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이인증

by 연화

입 크기에 비해 큰 혀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 미국 북부의 겨울 속에 태어나 사랑받으며 자랐다. 저 멀리 한국에서부터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달려왔다. 첫돌을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 이렇게 다섯 가족이 함께 기념했다. 할머니는 첫돌을 위해 떡케이크를 쪘다. 아이는 돌잡이로 달러 지폐와 색연필을 집었다. 부모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인화했다. 아이의 모습을 평생 간직하고 싶어서였으리라. 아이의 부모는 출장 기간이 끝나 아이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동화 같은 날이 이어졌다. 아이의 꿈속에서는 악당이 아빠를 해치려 했고, 그러면 아이가 나서서 막았다. 그러느라 낑낑대며 땀 흘리는 아이 옆에는 아빠가 있었다. 아이는 TV에서 본 마법의 반죽을 만들고 싶어 진짜 재료가 뭔지도 알지 못한 채 엄마의 화장품과 향수로 마법의 반죽을 만들었고, 종이학들이 집에서 도망칠 수 있게 신문지를 접어 날렸다. 그러면 엄마한테 걸려 혼나곤 했다. 그럼에도 집에는 웃음이 넘쳤다. 아이에겐 곧 동생도 생겼고, 그 동생과 투닥거리기도 했지만 뒤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놀이방에서 인형으로 연극을 하며 놀았다.


밤이었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을 보고 부모는 안방으로 갔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들이 들을까 조용히 소곤거렸다. 크리스마스에 ‘어떤 선물을 줄까?’ 고민하는 것처럼. 엄마, 아빠는 뭘 저렇게 서로 속삭이는 거지? 아이가 일어나 그들의 말을 엿들었다. 그런데 그게 산타할아버지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었을까? TV 부서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났다. 그날을 시작으로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은 늘어났다. 엄마는 매일 울었다. 결국 둘은 갈라섰고, 우리가 헤어진 날은 아빠의 생일이었다. 엄마, 아이, 동생은 동생이 좋아하는 초코케이크에 초를 꽂고 아빠를 기다렸지만, 아빠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다가 짐을 다 쌌으면 내려오라는 연락을 했을 뿐이었다. 그 연락을 받고 우리는 영영 헤어져야 했다. 아이와 동생은 할머니 집에 가게 됐다. 거기에는 술에 취해 매일 토하는 할아버지와 아이와 기 싸움 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아이가 한 마디 하면 맞받아치는 할머니. 그게 말이 안 되어도, 할머니는 꼭 아이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래서 아이는 생각했다. 내 혀가 커서 그래. 혀가 무거워서 무게를 덜어내려고 자꾸 말하게 돼. 그래서 할머니와 싸우는 거야. 입을 닫으려면 혀가 작아야 할 텐데. 아이는 무서워 아빠에게 찾아갔다. 아이는 악몽에서 깨어나 자신을 달래주던 아빠를 생각했는데, 아빠는 오히려 아이를 다그쳤다. 아이는 점점 입을 다물었다.


아이는 혼란스러운 날이 많아졌다. 상상도 못 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대꾸했다는 이유로 벽에 머리를 쿵쿵 소리 나게 밀쳐지는 일도, 단소를 할아버지 의자에 갖다 놓았다는 이유로 내복만 입고 추운 겨울 내쫓기는 일도 일어났다. 아이의 잠은 점점 길어졌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긴 악몽을 꾸고 있는 거야, 아주 긴긴 악몽을. 그래서 다시 잠들고, 일어나면 그대로인 현실에 낙담하면서 다시 자고, 다시 자고, 다시, 다시. 그래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도 여전히 없었고, 아이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혀는 점점 짧아졌고, 마침내 입을 닫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할머니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아이는 밖을 돌아다녔다. 짧아진 혀로 밖에서는 애정을 구걸하고 집안에서 소모했다. 밖에 머무는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집에 가면 아무도 아이를 바라보지 않았으니까. 할머니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이젠 보기도 싫은지 사진첩을 전부 버렸다. 아이는 속상했지만,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시 잠에 들었다. 아이는 다른 아이의 가정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부모에게 안겨드는 날이 잦아졌다. 그리고 뻐꾸기 새끼처럼 아이는 남의 자리를 탐냈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알 때면 괜히 그 부모의 자식에게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사랑이란 것은 집안에서 채워지지 않으면 받아도 받아도 허기지는 것이었다.


아이는 미국에서 같이 온 강아지 인형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문득 발이 땅에 붙었음을 느꼈다. 그건 내가 내 몸으로 느낀 나의 감각이었고, 더 이상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더 이상 강아지 인형도 없었다. 그 인형은 어린 시절에 버려졌으므로. 모든 건 다 내 상상 속에서 펼쳐진 하나의 연극이었다. 혀가 크면 무호흡증이 생기기 쉽다고 한다. 혀에 기도가 막히는 탓이다. 아이는 무호흡증 탓에 긴긴 악몽을 꾼 것이리라. 악몽에서 깨어나면, 입에 사탕을 물려줄 사람이 곁에 있어야 했다. 그건 악몽이었어, 하고 다독여줄 사람이. 아빠는 어린 시절 악몽을 꾸는 아이 곁을 지켜줬지만 이젠 곁에 있지 않았다. 내 곁에는 그럴 사람이 없었다.


나는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다. 내가 깨어나면 다시 10살인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독한 악몽을 꿨다며 엄마에게 안길 수 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깨어나는 것도, 안 좋은 꿈이었다고 토닥이고 달래줄 사람도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꿈인 것을 알지 못하면 달래주는 사람도 결국 꿈속에 갇혀있을 테니까. 그러니 꿈이었다고 깨닫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영영 꿈속에 갇혀 살 테다. 나이를 먹어도, 자기 안에 있는 어린 나를 보듬어주지 못해서 여전히 어린 애로 살고 있는 나처럼 말이다.


입 크기에 비해 큰 혀를 가진 내가 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으면서도 입을 다물 수가 없어 싸우고 다니는 내가 있다. 사람들과 싸울 때면 여전히 모든 게 악몽이었다고 믿고 싶은 나는, 이젠 꿈에서 깨어나려 한다. 그러기 위해 강아지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내 감각이 온전한 나의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게끔, 손끝에 신경을 집중해서 강아지 인형의 머리를 느껴본다. 그러면 붕 떠 있던 내 몸이 다시 땅에 달라붙는다. 여기가 내가 있던 곳이야. 여기가 현실이야. 모든 현실은 내가 마주해야 하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스트레스를 회피하고 싶어서 나를 꿈속에 두려 했던 것을 안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최선이었다는 것도. 그럼에도 현실과 나 사이에 벽을 두면 나는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됐었다. 그래서 이젠, 현실에 발을 딛고 싶다. 사람들은 껍데기 없이 나를 맛보고 만지는데, 나는 껍데기 속에서 그들을 대하고 있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살고 싶다.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강아지 인형의 머리를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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