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만난 마르셀로
바다가 왜 바다인지 아세요?
사람들이 힘들고 좋고 해서 다 와서 자기 거를 이렇게 풀어내잖아요.
근데 바다는 그걸 다 받아줘서 바다예요.
그 속에서 중요한 게 있어요.
바다는 자신의 짠맛을 잃지 않아요.
사람들의 모든 걸 이렇게 다 품고받아주는데
그 속에서 자기만의 신념을 잃지 않는 거예요.
짠맛을 품은 사람이 되어야 해요.
세상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우수아이아(Ushuaia).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에 위치해 '세상의 끝'으로 불린다.
창문 너머로 우수아이아의 마을들을 구경한다.
버스 창문이 커서 좋다.
버스 아저씨와 아줌마가 나누는 아침 인사가 사랑스럽다.
괜스레 콧노래를 부르며 창문을 바라보는데,
문득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감정을 확신한다.
나, 아르헨티나를 좋아하는 거 같아.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괜스레 사람들의 사소한 손짓에 행복해 울컥해진다.
파타고니아 티에라델푸에고에 위치한 국립공원.
마젤란 해협을 가로지르는 자연경관에 둘러싸여 있다.
우수 아이아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는
상징적으로 세계의 끝인 ''바이아 라파타이아(Bahía Lapataia)"가 있다.
일반인 신분으로 갈 수 있는 세계 도로의 가장 끝자락이다.
"티에라델푸에고 국립공원으로 가는 역은 어디인가요?"
"나도 그곳에 가고 있어. 내가 알려줄게."
버스카드가 없는 나 대신
버스비를 내준 승객은 답한다.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우수아이아 마을을 한참을 구경하는데,
옆의 분께서 내게 내려야 한다고 손짓한다.
그는 스페인어로 무어라 말한다.
"티에라델푸에고 국립공원까지 6km 정도 가야 하기에, 히치하이킹을 해야 해"
그는 본인을 마르셀로라고 소개한다.
나의 짧은 스페인어와 마르셀로의 커다란 몸짓을 이용해
우린 서로 대화하며 히치하이킹을 시작한다.
"마르셀로, 가방 문이 열려있어!"
그는 본인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망가진 지퍼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다.
치켜든 엄지손가락,
어깨를 으쓱하며 일부 차가 지나가는 중에
한 차가 멈춘다.
우리가 향하는 공원 관리자인 그는
매표소를 그냥 지나쳐 공원 안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감사합니다!"
운 좋게 바로 공원에 들어왔는데,
마르셀로는 어딘가 가야 한다며
'카르텔 -- 카르텔 --'을 반복해 말한다.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이자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세상의 끝,
바이아 라파타이아다.
마르셀로를 따라 공원을 둘러보며
세상의 끝에 도달한다.
"세상의 끝이 이런 모습이구나!"
조금 회색빛이 혼합된 파란색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마르셀로와 나는 힘껏 소리친다.
"우리가 세상 끝에 왔어 ----!"
한참을 감격하는데,
마르셀로는 말한다.
"나는 다시 우수아이아로 돌아갈 거야."
그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아쉽지만,
나는 세상의 끝에 있는 기분을 더 느끼고자
그와 작별 인사한다.
다시금 히치하이킹으로 마르셀로가 떠난 뒤,
난 세상의 끝의 여운을 음미한다.
세상의 끝은 고요하며 조금은 외로운 아이 같아 보인다.
사랑받고 싶지만, 오랫동안 혼자 있어 왔기에
홀로 있는 법이 익숙한 아이 같다.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며 그 아이 옆에 잠시 동안 머무른다.
갑자기 지난 상상이 떠오른다.
'세상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가 궁금했던 작은 소녀.
그 소녀는 세상의 끝에서 바다와 인사하고 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북받침이 올라와 눈물을 흘린다.
한참 우수에 젖고 난 뒤,
다시 우수 아이아로 돌아온다.
마침, 마르셀로에게 연락이 온다.
우수 아이아에서 유명하다는 킹크랩을 먹을까 싶어
그에게 물어본다.
"마르셀로, 우리 킹크랩 먹으러 가지 않을래?"
"네가 가면 어디든 갈게."
그렇게 우린 킹크랩 식당 앞에서 만난다.
"이런.. 잠겨있다니..!"
아쉽게도 닫힌 식당.
마르셀로보다 먼저 도착해 홀로 아쉬워하는데,
마르셀로는 나를 보자마자 노란색 장미를 건넨다.
"우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노란색인데!"
"나의 어머니 성함이 장미(rosa)야."
그는 장미꽃에 기뻐하는 나에게
저녁으로 먹으라며 샐러드를 준다.
샐러드를 받아 든 채, 우수아이아 거리를 걷는데,
그는 식당에 맛있게 전시된 음식을 보며 침을 삼킨다.
"마르셀로, 여기 가고 싶어?"
"아니, 그냥 보는 거야.
종종 이렇게 쳐다보면 남은 음식을 주더라고."
문득 그가 뜯긴 가방으로 다니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떤 이유로 지금 우수 아이아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는 오랫동안 정처 없이 떠도는 이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에게 다른 킹크랩 식당에 가자고 말하려던 찰나,
그는 맥주를 제안했고,
나는 내 제안을 삼킨 뒤, 그에게 응한다.
우리는 바다가 잘 보이는 도로 한 변 옆의 문턱에 앉는다.
저녁 시간이 되었지만, 세상 끝의 마을은 여전히 밝다.
문턱 너머로는 세상 끝의 바다가 차갑게 구름과 인사한다.
한참 풍경을 보고는 마르셀로는 말한다.
"그래,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데,
왜 사람들은 다 안에서 먹으려는 거야?"
우수 아이아에서 일몰과 일출을 즐기며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마르셀로에게 공감한다.
어렴풋이 익힌 스페인어와
마르셀로의 몸짓이 전부였던 대화에서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던 나는
번역기를 꺼낸다.
그는 내 번역기를 가져가 말한다.
"신을 믿니?"
나도 번역기를 통해 답한다.
"신은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해."
그가 답한다.
"신은 우리 주변 모든 것이야.
자연, 바람, 구름, 해..."
그는 자연, 에너지 등을 믿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열쇠고리를 파는 마르셀로.
그는 자신이 파는 열쇠고리 하나를 내게 선물한다.
"고마워. 아까 그 샐러드는 어디서 난 거야?"
"식당에서 구걸했어.
내 열쇠고리랑 바꿔서 얻어냈지."
본인도 먹고 싶었을 텐데,
힘들게 얻은 식량을 나에게 나눠주려는 마음이 고맙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열쇠고리를 팔면서 살아왔어.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형제도 없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르셀로를 바라본다.
앞부분이 뜯긴 모자와, 오래 입어 낡은 검정 패딩,
망가진 가방까지.
그는 세상의 끝을 보기 위해 우수 아이아를 찾았고,
우수 아이아에서 묵는 곳의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을 보며) 지붕도 없는데?"
그는 지붕 없는 빈가에 몰래 숙박을 하고 있다.
놀라는 나에게 그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다.
그의 미소를 보며
노숙자로 살아온 그의 삶을 상상한다.
삶이 고달프고, 원망스러울 상황 속에서도
잃지 않은 그의 미소.
나는 그에게 묻는다.
"마르셀로, 너는 꿈이 뭐야?"
좋은 사람이 되는 거야.
내 삶의 이유는 사람들에게 좋은 존재가 되고 싶어.
한참을 이야기 나누는데,
마르셀로가 지나가는 행인에게 말을 건다.
브라질에서 왔다는 행인은 그에게 대답하며
조금씩 함께 길 위의 피크닉에 함께 한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람들의 차이점이 바로 이거야"
그는 월드컵을 보는 브라질 사람들을 흉내 내며
브라질 친구를 놀리기도 하고,
북한의 독재자가 있다는 말을 하며
나에게 공감을 구하기도 한다.
"남한에는 노숙자가 얼마나 있어?"
"노숙자들에게 주는 혜택이나 지원은 뭐야?"
우린 그가 펼치는 코미디쇼에 빵빵 웃음을 터뜨리고,
그를 흉내 내며 재미를 더하기 한다.
"나는 내 조국을 사랑해.
죽을 때까지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나의 민족을 사랑할 거야"
서로 삶과 철학에 대한 깊은 이야기도 공유한다.
밖에 오래 있다 보니 조금씩 추위가 들어온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기 위해 우린 고집하며 떠나지 않는다.
우린 3시간이 넘도록 이야기꽃을 피워냈고,
어느덧 시간은 11시가 되어 세상의 끝에도 어둠이 찾아온다.
자연을 느끼기 위해,
일몰을 함께하기 위해,
구름의 춤사위를 보기 위해
저녁 11시가 되도록 밖에 있는 우리가 좋다.
마르셀로는 추위를 버티며 밖에 있는 것에 익숙한 듯 말한다.
"우와 저 구름을 봐!
공룡 같아! 새 같기도 하고!
우와! 하늘에 동물이 있어!"
하늘에 나타난 동물을 보며 해맑게 웃는 마르셀로.
그의 해맑은 웃음이 참 좋다.
여전히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잊지 않는 그가 좋다.
그의 해맑은 미소에 괜히 정이 한 채로
나도 더 해맑게 웃음을 보인다.
"헐!! 공룡이다!!! 세상의 끝에 공룡이 나타났어!!"
그는 열쇠고리 말고도 자기가 파는 향을 꺼낸다.
나와 브라질 이에게 향을 갖다 주며 웅얼거리기 시작한다.
"지금 우린 세명이니까.
신의 에너지가 우리에게 있어."
그의 손짓을 따라 우린 서로를 부둥켜안고
그의 웅얼거림을 들으며 향을 중심으로 의식을 치른다.
그의 말들은 하나하나 내게 인상을 남긴다.
동시에, 똑같이 생각한 생각이 대부분인 게 신기하다.
'어릴 적부터 노숙을 해와서
자연과 하나가 되고, 자연을 숭배하게 된 걸까?'
'지붕 없는 집에서 지내온 여러 날들 속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고,
신적이고 영적인 존재와 비슷하게 된 걸까?'
"나는 오늘도 잘 곳이 없어.
지금 이곳에 누워서 자도 되지."
나는 그에게 우비를 선물한다.
"지금 내가 가진 게 이거밖에 없어서 미안해.
내가 쓰던 거기는 하지만, 비가 올 때 유용하게 쓰이길 바라."
그는 우비를 받아 들고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한다.
이후 나를 꼭 껴안으며 고맙다고 말한다.
질 것 같지 않던 해도
우수 아이아에서 조금씩 지고 있다.
본인이 매일 어디서 잘지 고민하고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면서도
그는 내게 샐러드를 나눠주고
자기 열쇠고리를 나눠주었다.
본인이 나눌 줄 알고,
남이 나눠주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의 마음이 소중하다.
"내가 직접 만든 열쇠고리야."
그는 자신의 열쇠고리를 건네며 말한다.
가죽으로 된 하트 모양이 참으로 소중해 보인다.
식당 밖에서 군침을 흘리며 구걸하려는 그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마리화나 있냐며 묻는 그를,
헤어지려는 우리에게 맥주 한잔 더 하자고 묻는 그에게,
마리화나와 코카인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그에게
나는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간다.
킹크랩 식당 앞에 서 있는 사람들보다,
구걸로 바꾼 샐러드와 맥주, 음료수 한 잔으로
우수아이아 앞바다에서 서로의 우주를 공유하는 우리가 좋다.
그와 이야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함이 느낀다.
이런,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고급 진 레스토랑보다,
싸구려 음료수 한 캔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따뜻하고 안락한 곳보다
거친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돈 많이 벌고 화려한 사람보다,
나눌 줄 알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집으로 가는 길에 헤드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와 한 몸이 된다.
이 밤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우수 아이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쉬움에 가득해진다.
마음을 달래고자 우수 아이 아 바닷가를 산책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동네.
아름다운 이유는,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지금 내가 이곳을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
마법 같았던 오늘 하루,
우수 아이아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
끊임없이 부는 바람과
오다가 멈춘 가벼운 비, 아름다운 구름까지.
아쉬운 감정과 따뜻한 마음, 나중에 남극을 다시 오리라 다짐하게 되면서,
이번 여행도 곧 한 달 남짓 남았다는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져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우러나온다.
그 감정은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가진 마르셀로 덕분에
오랫동안 잔향을 내뿜는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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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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