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수수함은
우수아이아에서 비롯된 걸까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만난 파멜라

by 여행가 데이지


"네가 원하면 공항에 데리러 갈게."


"그래줄 수 있어?"


우수아이아 공항에 도착한 뒤,

시내로 가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공유 택시를 제안했지만,

실패.


비싼 택시비를 혼자서 내지 않기 위해 방안을 고민하는 중에

카우치 서핑을 통해 연락이 닿은 파멜라는 나를 데리러 온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우수 아이아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파멜라는 나와 만나자마자 우수아이아 시내 한 바퀴를 쭉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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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아이아 랜드마크에서 사진 찍자며 가다가 멈추는 서비스까지


"데이지, 조금 있다가 같이 호수 등반가는 거 어때?"



만나자마자 대가 없이 주는 친절과 환대는

최남단 도시의 순수함이 묻어나서일까

파멜라 덕분에 무사히 시내 집에 도착해 짐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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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맞이한 우수 아이아의 풍경



"데이지,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아 등반은 어려울 거 같아.

그렇지만, 숨겨진 호수가 있어."



오후에 다시 만난 파멜라는 친구 지시와 함께 온다.

그의 제안으로 우린 함께 숨겨진 호수를 향한다.


20240119_162405.jpg?type=w773 차창 너머 우수아이아의 풍경


세상의 끝의 풍경이 차창 너머로 밀려온다.

최남단이 품은 자연은 이제껏 보지 못한 신기한 모습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차가운 공기와 공기 너머

파멜라와 지시의 훈훈함은 코끝을 향기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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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사진도 찍고, tulito라는 마을을 둘러싼 바다 같은 호수에도 머물렀다.



광활하다는 표현 외에 다른 수식어구를 찾지 못한 나는

푸르른 에메랄드빛으로 광활히 펼쳐진 호수를 바라본다.

세차게 파도가 치며 광활하게 펼쳐진 호수는 바다 같다.


고향에서 매번 본 호수의 잔잔함이 무색하게

우리가 찾아간 호수는 바다처럼 역동적이다.

호수의 파도에 질세라 바람은 세차게 움직여

격렬한 물결로 거센 숨결을 만든다.


차 안의 따뜻함은 살살 낮잠에 빠질 것만 같지만,

차 밖의 차가움은 바로 정신을 들게 한다.


한참 동안 차가운 호수를 바라보며 사진 찍고

다시 차 안으로 들어오면 차 안의 따뜻함을 맞는다.


그 모습은 마치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마신 뒤

따뜻한 전기장판 속 이불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20240119_205855.jpg?type=w773 Lanunas Gemelas



남극과 가장 가까운 세계의 끝 바다는

오랫동안 삶을 통달한 구루를 보는 느낌이다.

'차분하고 담대하게 받아들여라.'라고 말하며 내게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다.


세차게 파도를 일으키는 호수와 달리

참으로 차분한 바다의 모습은

우수 아이아에서 우수에 젖어 있는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차가운 바람과 어울리는 커다란 호수는 아름답기 그지없고

사진을 찍으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려는 친구들의 마음은 소중하기 짝이 없다.


스페인어를 잘하지 못하는 나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친구들과

온전하게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우린 서로를 향해 미소 짓고,

미소를 통해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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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멜라 지시와 함께


세상의 끝이자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우수아이아는

평화롭고 따뜻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그 느낌은 우수 아이아에서 나고 자란

파멜라와 지시의 수수함에 더해진다.



"우수 아이아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다른 지역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어?"



"어릴 적에는 이곳이 답답했지.

그렇지만, 지금은 조용하고, 평화로우면서 한적한 이곳이 좋아.

앞으로도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거 같아."



"너희는 꿈이 뭐야?"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파멜라 너머

지시는 말한다.



"나도 어릴 적에

너처럼 세계여행을 꿈꾸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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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호수를 구경한 뒤 파멜라가 대접한 초코 커피와 빵을 먹으며 우린 소소히 이야기 나눈다.



파멜라와 지시는 12살 아들, 11살 딸을 가진 엄마들이다.


그들에게 묻어나는 수수한 소녀 같은 웃음

나는 그들이 엄마일 거라 예상하지 못한다.


자식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은 그들은

주말에는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보내고

평일에는 본인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우린 관광객이 좋아.

관광객 남자들은 열려있고, 잘생겼거든 (웃음)"


어린 소녀처럼 깔깔대는 이들을 보며

이들이 가진 수수한 웃음이

평화로운 우수아이아 덕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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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차 안에서

파멜라는 노곤함에 취한 나를 깨운다.


"데이지, 잠깐 일어나 봐."



잠결에 비몽사 몽이는 밖으로 나오니

마을로 돌아가는 도로 위에서

파멜라의 차만 덩그러니 멈춰있다.


"무슨 일이야?"


"루비나(Lupinus argentatus) 꽃!

루비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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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나 꽃과 함께


춥고 척박한 우수아이아 땅 위에

분홍색, 보라색으로 알록달록 긴 꽃차례를 이루는 루비나들.


루비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내 말을 파멜라는 기억한다.


본인도 피곤하기에 그저 빠르게 지나쳐 마을로 갈 수 있음에도

루비나와 함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멈춘 순간,


보라색, 분홍색의 향연이 가득한 루비나 꽃밭에서

밝게 미소 지으며 사진 찍어주는 파멜라.


지나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추억을 남겨주려는 그 모습은

사랑스럽다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데이지,

오늘 못 간 호수 등반은 내일 가는 거 어때?"



그에 대한 감사함은 그날 온종일

차가운 우수아이아에서 따뜻한 온기를 만든다.






"올라! 부엔디아! (안녕! 좋은 아침!)"



다음날,

호수 산행을 위해 지시 차에 오르며 인사를 건넨다.


"호수로 향하는 길이 미끄러워.

딸의 신발을 가져왔어."


그가 빌려주는 신발에 감사하며 호수로 향한다.

길은 언제나처럼 신비롭게 아름답다.



도로 너머 만년설을 담은 산은

저마다 각자의 아름다운 풍채를 드러낸다.

아름다움을 놓칠세라 연신 사진으로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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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나 누르게사(laguna turquesa)로 오르는 길. 보통 한 시간 걸린다고 하지만, 우린 4시간이 걸렸다



오르다 멈추어 경치를 보고,

오르다 멈추어 풍경을 본다.


빠르게 정상에 오르기보다

천천히 풍경과 인사하며 라구나로 이르는 길은

아름답다 이상의 형용 어구가 생각나지 않는다.


멍하니 햇살과 호수가 이루어내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저. 숲 속에서의 은은한 바람을,

새싹의 푸르른 냄새를,

그 속에서 숲길이 이루어내는 순수한 속삭임을 느낀다.



"데이지! 여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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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zana dek diablo라는 열매도 따먹으며 음미하기


숲 속 공기는 상쾌하면서도 차갑게 내 볼에 닿는다.

나긋하게 속삭이는 잎사귀 소리는

비밀을 나누는 어린 소녀의 웃음소리와 같다.


스펀지처럼 울렁거리는 땅은

마치 거친 호흡을 내뱉는 것 같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땅은

숨결을 내뿜으며 내 곁을 지킨다.


땅 밑에서 숨 쉬는 나비,

땅속으로 떨어진 열매,

앞으로 나아가는 길만 보는 나에게

파멜라는 종종 멈추는 미학을 알려준다.


그 모습은 마치 사려 깊은 엄마의 태도와 같다.

사진 찍어달라는 여행자의 부탁에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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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호수(Laguna Turquesa)에 발을 담근 차디찬 호수를 녹인 마테를 기억해



호수를 바라보며 지시는 마테를 꺼낸다.

빨대까지 공유하는 마떼 문화로

그들은 내게 한입 권한다.


차가운 호수를 보며 마테를 마신다.

따뜻한 마테는 차가운 바람과 공기 속에서 나를 녹인다.



따뜻한 마테를 움켜쥐며

그들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마테(Mate): 아르헨티나 전통 음료, 마테 식물의 잎을 말리고 갈아서 만든 ‘마테’라는 혼합물을 끓인 물로 우려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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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유는 아이들이야.
이렇게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고, 소소하게 살아가고 싶어.



기다란 강을 따라 펼쳐진 산등성이

걸을수록 조금씩 드러나는 에메랄드빛 호수까지.

호수에서 흐르는 물은 졸졸졸 강을 이루어 떠내려간다.

소다 색으로 졸졸 흐르는 물의 흐름을 보고 있으면

순간적으로 드러난 에메랄드빛 윤곽이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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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푸른 여명의 호수를 바라보며 마떼와 샌드위치를 먹는다.

호수에 발을 담가 발가락 끝으로 밀려드는 차가움을 느끼면서도

햇살의 따뜻함이 은밀하게 몸에 스미는 것을 느낀다.


멍하니 에메랄드빛 호수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수 아이아를 따뜻한 온정으로 가득 채워준

파멜라와 지젤라 덕분일까,


우수 아이아가 참 좋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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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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