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겠다고 약속해

볼리비아 오루로에서 만난 네이라와 어머니

by 여행가 데이지

딸랑딸랑

찰랑찰랑

짤랑짤랑


매년 2월과 3월 사이에 남아메리카는 카니발을 알리는 방울소리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볼리비아 오루로 카니발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전통적인 축제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축제인 만큼

참여자는 저마다 전통옷으로 카니발을 다채롭게 채운다.


남아메리카에서 카니발을 즐기고 싶던 나는

'가장 전통적'이란 오루로 카니발에 솔깃한다.


'남아메리카 카니발은

볼리비아 오루로에서 보내볼까?'


생각은 현실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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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루 카니발에서


오로루 카니발 표를 사지 않은 나는

일반석에 가기 위해 입구 줄에서 기다린다.


카니발을 즐기러 온 이들은

왁자지껄 열기를 더하고,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게 맞나요?"


기다림의 연속이 시작되며,

카니발 입장 여부가 불확실해지면서

나는 앞에 있는 이에게 질문한다.


"아마도 그럴 거예요."


빨간 후드집업을 입은 소녀는

내게 부끄럽게 대답하며 묻는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이요!"


"한국!"


수줍음 가득한 말투는 이내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바뀐다.


"저는 한국을 정말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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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소녀 네이라

우린 함께 카니발 구경을 시작한다.

본인을 네이라라고 소개한 그는

엄마와 함께 카니발을 보러 온다.


"우리는 오로루에서 살고 있어서 작년에도 왔었어요."


어린 소녀에게서 나오는 풋풋함을 느낀다.

쑥스러움이 가득한 네이라는

카니발 중간중간 내게 한국에 대해 질문한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눈이 아프지 않은 불빛.

카니발을 채운 각양각색의 불빛을 바라본다.


카니발을 밝히는 방울 소리들과

화려한 전통옷을 입은 이들의 음악 소리에 취한다.

그와의 대화는 다채로운 카니발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네이라와 함께 본 카니발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를 모르는지,

얼마 안 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나타난 우비 상인들은

카니발 곳곳에서 우비를 팔기 시작한다.


"우리 나가야 할까?"


아쉬운 마음에 비를 조금 맞으며 카니발을 보지만,

빗줄기는 이내 거세진다.


결국 카니발 행진까지 중단된 상황.

호스트를 아직 만나지 않은 나는

어디로 비를 피해야 할지 고민한다.

네이라는 나에게 말한다.





"데이지, 괜찮으면 우리 집에서 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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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라 집으로 가는 길


방금 우연히 만난 나에게 선뜻 보금자리를 내준 모녀.

버스로 가는 중에서도 우린 대화를 이어간다.


몇 분 전에 화창한 날씨 아래에서 카니발을 즐기던 모습은 없고,

비에 홀딱 젖은 채 생쥐꼴이 된 우리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우연히 만난 모녀 덕분일까,

빗줄기는 내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네이라 집에서

도착한 네이라 집.

네이라와 어머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심히 들어간다.


"데이지, 집주인에게 네가 온 걸 들키면 안 돼."


도둑처럼 살금살금 방에 들어가니,

작고 아늑한 방이 나타난다.


"집이 누추해서 미안해."



"뭐가 누추해요! 좋은걸요?"


젖은 몸을 말리고

잠시 따뜻한 물로 휴식을 취하며

우린 서로에 대해 이야기한다.


네이라와 어머님은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이 반가운 듯

집안 곳곳을 소개하며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화가 조금씩 깊어질 무렵,

어머님은 병원 진단서를 보여주며 말한다.


"나는 오른발에 종양이 있어."


"미안해요."


"괜찮아. 다만, 종양이 사고로 생겼어."


"사고에 대해 물어봐도 되나요?"


"그럼. 몇 년 전에 한 택시가 내 다리를 넘고 지나갔어.

운전사는 줄행랑쳤고, 나는 거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어."


"그 뒤로 신고했어요?"


"아니. 당시에 나는 폰이 없었어. 나중에 종양이 생길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했거든."


"나중에라도 보고해야죠!"


"이미 늦었는걸. 직장에도 말했지만, 보험처리도 해주지 않았어."


나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에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괜찮다고 말하며 입을 삐죽 내민다.


무해한 이들이,

해를 당한 게 슬프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집주인에게 들키지 않고자

조용히 울분만 삭일 뿐이다.

한참 속상해하는 중에 어머님은 말한다.


"네이라가 데이지를 매우 좋아하는 거 같아.

오늘 밤 자고 가는 거 어때?"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수줍게 몸을 베베꼬는 네이라.


한국을 좋아한다는 사실로 나를 좋아해 주는 그가 고맙다.


"제안해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저는 카니발을 즐기고 싶어요.

내일 다시 만나는 거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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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우리는 다시 만난다.


다음날,

햇살이 쨍쨍한 하늘 아래 다시 만난다.

카니발로 흥이 넘치는 거리를 함께 걸으며

오루로에 우리 흔적을 남긴다.


지나가는 이에게 물 세계를 받으며 깔깔 웃기도,

길에 가득 찬 사람들도 서로의 손을 꼭 잡기도,

길거리 기념품을 함께 구경하기도 한다.


볼리비아 모녀에게서 느껴지는 수수한 마음이,

무해하게만 다가오는 마음이,

따사롭게 나를 껴안는 마음이

카니발 순간을 더욱 따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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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가는 길에는 텔레페리코(Teleférico)라는 케이블카(곤돌라 리프트)가 있다.


한참 카니발을 즐긴 뒤,

네이라와 나는 케이블카를 타고 전경을 보러 간다.


케이블카를 처음 타본다는 네이라는

조금씩 높아지는 유리창 너머로 입을 다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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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우와! 오루로 전경이 다 보이네!"


전망대가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우린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데이지,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전망대에 가자고 제안해 줘서,

전망대 티켓을 구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네이라는 보며

그에게서 느껴지는 수수함을 본다.


동시에,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수수함들을 떠올린다.

우리 삶을 밝게 만들어줄 수수 함들.

우리 삶을 더 낫게 만들어줄 수수함들.


나는 그 수수함들에게 언제나처럼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쑥스러워하는 네이라를 보며 말한다.


"네이라.

세계를 탐험해.


이 세상에는 네가 생각한 것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일들이 많다는 걸 잊지 마.


더 크게 생각하고, 더 크게 나아가는 거야."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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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라와 전망대에서


"한국은 어때요?"


그가 지내온 조그만 세상에서

미디어를 통해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은 사계절이 있어서 다양한 날씨가 있어,

우린 전통적으로 궁이 있고 ··."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는 네이라.

한국 이야기를 한참 들려주다가

그에게 약속을 제안한다.


"네이라, 나랑 약속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아서

나중에 스스로 한국에 오겠다고 말이야.


그러면, 내가 잊지못할 순간을 만들어줄게"


그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고,

우린 전망대에서 훗날을 기약했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니 어느덧 껌껌해진 밤,

그들과 헤어지기 전, 삶의 이유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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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라 어머님 : 내 삶의 이유는 네이라야.
네이라: 내 삶의 이유는 한국에 가보고 싶어서예요.


카니발을 기다리며 우연히 스친 인연이지만,


그들에게서 나를 수많은 것을 받았다.


내게 따뜻함을,

내게 무해한 마음을,

한국에 대한 관심을,

동시에,

수수한 소녀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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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을 채우는 다양한 불빛들

아무리 들여다봐도 눈이 아프지 않은 불빛.

카니발을 채운 각양각색의 불빛을 바라본다.


불빛은 어둠이 찾아오며 더욱 밝아진다.

하늘 위로 터지는 불빛을 보며 생각한다.



빛보다 빠른 게 마음이구나.

카니발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네이라와 어머니의 마음처럼.


그들과 작별인사로 진하게 포옹을 하며

카니발 불빛 사이로 헤어진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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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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