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와이나 포토시에서 만난 알렉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 중 하나인 볼리비아 라파즈.
높은 해발고도고 불과 이틀 만에 6,088m 등반도 가능하다.
장정 6,088m를 품은 산은 와이나 포토시.
아름다운 일출을 갖고 있다는 소식에 와이나 포토시 등반을 시작한다.
나름대로 순조롭게 첫째 날 산행을 마치고,
잠시 추위를 녹일 겸 따뜻한 차를 움켜쥔다.
와이나 포토시 가이드 알렉스도 내 앞에 앉아 함께 비스킷을 집어 든다.
무거운 짐을 들며 오른 그가 대단하다고 말하며 대화를 시작한다.
"원래부터 산 가이드가 되고 싶었어요?"
"응.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등산을 가곤 했거든."
알렉스는 나의 물음에 12살부터 아버지를 따라 오른 등산으로 운을 뗀다.
군대가 의무인 볼리비아에서
그도 1년간 군인으로 지낸 이야기를 이어한다.
"군대에서 농업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배웠어. 처음으로 암벽등반도 했지."
그는 17살 때 등반을 처음 한 뒤 본격적으로 등반을 좋아하게 된다.
뭐든지 무료로 배울 수 있다는 점과
볼리비아 내의 여러 산을 등반할 수 있다는 점은
그가 산을 더욱 좋아하게 만든다.
군대를 나온 뒤 본격 등산 전문가 과정 교육을 받아
오늘날에 이른다.
"아콩카과는 아르헨티나 산이지만, 아콩카과에서도 가이드를 했었어."
그는 아콩카과에서 만난 이 중에서
아쿠아 와글 매우 쉬워했던 호주 부부를 언급한다.
"난 킬리만자로도 어렵게 했는데, 훨씬 *높은 아콩콰가를 쉽게 하다니!"
"여기도 높은 고산지대야. 정신이 오락가락할 수도 있어."
괜스레 도전의식이 생긴 채
새롭게 아콩콰가 등반을 다짐하면서도
고산지대 정신을 놓지 않고자
그는 내게 겸손한 마음을 잊지 않게 한다.
*아콩콰가산은 6,960m에 이른다
대화를 뚫으며 가스 소리가 흘러온다.
해발 5,000m가 넘는 오두막집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다 주는 소리.
가스는 새어 나오는 듯한 소리로
입김이 나오는 공기를 따뜻하게 만든다.
나는 그에게 이어 묻는다.
"꿈이 뭐야? (스페인어로 물어본다)"
"스페인어 할 수 있어?"
"아니(웃음) 답은 영어로 해줘"
유일하게 아는 스페인어로 장난스레 묻는 내게
그는 점잖은 웃음으로 말한다.
"K2에 등반하고 싶어.
내 오랜 꿈이었지."
이미 유능한 산악 가이드임에도
여전히 배우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하며 덧붙인다.
"그게 산에서의 삶이야."
춥고, 압력이 높은 상황에서도
점잖은 미소를 품은 알렉스.
우린 함께 난로 가스가 토하는 소리를 배경으로
난로에 붙어 양말과 신발이 마르기를 기다린다.
문득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야
다음날, 왕이나 포토시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늦은 새벽부터 등산을 시작한다.
고도가 주는 고난과 날씨가 주는 어려움에 나는 한계에 부딪힌 듯한 느낌을 받는다.
등반객 세명과 가이드 한 명이 함께 올라가는 상황.
내가 등반을 포기하게 된다면, 나머지 두 등산객도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나로 인해 다른 이의 꿈을 막을 수 없기에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오른다.
"얘들아 진짜 미안한데, 우리 잠깐만 쉬어도 될까?"
1분 오르고 자꾸 쉬자고 제안하는 나에게 알렉스는 오를 수 있다며 격려한다.
"고마워. 그런데 내 몸이 마음대로 안 따라줘. 정말,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아."
"그래 잠깐 쉬자. 아주 잠깐이야."
만약 혼자서만 오르는 거였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포기하면, 다른 이들도 같이 내려와야 하는 상황 때문에,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의 목표가 사라진다는 생각 때문에 도무지 포기를 할 수 없다.
"나 정말, 너무 힘들어."
모두가 힘든 상황임에도 도저히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 힘듦을 탈출하지 못할 것만 같다.
나의 한계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부족한 산소와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 상태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다고 외친다. 이 순간만큼은 내 여행 전부를 바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데이지, 우리 다시 가볼까?"
알렉스의 격려는 내게 말한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결국 가야 한다는 것뿐이라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이를 악 문채 오로지 눈앞의 한 발자국만 더 앞으로 가겠다는 심보로 오른다. 나를 단단히 잡고 기도하면서.
"아이나 포토시 정상을 무사히 오를 수 있게 도와주세요."
와이나 포토시는 황홀하기 그지없이
주황빛의 향연을 내뿜는다.
산을 덮은 흰색의 눈은 주홍빛을 띠며
발그레 우리에게 인사한다.
무사히 와이나 포토시에 올랐다는 안도감과
내게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일출을 마음에 품은 채
볼리비아를 향해 소리친다.
"안녕!"
포토시 산을 오가는 차 안에서 독일 커플과 이야기 나눈다.
"같이 세계여행을 시작해 2년 반이 되었어.
이제 돈을 다 써서 독일로 돌아가려고 해"
그들의 여정을 잠깐 들었지만,
포토시 산을 이동하는 차 안에서 오래도록 생각이 남는다.
삶이란 무엇일까.
추상적이고도 심오한 문장 아래에서
그간 여행하며 만난 수많은 이들이 스쳐간다.
한국이라는 틀 밖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보여준 이들.
'나는 왜 지금까지 목표 하나로 무조건 명예와 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오로지 한 목표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을까?'
3년의 고등학교 생활 동안 소위 명문대라는 목표 하나 아래로 훈련받아와서일까,
일하고 여행하며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삶을 바라보며 틀이 깨지는 느낌을 받는다.
하나의 목표로 달려오는 것 역시 좋은 경험이었지만,
그런 경험을 했다고
그런 방식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니까.
와이나 포토시에 오르는 순간처럼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정신으로
내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도 있지만
정상에 오르지 않더라도
산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원하는 하나의 목표로 돌진하지 않더라도
이 밖에 아름다운 일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한다.
문득 알렉스가 산을 오르며 굳건히 미소 짓는 순간이 떠오른다.
그가 산을 오르는 여정을 들으며 내가 했던 말이 스쳐간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 자체야.
정상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목표를 따라가려는 과정 자체가 값진 거니까."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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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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