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45개국 세계여행가 데이지 여행 일기장 : 남아메리카
세계일주 318일 차, 1년간 여정의 마지막 대륙인 남아메리카에 도착했다. 남아메리카는 태평양, 대서양, 카리브해와 맞닿은 대륙이다. 파타고니아의 설경부터 아마존 열대우림, 세계 3대 폭포 이과수 폭포,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까지. 모든 자연환경을 비롯해 음악과 춤이 녹아있는 라틴 문화는 남아메리카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동시에, 거대한 마약 카르텔과 높은 범죄율로 치안이 불안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을 나오니, 1월의 우중충한 하늘 아래로 저렴한 건축 자재인 주화벽돌로 이루어진 마을이 보였다. 거리는 맨발로 앉아있는 사람과 술에 취한 채 씩씩거리며 걷는 행인들이 있었다. 나는 배낭끈을 꽉 진채로 침을 꿀꺽 삼켰다. 남아메리카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데이지 세계일주 남아메리카 일정>
남아메리카 여행(46일)
브라질(4일), 아르헨티나 (14일, 9일+5일), 칠레(14일, 7일+7일), 볼리비아(9일), 페루(10일)
1월 11일 - 1월 14일 브라질: 상파울루
1월 14일 - 1월 22일/1월 28일 - 2월 1일 아르헨티나: 푸에르토 이과수, 부에노스아이레스, 우수아이아, 톨루인, 바히아 라파타이아, 엘 칼라파테, 엘 찰텐, 바릴로체
1월 22일 - 1월 28일 / 2월 2일 - 2월 8일 칠레: 푼타아레나스, 푸에르토 나탈레스, 토레스 델 파이네, 산티아고, 칼라마,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
2월 8일 - 2월 16일 볼리비아: 우유니, 살라르 데 우유니, 오루로, 와이나 포토시, 라파스
2월 16일 - 2월 25일 페루: 푸노, 쿠스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마추픽추, 이카, 와카치나, 리마
나는 46일간 남아메리카 5개국을 여행했다. 잉카 유산을 보며 인류의 지혜에 감탄했고,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와 원주민이 뒤섞인 인종적 다양성도 경험했다. 라틴 사람들의 가족 같은 환대를 느끼며, 밤새도록 카니발을 즐기기도 했다. 세계일주의 마지막 도시, 페루 리마에서 만난 친구는 말했다. "여행에서 느낀 사람들의 친절과 환대를 잊지 마." 나는 끄덕이며 공항으로 가는 봉고차에 올랐다.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친구가 차창 너머로 점점 멀어졌다. 여행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아쉬움이 들었지만, 어느새 너덜너덜해진 마음에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내 모습을 수차례 상상했다. 점처럼 작아진 친구에게 흔드는 손을 멈춘 순간, 알 수 없는 눈물이 마구마구 흘렀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남아메리카 여행에서 느낀 것을 기록하기 위해 곧바로 메모장을 펼쳤다.
남아메리카는 브라질 리우 카니발, 볼로비아 오루로 카니발처럼 세계적인 축제가 많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파티와 모임도 일상처럼 열린다. 거리와 광장 어디에서나 뜨겁고 흥이 넘치는 파티 문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각 국가의 고유 리듬을 담은 비트는 파티의 흥을 돋우고, 한번 시작되면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루는 아르헨티나 친구와 저녁 모임에 갔다. 자정까지 이어진 저녁 식사를 마치자 나는 피곤에 지쳐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이 깊었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파티가 매번 열리는데, 4시쯤에 파티가 끝나면 자고 일어나 다른 파티에 또 가. 또 다른 파티가 끝나면 주말 파티, 월요일 파티.. 끊임없이 열려." 하루는 볼리비아 오로로 카니발에 갔을 때의 일이다. 밤새 춤을 추고 새벽 4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지만, 볼리비아 친구는 잠시 집에 들렀다 곧바로 카니발로 돌아갔다. 나는 휴식을 취하고 아침에 다시 카니발 현장에 찾아갔음에도 피곤에 머리가 깨질 듯했지만, 친구 얼굴에는 여전히 흥으로 가득했다. 한 밤중에도 불타던 볼리비아 축제 열기는 이른 아침에도 식을 줄 모르는 듯했다.
남아메리카 여행에서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원주민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페루 거리를 걸으며 알파카 털로 만든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잉카 제국에서 발원한 언어나 의복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던 것이다. 알록달록한 치마를 겹겹이 입은 상인들은 납작한 챙 모자를 쓰고 있었다. 붉은 직물의 망토를 걸치며 걷는 행인들은 눈이 마주치면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 정글에는 여전히 원주민 전통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상업적으로 관광화된 곳도 있었지만, 페루 우로스섬과 같이 원주민 삶이 그대로 보존된 섬도 있었다. 페루에서 만난 친구는 숲에서 가족과 보낸 시간을 공유하며 말했다. "오늘은 엄마 생신을 축하하러 골짜기에 다녀왔어"
페루 리마, 칠레 산티아고와 같이 현대적으로 발달한 도시도 있지만, 도시에서 일부만 벗어나도 유적지와 고산마을이 펼쳐졌다. 남아메리카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는 원주민과 유사하게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문화가 스며있었다. 볼리비아 오로로 카니발 역시 종교와 역사가 혼합된 축제였다. 차란고와 북 등의 전통 안데스 악기는 행진곡을 만들었고, 원주민 신화를 표현한 악마 가면을 쓴 사람들은 당당하게 행진했다. 생활에 녹아있는 남아메리카 전통은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했다.
남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받은 인상은 대체로 따뜻하고 포용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칠레 산티아고와 같이 도시화 발달로 개인주의가 강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눈이 마주치면 곧바로 "아미고!(친구!)"를 외쳤다. 우린 금방 친구가 되어 함께 춤추고, 음식을 나누었다.
하루는 볼리비아 라파즈에서 출발한 버스 안이었다. 옆자리 승객은 자고 있는 나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나는 그가 내 물건을 훔쳐가는지 의심했지만, 그는 오히려 내게 따듯하게 대해주었다. 하루는 페루 쿠스코로 향하는 버스에서 잠시 휴게소에 머물렀다. 버스가 출발하려는데, 승객들이 외쳤다. "치노 치노!"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하고, 내가 없다는 것을 알리는 말이었다. 짧게 눈인사만 나눈 사람들인데도 나를 챙겨준 마음이 고마웠다. "저 여기 있어요!"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승객들은 활짝 웃으며 안도했다. 이전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는 같은 이유로 버스를 놓친 적이 있어 사소한 배려가 큰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하루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슈퍼마켓에 만난 사람이 말했다. "오늘 파티에 다녀와서 기분이 좋아. 다 사 줄 테니 골라!" 그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태권도 1단 증을 보여주며 "한국이 최고야!"라고 외쳤다. 하루는 볼리비아 거리에서 온 가족이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었다. 이들은 내게 친근하게 말을 붙이며 마치 이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정을 나눴다. 라파즈 길거리 핫도그 상인 분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지나가는 이에게도 정과 웃음을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남아메리카의 정이 많은 공동체 문화는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 마떼 문화가 있다. 이는 여러 사람이 모여 컵과 빨대를 돌려 차를 마시는 것이다. 단순히 음료 공유를 넘어, 신뢰와 공동체적 연결을 느끼는 문화다. 만난 지 10분도 되지 않은 나에게 아르헨티나 친구는 본인이 마신 빨대를 건넸다. "빨대를 바로 공유하는 거야?" "물론이지." 낯선 여행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경험을 통해 나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걸 느꼈다. 함께 나누는 마떼는 남아메리카인의 열린 온정의 상징이었다. 남아메리카 사람들은 정열적이고, 웃음과 에너지가 가득했다. 그 속에서 나는 공동체를 위한 다정함을 느꼈다.
남아메리카 여행은 흔히 예측 불가한 변수가 많았다. 그 속에서 나의 정신력은 나날이 강해졌다. 페루 쿠스코로 가는 버스에서의 상황을 예로 들 수 있다. 남아메리카 로컬 버스는 한국과 전혀 달랐다. 누구도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 SNS에서 오는 알림은 물론, 누군가 영화 보는 소리까지 함께 들려왔다. 아기들은 울며 좌석을 발로 찼지만, 어느새 나는 이런 상황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래야 남아메리카 버스지.' 여행하며 겪는 불편함조차 남아메리카 여행의 리얼리티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버스를 타고 가다 자연재해 여파로 걸어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예측 불가한 상황이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버스로 걸어가는데, 넘어져 휴대폰 액정에 금이 갔다. 보통이라면 신경질 날 법도 했지만, 나는 오히려 감사했다. 적어도 버스를 탈 수 있음에, 단지 넘어진 것에, 액정이 깨진 게 아님에 감사했다. 나는 나날이 강해지는 내 정신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매번 고정 가격으로 생활했기에 세계일주를 하며 변동 가격 개념을 처음으로 체감했다. 남아메리카 여행 전에도 변동 가격으로 곤란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예를 들어, 공식 환율과 비공식 환율이 따로 존재하는 이집트에서 큰 액수의 수업료를 두고 업체 사장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일련의 경험으로 변동 가격에 내공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남아메리카의 변동 가격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그중에서도 환율이 불안정한 아르헨티나에서 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이곳에서는 불과 몇 시간을 사이로 10만 원 혹은 그 이상 가격이 달라졌다. 어제 버스 회사에서 100달러를 부르던 요금은 반나절 만에 180달러로 바뀌었다. 급격하게 변하는 가격에 처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그 속에서 경제가 돌아가는 다른 체계를 익히고, 쓰라림으로 배워가는 기회였다.
나는 메모장을 덮은 채 창밖을 바라봤다. 지난 46일간의 남아메리카 여정이 빠르게 흘러갔다. 페루 리마의 밤거리는 서울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승합차는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어두워진 유리창에 내 모습이 비쳤다. '지난 365일간의 여정이 끝나는구나.' 지난 1년 동안 수없이 많은 깨달음과 배움을 얻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밀려오는 배움을 적고자 황급히 메모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첫 번째, 여행하며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 많았다. 온전히 낯선 곳에 나를 던지고, 낯선 환경에 나타나는 내 행동과 생각이 새로웠다. '내가 이런 부분이 있었구나'라며 놀란 순간들이었다. 예를 들어, 인도에 37일간 머무르며 빵을 먹다가 벌레가 나와도 부위만 떼고 다시 먹는 게 익숙해졌다. 노트북 위로 개미가 기어가도, 10분 안에 먼지가 쌓여도 자연스러웠다. 거울 너머 보이는 기름진 머리와 허름한 옷을 입은 내 모습이 새롭게 보이며 웃음이 나왔다.
두 번째, 원래 알고 있던 내 모습에 큰 확신을 가지는 순간도 많았다. 예를 들어, 베트남 하노이에서 예상치 못하게 길바닥 노숙을 했을 때, 이집트 비행기 결항으로 공항에서 숙박할 때, 아무렇지 않게 호텔 화장실에서 밤을 지새울 때, 나는 어디서나 잘 자는 사람인 걸 확신했다. 또한 새로운 곳에 발을 딛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살아있음을 느꼈다. 순간을 살아가면서 나는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걸 개 달았다.
세 번째, 홀로 여행하며 맞이한 고독 속에서 나는 홀로 존재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스스로 묻고, 나만의 답을 찾아갔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매일 새롭고 완전히 다른 하루를 보내는 여행이 행복했다. 변화 속에서 성장을 느끼고, 성장 속에서 행복을 느꼈다.
나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쭉 살아오다가, 여행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걸 느꼈다. 그 속에서 다른 삶과 관점을 가진 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법도 배웠다. 또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 이익을 위해 다가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모두에게 마냥 친절한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님을, 때로는 적절히 거리를 두거나 무시해야 할 때도 있음을 배웠다.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보호된 내가 다시 타인을 보호하는 법을 익혀갔다.
나아가 눈앞에 놓인 선택지를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 앞에서 유연하게 생각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그 속에서 나의 기준이 확립되고, 선호를 파악하며 진정 나만의 선택을 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꿈을 주고, 성장을 만들어주는 사람을 꿈꿨다.
나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다양한 삶을 알아갔다. 그 속에서 몰랐던 삶을 깨달으며 내 미래를 그려갔다. 특히 나는 카우치서핑을 통해 타인의 삶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카우치서핑은 현지 친구 집에서 무료로 묵으며 문화 교류를 하는 커뮤니티이다. 나는 현지 친구 집에서 다양한 삶의 형태를 만났다. 가족을 이룬 가정, 사랑하는 사람을 찾은 친구, 꿈을 향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친구 등 그들의 삶을 보며 앞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고민했다. 타인과 함께한 형태에서 나아가 본인만의 삶을 사는 다양한 형태도 보았다. 매번 여행만 다니다 가족을 만나 정착한 사람, 어릴 적부터 세계를 다니면서도 계속 여행하는 사람, 사업적으로 성공해 자선을 베푸는 사람 등의 여러 형태의 삶을 보며 내 미래 모습을 상상했다. 특히 삶의 이유로 가족을 답한 이들을 보며,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아내와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타인의 삶을 통해 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넓힐 수 있었다. 여행은 나를 발견하고 미래의 나를 꿈꾸게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언제나 삶은 아름답고, 인생은 꽃밭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가 나고 자란 마을은 한밤중에 홀로 걸어도 아무 일이 발생하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치안이 안전한 한국에서 자라며 높은 안전불감증이 있었다. 여행은 그런 나에게 인생의 위험을 가르쳐주었다.
볼리비아 라파즈에 머물며 하루는 숙소로 돌아가는 밤이었다. 과거라면 무턱대고 걸어갔을 터지만, 나는 안전하게 갈 방법을 고민했다. 문득 서아시아 요르단에서 한밤 중 히치하이킹을 하고, 세계에서 위험한 도시로 손꼽히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를 걸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도난과 강도를 당했지만, 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 경험들 덕분에 나는 밤거리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안전한 방법을 고민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 신기했다. 결국 나는 길을 걷던 커플에게 부탁해 함께 걸어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밤거리에 홀로 택시를 탄 첫 경험이었다. 나는 삶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와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행을 통해 진정 있게 새길 수 있었다.
나에게 여행 내공이란 비행기 표를 저렴하게 구하거나 맛집을 찾는 능력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태도를 의미했다. 어느덧 세계일주 1년 차, 나는 여행 내공이 가져다준 감각이 생겼다. 남아메리카 여행을 시작하고는 그 태도는 더욱 초연해졌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ATM을 사용하려 했지만, 기계 오작동으로 카드가 나오지 않았다. 과거 튀르키예에서 같은 상황을 경험할 때는 방방 뛰며 카드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난리를 쳤지만, 이번에는 곧바로 생각했다. '오늘은 이거구나'.
하루는 볼리비아 라파즈 투어를 예약했다. 예정된 버스 시간이 늦어지며 미팅 포인트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뭐 할 것 같았다. 원래라면 전전긍긍하며 기사를 쳐다보겠지만, 나는 자포자기하며 아무렇지 않았다. 이미 투어를 놓쳐서 오늘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여행 초반에는 전혀 없던 태도였다. 지난 여행을 통해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는 자세가 생긴 것이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것에 익숙해진 마음에 여행자다운 체력과 감각이 생긴 것을 확신했다. 마지막 국가인 페루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일주 초반에는 여행을 세세하게 계획했지만, 페루에서는 내일 어디로 갈지 나 자신조차 몰랐다. "푸노로 가면 좋을 텐데, 버스표가 없으면 코파카바나에 가면 되니까." 어느새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태도가 내 몸에 베여있었다.
또한 여행은 내게 여유를 불어넣었다. 나는 어느새 결과와 상관없이 노력했다는 사실에 대한 만족감에 익숙했다. 오늘 기차 연착으로 인해 목표한 곳에 가지 못해도 그로 인해 여유로워진 계획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행은 세상이 종종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계속해서 깨닫는 상황에서 유연함을 몸속 깊이 새겼다.
나는 여행을 하며 감정에 솔직해지는 순간을 겪었다. 온전히 순간에 있으며 지금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한 번은 여행에서 만난 이와 진심을 다해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돌아보면, 한국에서 나는 관계에 대한 감정에 충실하지 못했었다. 상대를 좋아해도 여러 변수를 고려하며 감정을 억제해 왔다. 주변과 얽힌 관계나 장기간 이어져야 한다는 책임감 등으로 인해 내 마음에 솔직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행에서 만난 나는 달랐다. 얽힌 관계없이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낯선 환경이 주는 용기로 솔직하게 다가가고, 표현할 수 있었다. 마음을 준 관계와 이별하는 순간은 언제나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아픔조차 그 순간이기에 가능했다. 아픔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삶을 배웠다. 여행은 내게 충실하게 감정을 따르는 방법을 알려줬다. 찬란하고 값진 경험이었다.
공항에 도착해 메모장을 덮었다. 출국 수속을 위해 줄을 기다리며 지난 1년을 되짚었다. 각 대륙별 여행으로 깨달은 메모장을 쭉 읽어 내려가니, 지난 세계일주를 통해 많이 배웠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일까, 나는 1년 전의 내가 아니란 걸 확신했다. 여행은 내게 인생학교와 같았다.
메모를 한참 읽던 중, 모니터에 보딩 표시가 떴다. 나는 메모장을 덮고 탑승구에 올랐다. 미소로 승객을 맞이하는 승무원을 보며 세계일주가 끝났다는 걸 실감했다. 문득 페루 와카치나 오아이스에서의 마음이 떠올랐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아름다운 사막 오아시스를 보며 무뎌졌던 마음이었다. 당시 나는 '누군가와 함께 보면 좋았겠다'라고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감흥을 느끼려 해도, 체크리스트를 완수한 느낌에만 머물렀다. 세계일주 마지막 날, 페루 리마 거리를 걸으며 노래를 듣고, 길거리 음식을 맛보았다. 낯선 땅의 정취를 느끼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아쉽기도 했지만, 그 아쉬움마저 소중했다. 비행기에 오르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지난 1년간의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 때문일까, 끝까지 친절과 호의를 베푼 사람들 덕분일까, 집으로 돌아간다는 마음 때문일까. 알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다짐했다. 여행하며 받은 수많은 미소, 친절, 환대, 대접, 배려, 호의, 관심, 애정, 포용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이 눈물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나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나는 첫 번째 세계일주를 마무리하며 메모장을 가방에 넣었다. 비행기는 한국을 향해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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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신예진(데이지)은 스스로 돈 벌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었습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서도 관련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