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쿠스코에서 만난 시저
고대 잉카 문명을 꽃피운 마추픽추.
산꼭대기에 지어진 정교한 건축 기술은
잉카 제국이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의 위엄을 드러낸다.
수많은 이들은 잉카제국의 전성기를 보기 위해 도시 쿠스코를 찾는다.
마추픽추에서 신비로운 여행을 마친 뒤, 코스코로 돌아온다.
호스트를 요청했다 거리가 멀어 포기한 호스트에게
쿠스코의 전통 음식을 소개해 주겠다고 연락이 온다.
페루 전통 의상을 입은 이들을 지나치며
고대와 현대가 혼합된 쿠스코 거리를 지나 상대와 만난다.
해맑게 웃으며 그를 반기는 내게 고동색 페루 모자를 쓴 채로 밝게 인사한다.
"나는 시저야."
영화 제작자인 시저는 음향 감독으로 활동한다며 자신을 소개한다.
"무언가 쿠스코가 아닌 다른 장소로 가야 한다는 에너지를 받았어."
마흔 살이 되어 신청한 쿠바 영화학교를 다니며
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친구들을 사귀고,
영화 촬영을 위해 다른 국가를 다닌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행을 다니면서 쿠스코의 삶이 좋다는 걸 깨달았어.
이곳 사람들, 저렴한 음식이 있잖아. (웃음)"
유럽은 과일이 비싸다며 장난스레 말하면서도
다른 삶의 형태를 이해하는 데 흥미를 가진 모습은 나와 같다.
주어진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고자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고자 노력한다.
"왜 ‘소리’에 집중한 거야?
영화에서는 소리 말고도 다른 게 많은데"
"영화의 다른 곳도 관심 있어.
아마 의식적으로 이어졌나 봐.
공부를 마치고, 스튜디오에서 일도 하고,
쿠바의 영화 스쿨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거 같아."
부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주로 촬영하며
그는 정글에서 일하기도 했다.
정글을 다니며 만난 원주민의 삶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의 말 토씨 하나하나는
내게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온다.
"샤머니즘을 믿고, 자연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부족들이지.
진짜 샤머니즘은 또 다른 정글 어딘가에도 많을 거야."
정글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나는
정글에서 촬영한다는 상상에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는다.
동전도 양면성이 있듯,
정글 다큐멘터리 촬영이 마냥 쉽지 만은 않다.
높은 습도와 모기, 촬영 내내 불편한 장소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정글 촬영의 순간을 좋게 간직하고 있다.
"쿠스코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신성한 계곡(sacred valley)에
어머님 생신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네."
그는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신성한 계곡을 비롯해
아마존 부족 사람들의 묘약 이야기에 흥미를 갖는 내게
시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묘약 이야기를 들려준다.
* 아야와스카: 아마존 부족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 신비한 약물
남아메리카에서는 대부분이 자연스레 묘약 경험이 있다고 말하며
시저는 15살 때 아야와스카(ayahuasca)를 처음 해본 순간을 공유한다.
"내 생의 최고의 순간이었어.
그곳은 언덕이었고, 나는 자연에 둘러싸여 있었지."
다시 시도했을 때는 그 순간만큼 연결을 느끼지 못했다며 시저는 말한다.
"그렇지만, 매우 좋은 경험이야. 나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거든. 다른 관점의 나를 이해하게 돼."
내 안의 나를 이해하는 묘약의 신비에
똘망거리는 눈동자로 그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분주한 식당의 음식이 나오며 그는 음식을 소개하고,
우린 함께 음식을 음미한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친구들과 함께 묘약을 즐기고,
페루 정글 곳곳을 다니며 자연과 연결됨을 느껴온 그는 말한다.
"평화로운 느낌 있잖아, 원주민과의 연결된 느낌.
그 느낌이 참 좋아. 쿠스코는 자본주의가 깃든 도시잖아. 우리는 살기 위해서 일하고 무언가 노력해야 하지."
한참을 흥미진진하게 듣던 중, 식탁에 음식이 놓인다.
잉카 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음식이기에
오랜 전통을 가진 쿠스코의 맛을 몸속 깊이 음미하겠다는 심보로 전율을 느낀다.
시저는 이내 묘약 이야기를 이어 말한다.
"데이지.
묘약이 위험한 이유가 있어."
"일부 묘약은 마약이지 않아?"
"그렇지.
그러나, 마약을 떠나서
너 자신을 보는 건 매우 위험해."
"왜?"
"너 안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야."
시저는 마치 이웃집을 오가며 말하듯이
진정한 나를 깨닫는 영적 세계를 다녀와
영적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너는 너를 알아.
너 안에 네가 있다고.
그 밖에 뭐가 있어?
나를 아는 건 매우 공허하고, 길고, 어려운 일이야."
영적 세계를 넘나드는 그는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는 '내 안을 깨닫기'보다
세계와 연결되는 데 시간을 더 보낸다고 덧붙인다.
세상을 더 알아가기 위해 여행하고,
나의 시간을 담은 책을 쓰는 행위를 통해 '내 안을 깨닫는 것'이다.
"영적인 체험을 느끼며 행복했지.
사람들과 연결됨을 느끼고, 매우 단순한 삶이잖아.
그렇지만, 난 지금 이 삶도 좋아.
도시의 삶."
나는 영혼을 통해 나 자신을 보는 방법을 존중하면서도
내 안의 세계 외 타인의 세계,
인류가 만들어놓은 사회적 제도 아래와
규칙이 존재하는 삶에서의 가치도 알고 있는 그.
영적 세계에 빠진 이들은 으레
세속적 삶으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 경우만 보았기에,
그의 말은 내게 환상적 느낌을 심어주면서도
도시의 삶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은
영적 세계와 세속적 삶의 적절한 균형을 알려준다.
어릴 적부터 가져다준 영적 체험이 그에게 준 지혜는 무엇일까.
내 안의 나를 깨달은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시저의 이야기를 들으며 영적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바뀌고,
그에 대한 무수한 질문을 만든다.
"시저, 에너지를 믿어?"
"음, 언어가 가진 힘은 매우 강해. 언어로 규정하기에는 조심스러워.
아마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조심스럽다고도 말해야겠지. 만약 무언가 느낌이 올 때 받는 직감을 믿어."
고대 잉카의 석조 건축과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을 지나친다.
자갈로 포장된 울퉁불퉁한 도로는 쿠스코의 전통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분주한 거리 곳곳에 펼쳐진 길거리 상인의 공예품과 음식을 구경하며
우리는 다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쿠스코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시저, 꿈이 뭐야?"
"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거지.
자연에 머물면서.
훗날 가족을 갖고 싶어."
거리 어디선가 틀어진 페루 전통 노래가 길거리에 울린다.
정글과 신비한 묘약으로 가득한 대화를 들려준 시저와
같은 영화 제작인으로의 공통사, 나아가 그가 가진 생기 있는 에너지를 느낀다.
시저와 만남을 끝으로 곧바로 이하로 떠나는 버스를 예매한 나는
쿠스코에 더 머물고 싶다는 아쉬움을 가득 남기며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자연의 흐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야
무언가를 위해 지켜야 하는 규칙이 많은 사회 속
어느새 어린아이 같던 모습을 닳아서 없어져 버린 듯하지만,
시저의 표정에는 여전히 자연의 일부에서 나오는 모습이 얼핏 드러난다.
도시의 삶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훗날 사랑하는 이와 자연에서 살아가는 삶을 꿈꾸는 시저를 바라본다.
물리적이고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물질세계와
초월적이고 환상적인 영적 세계의 중심에서
쾌활하고 멋지게 자신의 삶을 나아가는 시저.
그 덕분에 더욱 소중하게 쿠스코의 마지막 순간을 품으며 쿠스코에게 인사한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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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