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서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만난 어거스틴

by 여행가 데이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나는 밤,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바로 눈앞에서 소매치기당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여행하며

이 도시를 사랑했지만,

사랑했기에 더욱 놀란 가슴을 숨기지 못한다.


귀여운 강아지를 한참 귀여워하는데

강아지가 내 친구를 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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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길


공항으로 향하는 40분 동안

놀란 가슴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창 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새 가슴으로 멍 때리며 공항에 도착하니,

저 멀리 해가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우수아이아(Ushuaia).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에 위치해 '세상의 끝'으로 불린다.

나는 '세상의 끝'으로 향한다.


20240120_202413.jpg?type=w773 우수아이아의 호스트, 어거스틴


"나는 일을 가서 없을 거야.

문 열어놨으니까 편하게 들어와!"


금방 부에노스아이레스 길거리 위에서

휴대폰 도난을 목격한 나는

우수아이아 호스트가 집을 열어둔 사실에 놀란다.


"집을 열어놔도 괜찮아?"


"아무도 신경 안 써.

우수아이아는 안전한 마을이거든"


같은 아르헨티나지만, 전혀 다른 모습의 우수아이아.

세상의 끝이라는 곳에서 느끼는 안온함과, 여유로움,

그리고 수많은 피곤함과 함께

그의 집에 도착자 마자 휴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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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아이아 풍경


우수아이아의 여름은 차갑다.

깨끗한 공기 아래 차갑게만 보이는 바다는

여름이란 걸 믿지 못하게 한다.


무언가 차가운데,

그 속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안온한 포옹과도 같은 우수아이아.

차가운 바다 온기를 느낀다.


기다란 도로를 따라 늘어선 건물과 자동차들,

그들 뒤로 펼쳐진 아름다운 하늘과

가까운 극지방과 알리듯 얇게 펼쳐있는 구름들까지.


그저,

노래만 들으면서 마을들을 걷는데 기분이 좋다.

멈추어 사진 찍고, 그저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기도 하고,

마을을 감싸는 만년설이 쌓인 산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 아래를 담당하여 길가에 핀 데이지들까지.

지금 이 순간에 있음에 감사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끝 마을에 있음을 마음껏 느낀다.


차가운 공기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싼다.

우수아이아가 참 좋다.


아, 행복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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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아이아를 한껏 느끼면서


세상의 끝에 오니

지금껏 보지 못한 지구의 색다른 모습을 본다.


빙하에 뒤덮인 산과

놀랍도록 고요한 바다는

놀랍도록 신비롭게 빛난다.

창문 너머 설산들의 절경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차가운 공기와

그 차가움 너머로 집에서 느껴지는

훈훈함과 달콤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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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아이아 바다(왼쪽)와 호수(오른쪽)


바다의 잔잔함은 오래된 구루를 보는 느낌이다.

바다는 차분하고 담대하게 받아들이라고

내게 고개를 끄덕인다.


세차게 파도치는 우수아이아 호수와 달리

우수아이아 바다는 참으로 차분하구나.


바다는 세상의 끝을 받아들이기 위해 차분한 걸까,

바다는 세상의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담대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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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과 냉동피자를 먹으며



우수아이아를 힘껏 느끼고 돌아온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우수아이아 호스트와 인사한다.


"어거스틴이야."


어거스틴이 만든 냉동피자로 짧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올해 26살인 어거스틴은

우수아이아에서 펭귄투어 가이드로 일한다.


어거스틴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내다가

학교를 관두고 우수아이아로 내려왔다.


"남자친구를 따라온 선택이었는데,

이전에 살던 곳보다 이곳이 나에게 적절한 선택이었거든."


어거스틴은 본인이 관광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학위가 필요 없는 우수아이아 직장은 그에게 일할 기회를 주었다.


"펭귄투어가 아침 일찍 시작해서

돌아와서 낮잠도 잘 수 있어서 좋아."


그는 투어를 통해 좋은 기회를 얻는 걸 좋아하지만,

곧 미국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알아볼 거라 말한다.


"우수아이아 사람들은 매우 폐쇄적이야.

그들은 국립공원에 갈 생각도,

호수에 놀러 갈 생각도 없이,

그냥 안에서 머무르면서 흘러가는 대로 살아거든."


어거스틴은 카우치서핑을 시작하며

만난 전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한다.


"나는 앞으로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마냥 따뜻하고 평화롭게만 보인 우수아이아.

그곳에 살아가는 삶은 완전히 다르겠구나.


세상의 끝이라는 마을에서

고립된 채로 섬 생활을 하는 느낌을 떠올린다.

어거스틴은 이어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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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순간을 나눌 때 행복해.
최고의 순간은 항상 제한되어 있기에
우리는 순간을 충실하게 느껴야 하잖아.

추억을 만들고 내 삶의 한 부분이 될 사람들에게 미소 짓는 것
그리고 매 순간을 중요하게 여기고 싶기 때문이야.


그의 말에 끄덕인다.

동시에 오늘 일어난 우수아이아의 일을 돌아본다.


그냥 문을 열어두고 나가도 되는 우수아이아,

노래를 들으며 버스를 타도 되는 순간,

버스카드를 놓고 온 나를 위해 버스비를 내준 이,

기분이 좋다며 아침과 과자를 사준 낯선 이,

히치하이커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운전자들,

새벽 늦게 노래 들으며 산책해도 되는 치안,

아름다운 자연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나는 사람이 좋은 마을에 정이 가는구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위에

인간이 만든 아름다움 역시 참으로 소중하구나.



냉동피자가 흡입되는 몇 분가량 대화를 끝으로

각자의 밤을 보낸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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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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