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을 마치며

21살 45개국 세계여행가 데이지 여행 일기장 : 유럽

by 여행가 데이지

세계일주 180일 차, 아시아 대륙 여행의 끝자락에서 튀르키예 유럽지역에 들어섰다.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의 교차점으로 유람선으로 한 시간 안에 두 대륙을 넘나들 수 있다. 지난 6개월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대륙인 유럽으로 향했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를 타고 불가리아로 넘어오니 고요하고 평화로운 들판이 펼쳐졌다. 평온한 언덕 너머로 저녁 햇살이 옅은 주홍빛을 내고 있었다. 아무런 이미지조차 없던 발칸반도 국가를 시작으로, 로망 가득한 서유럽까지, 유럽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데이지 세계일주 유럽 일정>

유럽 여행 (94일)

불가리아(10일), 세르비아(2일), 크로아티아(4일), 헝가리(3일), 슬로바키아(2일), 오스트리아(3일), 독일(7일), 체코(4일), 덴마크 (3일), 네덜란드(3일), 벨기에(2일), 프랑스(10일), 스페인(38일, 순례길(28일)+여행(10일), 포르투갈(5일), 이탈리아(9일)


유럽 이동 경로 (travellerspoint)

8월 26일 - 9월 4일 - 불가리아: 드라가노프치, 셀리베보, 소피아

9월 4일 - 9월 5일 -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9월 6일 - 9월 9일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라스토케

9월 9일 - 9월 11일 - 헝가리: 부다페스트

9월 11일 - 9월 12일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9월 12일 - 9월 14일 - 오스트리아: 빈

9월 15일 - 9월 19일 - 독일: 뮌헨, 아이히슈테트, 뉘른베르크, 베를린

9월 19일 - 9월 22일 - 체코: 프라하

9월 22일 - 9월 23일 - 독일: 뮌헨, 아이히슈테트, 뉘른베르크, 베를린

9월 24일 - 9월 26일 - 덴마크: 코펜하겐

9월 27일 - 9월 29일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9월 29일 - 9월 30일 - 벨기에: 브뤼셀

10월 1일 - 10월 10일 - 프랑스: 파리, 메스, 보르도, 바욘, 생장피에드포르

10월 10일 - 11월 6일 - 스페인(1): 론세스바예스, 라라소아냐, 팜플로나, 푸엔테 라 레이나, 에스테야, 로그로뇨, 나헤라, 그라뇬,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부르고스, 산 안톤 수도원, 프롬리스타, 칼사디야, 엘 부르고 라네로,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레온,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 라바날 델 카미노, 폰페라다, 발투이예 데 아리바, 파도르넬로, 사리아, 포르토마린, 멜리데, 산타 이레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11월 6일 - 11월 10일 - 포르투갈: 포르투, 리스본

11월 10일 - 11월 19일 - 스페인(2): 세비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11월 19일 - 11월 27일 - 이탈리아/바티칸: 로마, 피렌체, 피사, 밀라노



불가리아의 고즈넉한 여유를 음미하며 시작한 유럽 여행, 나는 94일 동안 유럽 16개국을 여행했다. 유럽의 마지막 국가인 이탈리아 로마의 아침은 차가운 공기로 입김이 나왔다. 공항으로 가는 기차에 오르니, 지난 3개월의 여행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스페인 순례길을 통해 현재를 사는 법을 깨닫고, 덴마크를 여행하며 동화 속에 다녀온 기분을 느꼈다. 독일에서 개방된 성문화로 나체 사우나의 낯섦을 경험하고, 낭만으로 가득했던 프랑스 파리를 걸었다. 네덜란드에서 부모뻘되는 남자에게서 소년같이 수줍은 고백을 받고, 불가리아 유기견 보호소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봉사의 보람을 느꼈다. 그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사랑과 나눔의 의미를 다시 새겼다. 지난 94일간 유럽 여행을 정리하고, 새로운 대륙으로 향할 시간. 새로운 여정을 앞두고, 지난 유럽에서 느낀 점을 기록하기 위해 메모장을 꺼냈다.





1. 환경 및 동물보호에 앞장서는 문화


나는 유럽에 오기 전, 서아시아를 여행했다. 이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등 국가별로 문화와 정서가 달랐지만, 대화 주제는 대체로 비슷했고, 삶의 양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튀르키예에서 불가리아로 넘어오자마자 다름을 느꼈다. 처음 만난 이들이 내게 건넨 질문은 '비건'과 '환경 문제'였다. 서아시아를 여행하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다.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유럽은 다른 대륙에 비해 채식주의자 비율이 높고, 정치 사회적으로도 환경 의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반면 이전에 여행한 아시아 대륙은 환경 의제 이전에 정치적 불안정이나 경제 발전 같은 현안이 우선 논의되었다. 환경 문제가 담론 중심에 오를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했어." 유럽에서 만난 현지인 절반 이상은 채식을 하고 있었으며, 어느 도시를 가든 비건 카페나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대화에서 환경 담론으로 주제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들 삶 속에는 환경문제가 직접적으로 연관된 중요 의제였으며, 추상적 개념보다 구체적 실천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아 있었다. 미래세대를 위한 세계적 의제를 이끄는 유럽의 목소리를 체감하는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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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방된 성문화


유럽 여행을 하며 한국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광고를 보곤 했다. 노브라를 실천하자며 노출된 복장의 여성이나, 바지 지퍼가 열린 채로 관능적인 표정을 짓는 고양이처럼 파격적인 장면이었다. 나아가 성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성적 정체성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광고와 영화에서도 성적 표현은 자유롭게 등장하며, 예술의 한 방식으로도 표현했다. 음란물의 인식보다 자연스러움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독일의 나체 문화를 체험하며 개방된 성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독일은 나체 사우나가 보편적인 문화이며 누드를 성적 대상이 아닌 위생과 건강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겼다. 옷을 입으면 오히려 비위생적이라 여기는 시선이 있으며 몸 자체에 집중했다. 나 역시 독일 베를린에서 나체사우나를 경험했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자유를 느꼈다. 뜨거운 공기를 뚫고 찬물에 입수하며 전율을 느꼈고, 옷깃의 장벽 없이 살갗에 곧바로 흐르는 땀은 수증기와 함께 춤을 추는 듯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친구와 함께 속옷차림으로 뛰어든 겨울 바다는 자유로움의 극치였다. 호숫가를 따라 길을 걸으면 11월 초겨울 날씨에도 나체로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유럽인들은 몸을 가리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로 바아 들였다. 나는 유럽 여행을 통해 자유와 개인을 존중하는 유럽 문화를 짙게 느꼈다.

개방된 성문화는 결혼과 사랑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도 드러났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난 친구는 본인을 폴리아몰리라고 소개했다. 폴리아 몰리는 여러 명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는 말했다. "작년 최고의 생일선물은 내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걸 영상통화로 보여준 거였어" 하루는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친구가 말했다. "나 지금 너무 배고픈데, 조금 더 참고 싶어. 이 주먹밥을 먹을 때의 오르가슴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야" 식욕과 성욕을 겹쳐 비유하는 그의 신선한 표현에 웃음이 나왔다. 식욕의 카타르시즘의 순간을 성욕의 오르가슴으로 비유한 표현은 유럽 개방된 성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는 제도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프랑스에는 팍스(PACS)라는 법적 제도가 있다. 팍스는 결혼을 원치 않지만, 커플이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결혼이 유일한 법적 제도인 한국과 달리, 유럽 일부 국가는 동반자의 형태가 다양하게 존재했다. 단순 성적 자유에서 나아가 법적, 사회적 관계를 맺는 방식도 폭넓게 자리했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만난 친구도 여자친구와 결혼하지 않고 쌍둥이 자녀를 두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랑을 증명하는 게 아니잖아. 서로 믿음이 있으면 굳이 결혼이 필요하지 않지." 그의 말처럼, 사랑은 제도에 구애받지 않고 충분히 가능했다. 나는 유럽 여행을 통해 개방된 성문화를 경험하는 것에 나아가 사랑의 의미를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3. 유럽도 개별 국가들의 집합일 뿐이다


유럽 대륙을 떠올리면 대게 서유럽 이미지와 함께 유럽 연합 전체를 하나의 국가단위로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 여행 전까지 서유럽 관광 대국이 보여주는 모습이 곧 유럽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유럽에는 40개국 이상의 나라가 존재하고, 그 속의 차이는 선명했다. 지리적으로 같은 유럽 대륙에 속하지만, 유럽 연합(EU)에 가입하지 않는 국가도 적지 않았다. 2025년 기준으로 노르웨이, 스위스부터 최근 브렉시트로 유럽연합에 탈퇴한 영국 등 18개국이다. 크로아티아는 2013년 유럽 연합에 정식 가입했지만, 여전히 자국 화폐와 유로화를 동시에 사용했다. 물론, 문화와 기후가 다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흥미로웠던 점은 유럽인 본인도 서로가 다르다는 인식을 강하게 가진다는 사실이었다. 불가리아에서 만난 독일인 친구의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불가리아로 휴가 간다고 하니, 동유럽은 여자 혼자 여행하기 위험하고, 심심한 국가라며 걱정했어." 같은 유럽인들 사이에서도 기피나 편견이 있었고, 경계 긋는 태도가 분명했다. 세르비아에서 만난 현지 친구는 자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르비아는, 사람들이 무서워. 세르비아, 불가리아, 보즈니아 사람들은 공격적이거든. 동유럽 국가는 유럽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들이야. 여기서는 돈이 있으면 졸업장, 허가증 등 모든 걸 살 수 있어." 각 국가마다 느낀 분위기도 사람들의 성향도 완전히 달랐다. 같은 나라 사람들도 저마다 성격이 다른 기에 다른 국가면 차이가 당연하겠지만. 유럽 여행 중 직접 발로 다니며 깊이 체감하는 건 다른 깨달음이었다. 덕분에 지리시간에 그토록 외워지지 않던 유럽 국가도 노력 없이 외울 수 있었다.


4. 영화 속에 온듯한 거리


앞서 말했듯이 유럽 각 국가마다 뚜렷한 특색이 있었지만, 동일하게 갖고 있는 특성이 있었다. 마치 영화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구가 가진 자연적 아름다움과 다른 의미로, 유럽은 생활양식 곳곳에서 영화 같은 풍경이 묻어났다 르네상스 양식의 발코니와 고딕 양식의 성당, 울퉁불퉁한 자갈길까지 거리의 작은 요소들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이끌었다. 이름 모를 시골 마을의 낡고 오래된 느낌마저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이었다. 밤이 찾아오면 짙어지는 주홍빛 가로등, 공원에 모여 손잡고 춤추는 사람들의 여유로 풍경은 더욱 아름답게 연출되었다. 헤드셋 너머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걸으면,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어떤 국가를 가더라도 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걷는 순간을 사랑했지만, 유럽은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이곳은 매 순간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의 연속이었다.


5.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


유럽은 오래도록 계승된 유산과 발전한 제도 위에서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해 왔다. 예술가들은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와 피렌체, 오스트리아 빈 등지에 모여 거침없이 예술 문화를 펼쳐냈다. 박물관, 미술관과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접하며 유럽 여행을 풍부히 채워갔다. 바로크 시대에서도 자기를 보여주려는 의지로 끝없는 초상화 작품이 걸린 박물관을 보며 시대를 불문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를 떠올렸다. 미술관에서 온전하게 꽉 채워지지 못한 작품을 보며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수없이 짙게 덧칠된 인상주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조심스러운 붓놀림에 눈물을 흘렸다. 유서 깊은 유럽 예술을 느끼니 거리를 걷는 순간조차 음악 위를 걷는 듯했다. 길가에 놓인 작은 화분조차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 특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예술적 자유로움과 다양한 민족의 다양성이 어우러진 도시였다. 거리 곳곳의 무료 갤러리와 LP가게에서는 바이닐 레코드 특유의 스크래치 노이즈가 들려왔다. 거리를 걸으며 네덜란드 친구에게 물었다. "삶에서 음악과 미술 둘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뭘 고를 거야?" 음악은 접근성이 높고, 누군가 쉽게 접하지만, 미술은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당연히 음악을 선택할 거라 생각했더. 그러나, 그는 미술을 답했다. 이내 그의 답을 이해했다. 네덜란드는 예술의 문턱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교사인 친구조차 본인 미술 작품이 있었고, 어려서부터 미술과 음악에 자연스레 노출되어 자라왔었다. 누구나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갖고 있던 것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만난 친구도 삶을 예술로 채워가고 있었다. "나는 단테를 좋아해. 당시, 시인은 젊은 여자에게 구애하는 시를 쓰느라 바쁜데, 단테는 시를 통해 늙은 아내에 대한 사랑을 녹여냈거든." 나는 삶에서 예술을 녹여낸 이들을 보며 문화를 알고 자기만의 예술을 갖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르네상스가 시작된 피렌체 거리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예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는 말했다. "단테는 자신의 책 마지막 문구에 이렇게 말했어. '사랑은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인다.' 실제로, 갈릴레이가 등장하기 전에 단테는 이미 태양을 중심으로 별이 움직인다고 생각한 거지. 그 태양을 움직이는 건 사랑인 것까지 말이야." 예술은 우리에게 참된 진리를 비추었고, 순수에 대한 갈망의 통로였다. 유럽 여행은 지나치게 폭력적인 작품을 통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을 아름답다고 말할 용기를 주었어요.'


6. 여유가 배어있는 일상


속도와 효율을 우선시하는 한국 문화에 길들여진 나는 유럽여행을 하며 균형 있게 중심을 잡아가는 법을 익혔다. 테라스에 앉아 노을을 보며 오후 시간을 보내는 카페와 광장 문화, 낮잠을 중요시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생활태도 속에서 나는 이들이 삶을 즐기는 방법을 배웠다. 점심 이후 낮잠이나 휴식을 취하는 스페인 시에스타, 아늑한 분위기에서 따뜻한 교류를 의미하는 덴마크의 휘게처럼 유럽인 일상에 스며든 관습은 새로운 생활 철학으로 다가왔고, 여행을 하며 내 삶에 적용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일상 속의 가벼운 음주 문화도 이들의 여유로움을 보여주었다. 차 문화가 발달한 아시아를 여행할 당시, 현지 친구집에 가면 차를 권하는 일이 많았ㄷ면, 유럽은 술 한잔을 건네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흔했다. 이들은 종종 식사의 일부로 가볍게 와인과 맥주가 자연스레 곁들였다. 이는 취하기 위해서가 아닌 맛과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기분 좋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음주 문화는 이들의 여유로운 삶을 상징하는 듯했다. 빡빡한 일정에서 알람을 맞추다 잠드는 밤이 연속이전 나에게 유럽은 잠시 쉬어가는 일상이 얼마나 강력한지 들려줬다.


7. 상대적으로 낮은 호의


나는 아시아 대륙을 여행하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호의를 받았다. 요청하지 않아도 다가와 도와주려는 동아시아 사람들, 타인의 행복을 본인의 행복으로 여기는 동남아시아 사람들, 관계와 공동체를 중시하는 남아시아의 환대 문화, 낯선 손님을 극진히 대하는 서아시아까지. 180일간 아시아 대륙을 받으며 나는 호의를 받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그런 내가 유럽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받은 첫인상은 차가움이었다. 가령 첫 국가였던 불가리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세르비아로 가는 버스를 위해 출발 시간 전에 미리 정류장에 왔지만, 버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급하게 사무실에 들어가 표를 물었지만, 직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정류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승객,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시아였다면 모르는 사람이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상황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도움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늘 받아온 호의에 익숙했던 내가 유럽에 왔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여행 내내 비슷한 심정을 느꼈다. 유럽 사람들은 다른 대륙에 비해 상대적으로 타인 일에 관여하지 않았고, 본인 일과 무관하면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IMG-20230914-WA0014.jpg 오스트리아 빈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 보며


메모장을 덮으며 기차에서 내렸다.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기다리며 오랜만에 엄마와 통화했다. 엄마는 보름달이 뜨면 나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무사히 예진이가 세계여행을 하도록 해주세요.'라고 기도해. 네가 처음에 여행 간다고 했을 때, 물론 걱정했어. 그런데, 지금은 뭐든지 응원해주고 싶어. 스스로만 만들 수 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니까." 통화 너머로 출근하는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내 손을 잡던 아빠의 굳은살이 떠올랐다. 오늘도 단단해지는 아빠의 굳은살을 상상하니 울컥했다. 몰래 코를 훌쩍이며 통화를 마친 뒤, 멍하니 공항 터미널 창을 바라봤다. 유리에 부딪혀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흘렀다. 낯설었던 서아시아를 뒤로하고, 편안하게 느껴진 유럽 여행을 시작한 지도 생생한데, 어느덧 올해도 12월 한 달만 남았다. 나는 지난 275일간의 세계일주를 돌아보며 다시 메모장을 열었다.


1.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


유럽 여행이 아시아 여행과 확연히 달랐던 점은, 내게 익숙하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가령 한낮에 울려 퍼지는 독일의 종소리는 내게 곧바로 스며들었지만, 서아시아 모스크에서 기도소리가 울리는 건 낯설게 다가왔었다. 스피커를 통해 메아리처럼 퍼지는 낭송과 종소리는 본질적으로 종교의 울림이라는 동일 개념이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였다. 인도 힌두사원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코끼리 모양 신상 앞에 설치된 사창살을 보며 알 수 없는 거북감을 느꼈다. 철장 주위에 가득한 쓰레기도 이유였지만, 굳게 닫힌 쇠창살 자체가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스페인 성당에서 본 창살은 아무렇지 않았다. 성당의 창살도 굳건히 닫혀있었는데 말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서구가 만든 문화에 노출되어 유럽 양식의 문화가 이미 익숙했었다. 나를 지배해 온 문화와 정서가 무엇인지 지난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2. 언제나 얻어지는 감사


나에 대해 돌아보고, 여행을 돼 시갤수록 도달하는 결론은 결국 감사함이었다. 나는 여행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타인과 세상을 통해 나를 알아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매일 달라지는 천장 아래에서 오늘도 숨 쉴 수 있음에, 타인과 온정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했다. 살아있다는 순간의 감사함은 여행의 사소한 찰나에도 스며있었다. 예를 들어 밀라노에서 보낸 새벽이 그러했다. 밀라노 지하철은 6시부터 운행하지만, 내가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였다. "택시를 타라"는 친구를 뒤로하고, 쌀쌀한 11월의 밀라노 새벽 공기를 견디며 지하철을 기다렸다. 지하철 주위를 서성이며 몸을 녹일 곳은 찾다가 문득 생각했다. '참 소중하다 이 순간.' 코를 훌쩍이며, 와이파이를 찾아 맥도널드 앞을 배회하는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인중으로 흘러나오는 콧물조차 소중했다. 하루는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을 보고 맥도널드에 갔다. 1.5유로 버거를 먹을지, 1.8 버거를 먹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주문 키스트에 문득 내 얼굴이 비추었다. 고작 0.3유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소중했다. 스스로 돈 벌어 0.3유로를 아껴가는 여행, 젊은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여행이었다. 훗날 돌아보며 이 순간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기분이었다. 나를 더 크게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더 넓은 세상을 품을 수 있도록 해주는 능력마링다. 텅 빈 지갑이지만, 사무치게 행복한 청춘이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던 이유는 결국 여행이 주는 감사함 덕분이었다.


3.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


매번 홀로 여행하던 나는 서아시아에서 친구와 여행했다. 그 속에서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파리 개선문에 홀로 올라 야경을 볼 때, 에펠탑은 아름답게 빛났지만, 내 마음은 덤덤했다. 분명히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졌지만, 아름답다는 객관적 사실로밖에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와 함께 야경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일한 풍경과 사실이지만, 다른 감정이었다. 나는 소중한 이와 나누어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 사람이었다. 특히 교환학생을 온 친구와 함께 보낸 덴마크는 그 사실을 더욱 느끼는 여행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물가에 북유럽을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친구 덕분에 덴마크를 찾았다. 우린 그저 자전거를 타고 운하를 달리고, 공원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은 것도, 명품쇼핑으로 소비욕구를 채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늘을 보며 이야기 나누고, 바람을 느끼며 감정을 공유했다. 실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파리 야경보다도 큰 황홀감을 느낀 경험이 있었다. 함께했다는 이유로 순간이 더없이 가치 있었다.

특히 유럽에서 친오빠와 함께한 여행이 특별했다. 매번 툴툴대며 싸우던 오빠는 귀찮고,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여행을 하며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배울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며 우린 처음으로 서로 속마음을 나누었고, 나는 오빠를 전혀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깨닫고, 오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오빠는 표현력이 풍부했고, 나와 똑같이 웃고, 행복해하고, 가족들의 응원을 받고 싶은 소년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같은 지붕 아래 산다고 해서 서로를 아는 건 아니었다. 여행은 서로를 알아가는 선물이었다. 밀라노에서 마지막으로 리소토를 먹으며 나는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가 그랬잖아, 나는 가난한 여행하기 싫다고. 물론 여행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겠지, 누군가는 호화롭게 쇼핑하고 돈 펑펑 쓰면서 다닐 수 있고, 누군가는 나처럼 직접 현지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체험할 수도 있지. 그런 것처럼, 가난한 여행이란 존재하지 않아. 그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하는 거뿐이야. 모든 건 다 돈으로 가치가 정해지는 게 아니야. 관광을 함에 있어서 아끼고 싶은 사람들은 쓰고, 아끼기 싫은 사람은 쓰는 거지. 아끼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또 아끼면서 써나가는 거고." 오빠는 리소토를 한입 오물거리고는 답했다. "나도 여행을 시작할 때, 네가 말한 ‘관광’을 생각했어. 그런데 너랑 여행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 네가 말한 여행이 나의 여행이 된 거야. 나는 너의 여행이 ‘모험’이라고 생각해. 앞으로도 계속 너의 모험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린 지난 여행을 돌아보며 여행에서 배운 점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화두를 던진 내 말이 끝나자마자 오빠는 말했다. "해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낀 열린 마음을 더 알게 되어 기뻐. 세상엔 맛있는 게 정말 많다는 것도 깨달았지(웃음)" "그렇지, 좋은 사람, 이상한 사람도 많지. 이 세상엔 정말 경험할 다양한 것들이 많더라. 그리고, 여행이 사실 별게 아니지 않아? 딱히 돈이 많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언어를 꼭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도전하는 마음이 필요한 거지. 물론 언어가 아쉬울 수 있지만, 아쉬움을 느끼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니까." "한국으로 돌아가면, 우선 밖에 있지 않을 거야. 집이 comfort zone이라고 생각하거든. 나오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다가 멈췄던 것을 사소한 것부터 바꾸어 나갈 생각이야." "좋은 생각이야!"

여행 초반, 힘들다고 불평하던 모습이던 오빠는 여행으로 용기를 얻었다. 나는 여행을 통해 오빠란 사람을 알게 되어 감사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기회를 만들어준 오빠가 참 고마웠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오빠에게 편지를 작성했다.


오빠 안녕,
우리가 마냥 완전히 다른 생각, 태도의 사람인 줄 알았는데, 또 어떤 면은 비슷하고, 무엇보다도 웃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어. 역시 가족인가 봐.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순례길, 인증서를 발급받던 순간, 리스본 광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던 순간, 바르셀로나 벙커에서 함께 노래를 듣던 순간, 이탈리아 거리를 함께 걷던 순간. 이번 여행이 오빠에게 큰 변화를 불러오지 않았더라도, 오빠는 비행기 타기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걸 잊지 마. 오빠가 지금 가진 젊음을, 시간을, 능력을, 생각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길. 여행 내내 오빠를 매정하게 대했지만, 오빠는 내게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란 걸. 오빠 안의 있는 가능성을 나는 믿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오빠는 잘 해낼 거야.


편지에 대한 생각을 끝으로,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탑승 계단을 지나며 지난 3개월간의 유렵여행을 다시 떠올렸다. 유럽여행에서 나는 누구보다 열렬하게 사랑에 빠졌고, 가슴 아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가족의 몰랐던 모습을 보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 속에서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고, 교류하는 법을 배웠다. 이번이 마지막 유럽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21살 배낭여행자 신예진이 마주한 3개월간의 유럽은 마지막이 분명했다. 바게트에 초콜릿을 끼워 하루를 버티던 날도, 0.3유로를 아끼고자 몇 분을 고민하는 순간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터덜터덜 걷던 날들도 모두 찬란하게 빛났다. 비행기에 오르니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구름 지평선 너머의 노란빛으로 번지는 노을이 이집트 사막에서 본 풍경 같았다. 나는 메모장을 덮으며 비행기 창 너머로 펼쳐진 사막을 바라봤다. 기내에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울렸다. "아프리카 케냐로 향하는 이 비행기는..."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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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신예진(데이지)은 스스로 돈 벌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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