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세상엔
좋은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마

볼리비아 오루로에서 만난 윌리엄

by 여행가 데이지

매년 2월이면 열리는 오로루 카니발.

볼리비아 고산 지역에 위치한 오로루는

전통적이고 지역적 특색으로 성대하게 카니발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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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오로루 카니발에서


카니발을 함께 보러 가기로 한 호스트 윌리엄.

그는 저녁 늦게서야 일을 마치고 나를 데리러 온다.

택시 문을 열며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코차밤바 지역에서 은행일을 하는 그는

오로루 카니발을 위해 달려온다.


"지구 위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을 시간을 활용해 즐겨야지!"


차분하고 조용한 윌리엄의 미소는

부드러운 바람처럼,

그의 온화함이 고요히 스며든다.

우린 그의 삼촌 집으로 향한다.


"삼촌은 머무르지 않아서 집이 텅 비었거든.

카니발이면 여행자를 이곳에서 맞이하기도 해."


그의 삼촌 집에 배낭을 내려놓고

한창 달아오른 카니발을 놓칠세라

우린 곧장 축제의 현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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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전통과 문화를 물씬 담은 카니발을 배경으로 방울소리가 울린다.

다양한 색의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은 민속춤을 추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금은색이 섞인 비즈와 깃털로 화려하게 장식한 사람들은 힘차게 춤을 추며 행진한다.

치렁치렁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이들은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을 보낸다.


IMG_4071.JPG?type=w773 카니발을 마친 뒤


"그럼 푹 쉬어. 나는 갔다 올게."


"지금 다시 나간다고?"


밤새도록 카니발을 즐긴 우리는 새벽 4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피곤에 찌들어 바로 침대에 달려들려는 나에게

그는 아직 끝나지 않은 밤을 즐기러 다시 떠난다.


"다시 나갈 거라면 왜 집에 온 거야?"


"그야, 너를 데려다 주기 위해서지."


그의 열정에 놀라면서도

나를 위해 다시 집에 와서 나가는 그의 배려심에 감동받는다.


"윌리엄, 지금 나는 너무 피곤한데,

이 카니발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걸 알아.

조금 자고 나서 다시 카니발을 보러 갈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카니발이란 생각은

피곤을 무릅쓰고 더 즐기겠다는 열정으로 변한다.


그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해에 밝아진 아침에 다시 나를 데리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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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다시 찾은 카니발_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윌리엄과 다시 만나

카니발의 마지막을 즐긴다.


광장을 가득 채운 소리에 앞사람에게 목청껏 소리 높여 인사를 나누고

서로 몸을 맞대며 카니발의 흥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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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전통 음료인 살루피아를 마시며


한바탕 카니발을 즐긴 후,

축제를 정리하는 인산인해 속에서

살루피아를 파는 천막에 들어간다.


따뜻이 목에 녹아내리는 살루피아와

튀겨 올라온 빵을 먹으며 이야기 나눈다.


"우리 모두 각자는

역사, 경험, 문화를 가진 독특하고 특별한 세계야.

나는 그 세계를 보는 게 재밌어."


산책과 커피, 일몰을 좋아하는 그는

단순하지만,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일들로 삶을 채우며

조용하지만, 삶을 자신만의 색채로 살아간다.


밤새도록 춤을 추어도 또 밤새도록 춤을 추고,

아침이 되어서도 춤을 추는 그의 에너지는

나긋하게 웃는 그의 미소와 대비되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의 모습의 이유가 된다.


IMG-20240213-WA0161.jpg?type=w773 이튿날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카니발


카니발의 열정적인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밤을 맞이하는 하루.

카니발 저녁을 맞이하기 전,

그와 오로루 일대를 함께 거닌다.


낮에도 퍼지는 퍼레이드와 축제 분위기는

오로라 거리 곳곳을 가득 채운다.

수많은 인파 뒤에서 한적한 오로라 거리를 걷다가

우린 볼리비아 전통 음식점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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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전통음식 살테냐


만두처럼 생긴 살 테냐(salteña)를 한입 움켜쥔다.

다양한 육류와 향신료를 볶은 후 만두피에 싼

살 테냐를 한입 무니 속 안에 가득 찬 육즙이 흘러나온다.


"육즙을 흘리지 않고 먹는 사람은

입맞춤을 아주 잘한다는 볼리비아의 속설이 있어."


장난스레 말하는 그는 능숙하게 살 테냐를 먹는다.

가게 안은 축제의 열기가 남아있듯

생동감 넘치는 볼리비아 노래가 흘러나온다.

라틴풍의 리듬은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며

우리의 대화를 생생하게 만든다.


순박하고 순수한 웃음의 윌리엄은

세상은 여전히 좋은 사람으로 가득하다고 믿는다.

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삶에 대해 나와 공통적으로 느끼는 생각을 공유하게 만든다.


"인생에서 했던 최고의 것이 뭐야?"


"하루를 더 살아있다는 거지.

지금 이 순간 하루를 더 살아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일인 걸.

우리가 간과한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게 만들잖아."


"그게 삶이지. (Es la vida)."


"그게 삶이니까. (Es la vida)."


나를 따라 말하는 그는 웃음을 지은 뒤, 이어 말한다.


"삶은 짧고 시간은 다시 오지 않아.

오직 네가 만들어낸 것들이 너를 행복하게 할 거야.

네가 무엇을 만들었든지 간에 행복하면 돼."


혹자가 힘들어할 상황이더라도

좋게 받아들이며 헤쳐나가는 그의 모습은

느릿하게 말하는 말의 속도와 온화한 눈빛으로 드러난다.


"천사가 존재한다면,

나의 천사는 매우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

나는 매우 좋은 부모님이 있기 때문이야."


1명의 형과 2명의 여동생이 있는 윌리엄은

본인의 가족을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기며

그는 본인의 삶의 이유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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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유는 두 가지야.

첫 번째는 내 가족들의 안전이지.
나는 내 가족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
두 번째는 삶은 좋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고 믿어서야.
사람들은 나의 동반자가 될 수 있지.


여전히 삶을 좋은 이들로 가득 찼다고 믿는 나에게도

순수한 볼리비아 청년에게서 오는 강렬한 믿음은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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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카니발의 순간들


우린 오로라 카니발의 마지막 밤을 함께한다.

함께 춤을 추고,

퍼레이드가 주는 분위기에 흠뻑 취한다.


다음날 탈 새벽 버스를 위해

윌리엄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우린 볼리비아 핫도그를 먹으며 카니발의 잔향을 흡수하고,

카니발의 마지막 밤거리를 음미한다.


"윌리엄, 최근에 슬펐을 때가 언제야"


"글쎄.. 발가락을 찌었을 때 정말 슬프더라."


어이없어 웃는 나를 보며 그는 진지하게

발가락 찧을 때만 눈물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후 핫도그를 우걱우걱 먹으며 그는 덧붙인다.


"나는 눈물도 없지만, 애당초 표현을 잘하지 않아.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한적 없는걸.

물론 이게 좋지 않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기보다,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그들이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만드는 게 중요한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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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부모님께 표현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후회해?"


"어쩌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표현하지 않는 게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해?"


"그건 단지 표현의 다른 방식인걸.

예를 들어 너는 편지를 쓰거나 선물을 줄 수도 있지.

그것도 사랑의 상징이잖아.


꼭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하지 않는 것보다 말하는 게 더 낫다고는 할 수 있잖아.


그렇지만, 그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야.

단지 표현방식의 차이일 뿐이야."


그는 나의 말에 물끄러미 생각에 잠긴다.


"나는 모든 걸 다 표현하거든 (웃음)

우리가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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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루를 떠나며


이른 새벽, 두 번의 카니발 밤을 뜨겁게 보낸 우린 곧바로 잠에 빠진다.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새벽 버스형에 몸을 옮기려는 나는 윌리엄의 말을 떠올린다.


"데이지, 가기 전에 나를 꼭 깨워줘."


나에게는 침대를 주고,

본인은 소파에 쭈그려 잠든 윌리엄.

짧게 인사만 하려는 내 부름에

부스스 일어난 윌리엄은 말한다.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이 세계에서 너를 알게 되어서,

너의 어리고 열정적인 에너지를 느끼게 되어서 기뻐."


그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과 분위기는

카니발을 즐기는 열정으로 승화되는 게 신기하면서도

따뜻하게 나를 감사의 볼리비아의 순간을 채운다.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끝까지 삶의 따뜻함을 알려준 윌리엄.


그의 따뜻함을 가득 안고,

오로라 카니발의 방울소리와 작별 인사를 한다.


"윌리엄, 너도 정말 좋은 사람이야.

세상은 좋은 사람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앞으로도 잊지 마. 나도 잊지 않을게."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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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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