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45개국 세계여행가 데이지 여행 일기장 : 서아시아
세계일주 120일 차, 나는 남아시아를 여행한 뒤 서아시아로 넘어왔다. 서아시아는 아시아 대륙 서쪽 끝에 위치해 지중해와 홍해, 아라비아해와 맞닿아 있다. 흔히 중동이라 알려진 이곳은 풍부한 석유, 천연가스를 보유하며, 동시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태어난 종교의 발상지이다. 38일간 인도 문화 속에 깊이 녹아있던 탓일까, 처음 발을 디딘 서아시아는 전혀 다른 행성에 온 듯했다. 나는 서아시아 아라비아 반도 동남부의 오만(오만 술탄국)에서 낯선 여정을 시작했다. 오만 도시를 가득 채운 흰색과 옅은 황갈색 건물들, 피부 땀구멍을 찌르는 듯한 사막의 열기와 긴 속눈썹 아래 짙은 눈동자를 가진 아랍인의 모습에서 낯섦이 풍겼다. 그 낯섦에서 은은함이 번져왔다. 오만 아스팔트에 반사된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느낀 순간, 나는 이미 그 낯선 은은함을 사랑하고 있었다.
<데이지 세계일주 서아시아 일정>
서아시아 여행 (49일), 오만(3일), 두바이(1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7일), 요르단(5일), 튀르키예(29일), 사우디아라비아(3일), 바레인(1일)
6월 25일 - 6월 28일 오만: 무스카트, 소하르
6월 29일 - 6월 3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6월 30일 - 7월 7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텔아비브, 예루살렘, 에일라트
7월 7일 - 7월 12일 요르단: 아카바, 페트라
7월 28일 - 8월 26일 튀르키예: 메르신, 괴레메, 우치사르, 네브셰히르, 일하라, 안탈리아, 올림포스, 페티예, 파묵칼레, 쿠샤다시, 셀축, 이스탄불
11월 28일 - 12월 1일 사우디아라비아: 알아남, 알코바르, 담맘
11월 30일 바레인: 마나마
에어컨 바람에 서늘한 실내의 창가 너머로 사막 도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숨이 막힐듯한 공기를 마시며 시작한 서아시아 여행에서 나는 67일 동안 7개국을 여행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자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를 잇는 교차점인 서아시아는 내게 전혀 다른 삶의 양식을 알려주었다. 현대까지 이어지는 갈등의 참상을 목격하고, 종교와 국가 권력이 개인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지 느꼈다. 지난 여정을 마치고 케냐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창밖 하늘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마지막 여행지였던 사우디아라비아 담맘의 주홍빛 불빛들이 점차 멀어졌다. 이내 별무리처럼 흩어져 마치 내가 별 위에 떠 있는 한 착각이 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별빛이 이미 떠난 이들의 기억이라면, 아래에서 올려보는 별빛은 살아있는 이들의 순간일까. 찬란한 별빛을 바라보며, 나는 지난 67일간의 서아시아 여행에서 느낀 점을 기록하기 위해 메모장을 펼쳤다.
한국에서 이슬람 인구는 1% 채 되지 않는다. 내가 어린 시절에 접한 이슬람은 오로지 텔레비전 뉴스와 교과서 내용뿐이었다. 그 속에서 다룬 이슬람은 언제나 검을 베일과 테러, 폭력을 쓴 악인 이미지였다. 무슬림은 9.11 테러의 주동자였고, 히잡을 쓴 여성은 자유를 빼앗긴 존재였으며, 이슬람 사회는 무슬림이 아닌 사람은 배척당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내 머릿속은 자연스레 무슬림을 위험한 그림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아시아를 여행하며 만난 무슬림들은 나의 편견을 하나씩 허물었다. 오만의 해안도시 소하르에서 만난 친구는 말했다. "히잡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거야. 여성을 위한 거지." 나는 SNS에 얼굴을 올릴 수 없고, 외출마다 히잡으로 반드시 가려야 하는 상황은 자유를 제한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당연한 일상이자,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담맘에서 만난 다른 친구도 말했다. "이제 여성도 운전이 가능하잖아. 히잡을 쓰지 않고, 청바지를 입는 여성도 있어.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 친구는 덧붙였다. "요 근래에는 자유권이 주어져도 선택하지 않는 여성도 있어. 강요가 아니라 신념에 따라 선택하는 거지."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에서 만난 무슬림 친구와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정치학적 문제로 한창 지혜롭게 의견을 표출했다. 나는 그와 학문적 대화를 이어가다, 물었다. "이슬람권에서는 여성이 대학교수가 될 수 없는 게 사실이야?" 여성 교육권 진출과 관련해 그가 진보적 태도를 보일 거라 예상했지만, 답변은 예상과 달랐다. "네가 이 말을 인정할지 모르겠어. 그렇지만, 솔직히 말할게. 여성은 남성보다 더 감정적이야. 여성보다 남성이 지적인 부분에서 우월한 건 사실이야." 나는 답변을 듣자마자 충격에 빠졌다. 그에게 느낀 지혜는 종교적 가치 앞에 잠식되는 걸까, 그는 예시로 법정에서 감정에 치우쳐 눈물을 흘린 여성 변호사 이야기를 덧붙였다. 말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던 중, 불현듯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마른 체형을 유지하려고 애쓰던 시절이었다. '나는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은 어디서 온 거지?', '사회가 만든 미적 기준에 나를 맞춘 게 아닌가?'. 동시에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억압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이에게 신념과 자유의 표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감정적이라고 친구가 생각하듯이, 나도 사회가 만든 기준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슬람이 여성을 대하는 가치도 내게 제한으로 느껴져도, 누군가에게 자유를 위한 수단이었다. 내가 살아온 사회에 영향받아 차별로 규정한 것이 누군가에게 차별이 아닐 수 있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까지 튀르키예 곳곳에서 '히잡을 쓸 권리'를 외치는 여성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히잡을 금지했지만, 되레 폐지로 인해 자유가 제한된 것이다. 나는 서아시아를 여행하며 서구가 만든 시선에 길들여진 나를 발견했다. 나의 편견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낡은 지, 나의 생각은 사회가 빚어낸 틀 속에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낯설었던 이슬람 문화를 벗겨내며 낯선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은 여행자와 고아,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덕목이라 말한다. 코란 구절 덕분일까, 서아시아를 여행하며 나는 이방인을 대하는 무슬림의 따뜻함을 유독 많이 느꼈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이에게도 그들은 친절과 자비, 정의를 베풀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나라는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오만은 술탄 체제 아래에서 정치적 혼란이 적고, 주변국과의 중립 외교 덕분에 '중동의 스위스'라고 불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강력한 국가 통제로 낮은 범죄율을 보이며, 예맨 국경 일부를 제외하면 비교적 안전한 나라였다. 서아시아는 저렴한 연료가격으로 높은 자동차 사용률이 보이며, 그로 인해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다. 나는 비싼 택시비용을 낼 수 없어서 히치하이킹을 택했다. 지나가는 차량에 태워달라고 부탁하는 히치하이킹이 무모할 수 있었지만, 서아시아 사람들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흔쾌히 목적지까지 태워주었다. 히치하이킹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였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여행하며 만난 친구는 택시에서 겪은 일을 들려주었다. "내가 외국인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초대되었으니 택시 기사가 돈을 받지 않겠다는 거야." 실제 서아시아를 여행하며 빈번히 들려온 이야기였다. 실제 몇몇 기사는 코란을 언급하며 말했다. "네가 안전히 목적지에 가지 못하면, 무슬림으로서 내 의무를 이루지 못한 거니까." 하루는 무슬림 친구와 낙타고기 식당에서 배불리 식사를 했다. 친구는 계산 거를 받고 당연하듯이 지갑을 꺼냈다. 내가 이유를 묻자 그는 답했다. "어차피 네가 없어도 나는 이걸 사 먹을 거야. 그러면 돈 내는 건 똑같잖아." 이들에게 베풂은 삶에 베인 습관이었다. 낯선 이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고, 특별한 호의로 여기지 않았다. 처음 본 나를 가족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일로 갑작스레 친구 가족 집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가족들은 오래부터 알고 지낸 이처럼 나를 환영해 주었다. 따뜻한 잠자리와 푸짐한 음식을 마련하며 이방인에게 지극히 대접했다. 오만 여행을 마치고 나는 돈을 거의 안 쓴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는 따뜻함을 받았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나눔, 이방인에게 베푸는 환ㄴ대는 내가 서아시아를 떠나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서아시아에는 아랍어로 '권력'을 의미하는 '술탄' 형태의 나라들이 있다. 우리가 아는 국가는 보통 영토, 주민, 주권을 바탕으로 세워지지만, 술탄국은 다른 개념이다. 이슬람에서 통치자를 의미하는 칭호인 술탄은 선거로 선출되는 자리가 아니라, 가문으로 이어지는 세습 군주제의 자리다. 물론 서아시아에도 튀르키예, 레바논, 이스라엘처럼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의회를 선출하는 국가도 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오만 술탄국과 입헌군주제이지만 국왕 권한이 강한 요르단은 가문을 통해 지도자가 결정되는 국가들이다.
민주주의 뿌리가 강한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색다른 정치 체제가 낯설면서 신기했다. 나는 한 나라가 국가로 기능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필수요소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서아시아 국가는 나의 틀을 깨뜨렸다. 군주제와 권위주의적 공화국도 오랫동안 국가 형태로 기능해오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정치 주체로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서아시아를 여행하며 '국가란 무엇인지' 고민하였고, 내가 당연하게 믿어온 국가 형태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었다.
서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걸프 지역을 여행하며 나는 부자나라 마인드를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운전자와 대화가 있다. 그는 도시 관광지를 추천하였고, 나는 그에게 대중교통 방법을 물었다. 그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모두 자기 자동차가 있는데, 그런 게 필요해?" 그는 아무렇지 않게 뱉은 말이지만, 한 나라의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강력한 문장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오만,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 국가들은 20세기부터 원유 수출로 국가 재정을 높여왔다. 1인당 GDP는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속했고, 정부는 국민들에게 무상 서비스를 제공하며 생활 수준을 높였다. 자연스레 부유한 나라라는 인식이 퍼졌고, 걸프 국가를 여행하며 부유한 나라 이미지가 곳곳에 녹아듦을 체감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브루즈 칼리파는 그 상징을 보여줬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브루즈 칼리파는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고 세계 최고를 향한 자신감을 뽐냈다. 나는 카우치서핑을 통해 브루즈칼리파에서 무료로 잘 기회가 있었고, 그 당시 호스트는 내게 말했다. "나는 여행에 가서 없을 거야. 대신 운전기사를 보내서 열쇠를 전달할게. 편하게 머물다 가." 인심 넓은 호스트 덕분에 나는 두바이를 삼킬듯한 전망을 바라볼 수 있었다. 위엄 있는 스카이라인은 바라보며 나는 확신했다. 이들이 보여주는 나눔은 풍부한 자원에서 비롯된 자신감과 생활 수준에서 나오는 부유함이라는 것을. 집적적인 호의가 아니어도, 걸프 지역은 곳곳에서 부자나라 마인드를 드러냈다. 대표적으로 실내의 차가운 공기였다. 여름이면 50도까지 오르는 사막 기후는 석유와 가스로 에너지 비용이 저렴한 국가에게 문제 되지 않았다. 이들은 국가 보조금과 낮은 전기 요금으로 마음껏 냉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더위는 참는 게 아니라 에어컨으로 제어하는 것이 당연시 배어있었다. 잠시라도 한낮 거리를 걸어도 높은 습도와 열기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졌지만,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바깥 더위가 무색하게 내부는 언제나 서늘했다. 나는 걸프 여행을 돌아볼 때, 뜨겁게 타오르는 도로의 열기와 동시에 몸이 떨리는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서아시아 걸프 국가를 여행하며 나는 다른 대륙 국가에 비해 자국민을 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오만 등은 외국인 인구가 전체 70% 이상을 차지한다. 두바이의 경우, 자국민 비율은 10% 이하이며, 상대적으로 자국민 비중이 높은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외국인 노동자가 30%를 넘는다. 나는 두바이를 여행하며 하루 종일 거리를 걷고 사람들을 만났지만, 두바이 자국민을 볼 수 없었다. 오만 술집과 클럽은 태국 여성들로 가득했고, 현지 가정집은 아프리카 출신의 가사 노동자가 한 명씩 있었다. 이전에 언급한 '부자나라 마인드'와 맞닿은 풍경이었다. 나는 현지 친구에게 가사노동자 고용 이유를 물었고 그는 짧게 답했다. "음식 만들고 청소할 시간은 없고, 가사노동자는 있는데, 고용 안 할 이유가 있나?" 그의 말에서 가사 노동을 맡기는 것이 사치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인식을 받았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단순한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수요를 받쳐줄 자국민의 재정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나는 언제나 사랑을 낭만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서아시아에서 마주한 사랑은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난 여성이 들려준 프러포즈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한 남성은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다가와 본인 재력과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 오면 너는 두 번째 아내가 될 거고, 나는 얼마를 벌고 있으니 너는 얼마를 받게 될 거야." 이후에 여성에게 물었다. "너는 얼마면 나한테 올 거야?" 그의 프러포즈는 감정의 고백이 아닌, 경제적 능력과 신앙적 조건을 우선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모든 이의 사랑을 단정 짓는 게 아니지만, 내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들은 이야기는 대체로 그러했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은 남성이 최대 4명까지 아내 둘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동시에 남성이 아내의 경제적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종교와 관습은 자연스레 서아시아 사람들 삶에 녹아들었고, 사랑의 형태에도 스며들고 있었다. 남성은 아내의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책임지고 있었고, 사랑을 감정보다 책임과 의무로 대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자라오며 사랑은 마음을 주고받는 감정적 교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종교와 관습이 묻어난 사랑은 달랐다. 사랑이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었다. 사랑은 사회와 문화, 종교적 맥락에서 다른 형태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서아시아 여행을 통해 낭만적 해석에서 벗어나 존경 와 전통이 빚어낸 사랑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건국 당시부터 팔레스타인과 영토 분쟁이 있었다. 건국에 반대한 아랍 국가들과의 1차 중동전쟁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진 갈등은 단순히 정치적 불화가 아니었다. 예루살렘 성지를 둘러싼 문제, 네 차례 걸쳐 이어진 중동전쟁의 상처, 종교적 차이 등의 역사와 종교가 얽힌 문제였다. 나는 서아시아를 여행하며 일상 대화 속에서도 깊은 갈등의 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만에서 만난 한 가족은 내가 이스라엘로 간다고 하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스라엘은 나쁜 국가야! 가지 않는 게 좋아!" 단호하게 '나쁜 국가'라 규정하며 여행은 말리는 그들 모습에서, 아랍 사회가 지닌 적대감을 느꼈다. 이스라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미소 짓던 이스라엘 친구는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이스라엘은 아랍권 국가보다 더 발전된 국가야. 우리는 지금의 땅을 얻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어." 그의 굳건한 말은 짧지만 긴 역사를 보여주는 듯했다. 서아시아 다른 나라의 모스크에서 빠짐없이 기도소리가 흘러나왔던 반면, 이스라엘은 전혀 다른 분위기가 감돌았다. 세련된 텔아비브 공항을 나와 걷던 거리는 중동 느낌보다 유럽 도시를 닮고 있었다. 나는 서아시아를 여행하며 스치는 대화 속에서 내가 알고 있는 중동 이미지가 단편적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서아시아 여러 국가 중에서 가장 오래 머문 곳은 튀르키예였다. 튀르키예서 29일간 머무르며 자연과 음식, 저렴한 물가를 즐겼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래 머물며 잊지 못한 것은 사람들의 친절과 환대였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은 한류에 열광했고, 곳곳은 블랙핑크와 BTS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류의 물결에서 튀르키예 사람들과 교류했지만, 무엇보다 깊은 교류는 따로 있었다. 역사적으로 이어진 한국과 튀르키예의 관계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티르키예은 약 1만 5천 명의 병력을 파병했다. 전쟁으로 향한 젊은 병사들 중에 돌아오지 못한 튀르키예군 전사자를 위한 묘지도 한국에 남아있다. 희생은 여전히 기억되고 있으며, 여행길에서 만난 이들 마음에도 남아있었다. 한국전쟁에서 시작한 인연은 튀르키예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만들었다. 나는 서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튀르키예를 여행하며 한국인을 향한 수없는 환대와 사랑을 받았고, 그들이 나를 진정 형제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 49일간의 서아시아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사우디아라비아 담맘의 불빛은 어느새 구름 아래로 사라졌고, 비행기 창 밖은 깊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튀르키예 여행을 마치고 유럽으로 향하던 순간은 세계일주 181일째였다. 유럽 여행을 마친 뒤, 다시 서아시아로 넘어와 사우디아라비아 여행까지 마치니, 어느새 세계일주 277일째였다. 나는 지난 277일간의 세계일주의 순간을 곱씹으며 다시 메모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상관계이론은 인간이 타인과 맺는 관계가 심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하는 정신분석학 이론이다. 나는 서아시아를 여행하며 내가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대표적인 경험은 두바이에서였다. 앞서 언급한 '부자나라 마인드' 이야기에서, 부르즈 칼리파에서의 밤이었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전망을 보며 우아한 밤을 맞이할 수 있었지만, 결국 짐을 싸고 나왔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아름다운 경치를 보아도, 그것을 혼자서 누린다면 내겐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중한 이와 공유하며 함께해야지 비로소 의미를 갖는 사람이었다. 초호화 호텔에 홀로 있는 것보다 낙후되고 소박한 공간이어도 소중한 이와 함께 온기를 나눌 수 있었다. 좋은 경험도 나누어야 비로소 가치를 가졌다. 혼자만의 경험은 기억에서 바래 되기 쉽지만, 누군가와 함께한 기억은 역사로 남았다. 상대와 나눈 시간은 의미를 입고 힘이 생겼다. 그 힘은 언제든 불러와서 나의 동력이 되는 것이었다.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로 향하면서 운전기사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불과 몇 시간 전에는 서로의 존재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지금 집으로 향하며 가는 중에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의 삶을 공유하면서 다른 관계가 되었지. 이게 인생이야. 서로가 함께 보낸 시간과 추억들이 우리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인생을 다르게 만들지." 서아시아의 고급스러운 서비스와 생활을 경험하며,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서아시아 여행 전까지 쭉 홀로 이동하며 현지 친구들을 만나는 방식으로 여행했다. 그러던 중, 대학 인연과 튀르키예를 함께 여행했다. 혼자 이동할 때 느끼지 못한 기쁨은 홀로 여행과 또 다른 차원이었다. 두 명이라 더 안전했고, 비용을 절감하는 현실적인 이점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여행하며 상대를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산악부에서 만난 주장 언니와의 여행이 그랬다. 우리는 12일 동안 튀르키예 지중해 도시를 여행했다. 늘 강하게 보였던 언니에게도 피곤해 곤히 잠든 모습이 있었고, 모두가 힘든 순간에도 꿋꿋이 암벽을 오르는 언니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소심함과 연약한 눈물이 있었다. 여행에서 나는 언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고, 우리는 여행 전과 전혀 다른 관계가 되었다. 마지막 날 함께 케밥을 먹으며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함께 여행하고 나면, 여행 이전보다 그 사람이 가까운 존재로 느껴져. 다시 말해, 여행을 통해 내 사람을 찾게 되는 거지. 내게 소중한 존재가 생겼구나, 확신하는 그 순간. 여행은 그 순간을 만들어주는 거야." 언니의 납작한 빵에 눈물 자국이 드러났다.
지난 49일간의 여정이 꿈처럼 피어올랐다. 공항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바라본 모스크가 떠올랐다. 초록빛의 돔 주위로 코란을 외는 중저음의 기도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처음에 낯설게 느낀 무슬림 사원과 사막 도시의 무더위가 곧 그리워질 것 같아 마음이 아릿했다. 대추야자의 달콤함과 계피향 감도는 중동식 디저트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나는 기도 소리에 맞춰 두 손을 합장했다. 서아시아와 마지막 인사를 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지연된 비행기에 탑승 수속이 시작되고, 나는 케냐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낯설지만 포근하게 나를 품어든 이들, 서아시아의 따뜻한 추억을 품으며 나는 메모장을 덮었다. 잠시 눈을 붙였다 뜨니, 창 밖으로 아프리카 케냐의 맑은 하늘이 펼쳐있었다. 새로운 대륙에서의 여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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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신예진(데이지)은 스스로 돈 벌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었습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서도 관련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