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와 볼리비아 국경에서 만난 일베르
도난 사건을 당한 뒤,
숨을 쉬고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괴로웠다.
미치도록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가만히 있으면 고통과 우울의 심연으로 빠지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건,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으로 향하는 것이다.
'인생은 총량의 법칙이야.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거야.
나는 그저 좋든 좋지 않든,
내게 닥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아가자.'
간절히 속으로 기도했다.
'찾지 못하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도록 마주할 힘을 주세요.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제게 주세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이 감정을 따뜻하게 포옹할 용기를 주세요.'
도난사건 관련 이야기 다시 보기 ▶ 볼리비아 I 우유니 사막에서 사진 찍기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가 너랑 마침 같은 버스를 탄대."
우유니 버스로 향하기 전,
스텔라는 우연히 같은 버스에 오를 직원을 연결해 준다.
"이름은 일베르야.
그 사람이 너를 볼리비아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줄 거야."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 전,
볼리비아로 향하는 버스에 다시 오른다.
일베르는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말한다.
"데이지! 스텔라에게 이야기 들었어. 우유니까지는 걱정하지 마!"
웃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던 나는 그의 에너지를 느끼며 미소 짓는다.
"감사합니다."
"데이지, 여기는 구리 광산이야. 저곳에서는 소금을 생산하기도 해."
깔라마에서 볼리비아로 가는 길에는
아타카마 지역에서 유명한 구리 광산이 있다.
스텔라와 함께 구리 채굴 일을 하는 일부.
그는 차창 너머 스치는 풍경을 소개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 생산지 중 하나인 곳인 만큼
가도 가도 끝없이 구리광산과 제는 서가 펼쳐진다.
아직 칼라마에서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나는
나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느닷없이 눈물을 터뜨린다.
"데이지, 괜찮아."
그는 약하게 눈물짓는 나를 볼 때마다
나를 꼭 껴안고 위로해 준다.
동시에 그는 자기 우주 일부를 공유해 준다.
어릴 적 엔지니어를 꿈꿨던 일부.
그는 NASA에서 일하는 컴퓨터 과학자를 꿈꿨다.
"주위 사람들과 지역사회,
그리고 내 가족을 돕고 싶었거든"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오며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일을 했다.
"작은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았어."
그는 어릴 적에는 엄마의 세탁 일과 장작, 바느질을 돕고,
10살부터는 삼촌 빵집에서 빵을 만들었다.
그는 대학교 한 학기 동안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지만,
비용 문제에 부딪힌 그는 이내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친동생을 통해 칠레 광산 일을 하게 되어
어느새 9년 차에 접어들었다.
신이 있다면 제가 고통받는 이유를 알게 해 주세요.
신이 있다면, 이 고통으로부터 배울 구 맛있게 해주세요
나는 그와 대화하면서
중간중간 떠오르는 악몽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멈추지 않는 눈물이 사정없이 흐른다.
일부는 내게 괜찮다고 말하며,
우유니로 향하는 버스 내내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일베르,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예요?"
"음, 8살 때가 기억에 나.
아무 걱정 없이 학교에 노래 부르면서 등교했을 때의 모습이 떠오르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교 시간은
그는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감사해."
그는 가난한 가정으로 여전히 경제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지만,
하루하루 감사해하며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
"지금 꿈이 뭐예요?"
"나는 세계 각지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
미래에는 미래 아내 시간을 사랑하고 싶어. 미래 가족을 만나 돌봐주고 싶어."
가진 게 없어도 만족하며
소소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꿈을 가진 일부.
그는 우유니로 가는 차 안에서
모든 걸 잃은 것 같던 내 마음에 풍부함을 준다.
나는 그에게 말한다.
"어릴 적, 책에서 볼리비아를 봤어요.
볼리비아는 제 가장 큰 꿈이었죠.
당신은 행운이에요.
정말 아름다운 나라에서 태어났잖아요."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신은 아름답게 만든 자연과 함께 삶을 선물했어.
나는 신이 준 장엄한 자연을 보고 즐기기 위해 살지.
산의 공기를 음미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삶 말이야.
우유니에 머무는 동안 일베르는 나를 챙겨준다.
스텔라 가족과 무사히 만났는지,
우유니 이후에 가는 버스는 무사히 구매했는지,
우유니 사막에 무사히 다녀왔는지,
그의 걱정 덕분에 무사히 우유니 사막에 다녀온다.
여전히 가슴에 남은 아픈 마음과 함께 우유니 사막을 본다.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에
우유니 사막의 염분을 다 없애겠다는 듯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토록 원하던 우유니 사막을 보고,
다시 새로운 여정을 위해 우유니를 떠나는 날,
일베르는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한다.
깔라마에서 우유니로 가는 길은
나에게 고통 그 자체였다.
멍하니 창밖을 보기만 해도
내 안의 상처가 염증을 일으켰고,
고통에 당해내지 못한 눈물은
뺨 위를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그 길을 함께해 준 일부가 있었기에,
그가 내 상처를 마주하도록 도와주었기에,
나는 나의 꿈이었던 우유니 사막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꿈을 향해 새로운 발자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버스에 오르기 전,
나는 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그의 볼에 뽀뽀를 한다.
그는 갑작스러운 나의 반응에 당황하더니
나를 번쩍 들어 올려 뽀뽀에 보답한다.
"와! 일베르!! 나 엄청 무거운데!"
나는 여전히 흐르는 눈물로 그에게 말한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데이지,
강해져야 해.
울지 말고, 강해져야 해."
그러더니 그는 주머니에서 50볼 지폐를 꺼낸다.
"이걸로 맛있는 거 먹고 울지 마."
나는 그에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를 끝까지 걱정하고 챙겨주는 그의 모습에
눈물이 또 흐른다.
나는 깊게 팬 내 상처 위에 놓인
그의 따뜻한 마음이 온기로 가득해서
눈물로 그를 안으며 말한다.
"고마워.
고마워."
그를 안은 건 나였지만,
나는 그에게 언제나 포옹받은 느낌이다.
그의 존재는,
그의 순수한 웃음은,
그의 장난기 섞인 표정은,
그가 삶을 만족하는 태도는,
그가 나를 위해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었고,
그 포옹이 어찌나 따뜻하던지
그저 내 의도와 상관없이 줄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릴 적, 흰색 강아지 두 마리가 집 앞을 지키고 있었다.
강아지가 무서웠던 나는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죽기 살기로 집 안으로 뛰어들어간 뒤,
엄마를 보니 서럽게 눈물이 흘렀다.
강아지 두 마리로 안 해 내 집을 마음대로 가지 못한 사실이 서러웠다.
그때 엄마는 엉엉 우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일부의 포옹을 받으니,
그 당시 엄마의 포옹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따뜻했던 엄마의 포옹.
일부는 나의 눈물을 닦는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며
장난기 있게 까고 하듯 웃음 짓는다.
"일베르, 나중에 꼭 한국에 왔으면 좋겠어. 너에게 한국 가이드가 되어줄게.
지금 너에게 받은 모든 걸 그때 돌려줄게."
그는 한국에 가려면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하는 거냐며 농담조로 말한다. 나는 그의 농담에 웃음 지으며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 올라서도 멈추지 않는 눈물에 일부는 차창 너머 몸짓한다.
"강해져야 해. 울지 말고, 강해져야 해."
나는 펑펑 눈물을 쏟으며 그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출발 신호를 내는 버스에서 나는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 우유니와 작별인사한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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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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