 남편은 덧붙인다.
"20대에는 많은 생각을 하지 말아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돈에 집착하지 말아요."
우린 샌드위치를 먹은 뒤
부에노스 거리를 함께 걷는다.
유럽 풍의 건축물이 남아메리카의 활기를 만나 다채로운 거리를 연출한다.
아르헨티나인의 열정은 하늘색으로 상점 곳곳에 드러난다.
두말할 것 없는 쾌청한 날씨 아래에서 우린 대화를 이어간다.
"산자 부부, 제게 조언을 해줄 수 있나요?"
그들은 내 질문에 놀라면서도 서슴없이 말한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산자 부인은 이어서 말한다.
"살아가면서 한 살 한 살 어른이 되어가고 있잖아요.
지금 해가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두려울 것 하나 없어.
돈이 없어보니까, 돈이 또 필요 없고.
돈이 있으면 돈이 있는 만큼 필요하고,
돈이 없으면 또 돈이 없는 만큼 필요가 없어요.
공간을 안 만들고 가지고 싶은 게 없어요.
공간을 안 만들면 가지고 싶은 게 저절로 없는 거죠."
산자 남편도 말한다.
"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공감하며 끄덕이는 나에게
그는 이어서 말한다.
"여행하며 젊은이들과 대화하면 창의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해요.
오로지 부와 명예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국과는 다루죠.
서른 살이 되면 주위도 바뀌고 부와 명예를 챙겨야 한다고들 하지만,
부에 매몰되지 않은 삶을 살기를 바라요."
짧았던 만남의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하며 위로된다.
서로의 여행을 응원하며,
지금 이 순간 서로를 목격함에 감사한다.
문화센터에서의 마지막 포옹 뒤로
문득 십 대 끝자락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맞이한 청춘이
그저 흘러가 버리는 게 아쉬웠던 순간.
아쉬움을 달래고자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고,
피곤을 참아가며 순간에 충실했던 날들.
나의 십 대 모습 속에서
산자 부부의 에너지가 중첩된다.
나이가 들어서 갖고 있는 생각이
젊은 날 나의 생각과 똑같다니.
산자 부부와 나는 전혀 다른 나이지만,
여전히 지난날의 나와 똑같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산자 부부의 마인드가 참 멋지다.
나이가 들어서도 나이를 변명 삼지 않고
여행하는 그들 모습이 참 좋다.
나는 그들과 헤어진 뒤,
나중에야 블로그를 통해 삶의 이유를 물었다.
삶의 이유는 우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위해서예요.
꿈꾸었던 세계 여행을 하고,
트레킹도 하며, 한 달 살기도 하는 거죠.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 들어서며 늘 신선한 삶을 꿈꿔요.
그런 행위들이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부에노스아이레스 날씨는 여전히 청명하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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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