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레시피>, 고민하는 그림책 읽기
갱년기에 접어든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딸이 어쩔 땐 미워요.(50대 여성)
그림책을 읽으면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엄격한 엄마로 돌아오네요. (30대 여성)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혼자 계신 엄마가 많이 힘들어 하네요. (40대 여성)
24시간 동안 매일 붙어다니니 부부 간에 불화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요. (70대 여성)
어느 날 갑자기 노인이 된 것 같아서 오랫동안 적응을 못했어요. (60대 여성)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서 사는 내가 싫어요.(20대 여성)
부부끼리 읽으면서 삶의 여유를 찾아줄 수 있는 그림책 어디 없을까요? (60대 남성)
강의실에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세대를 한날 한시에 볼 수 있는 강연이 있을까?
왠지 모를 승리감도 잠시뿐.
어떻게 이 다양한 학생들을 이끌고 이야기를 이끌어갈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림책 레시피>라는 이름의 강의는 꽤 오래 전부터 준비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한 보따리씩 빌려와서 무작정 읽고 정리했습니다. "그림책이 가족을 구원할 것이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누군가의 행복, 특히 한 가족의 행복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강의 중 대화 나누는 모습. <제랄다와 거인>을 읽고 있었죠.
책과 문학이 치유의 효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책들'이라는 복수형이 되었을 때 어떤 효과를 내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책이 '책들'이 되는 순간 굉장히 많은 시간차가 극복됩니다. 20대부터 70대가 이 책 아니면 저 책에 매달려 위로받을 수 있죠. 책은 읽은 사람의 고민을 보듬어주지만 책들은 고민의 전체를 펼쳐 보입니다. 단순히 알고 있던 문제나 고민이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한 책이 고민의 어떤 부분을 담당하고, 다른 책이 고민의 또 다른 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강의에서는 4권의 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4권의 책이 어울리는 경우의 수만큼 많은 의미의 농축이 수강생들의 마음을 샤워시켜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림책 레시피>의 무게중심은 역시 '고민들'입니다. 한 사람이 하는 고민과 여러 사람이 나누는 고민은 다릅니다. 나의 고민을 누군가도 하고 있다는 안도감, 내 고민의 힌트를 누군가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의외의 소득. 10년이나 20년 후에 하게 될 고민을 실제 하는 인생 선배를 만나 느끼고, 20년 전에 했던 고민들을 하는 인생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인생선배의 복잡미묘한 감정. 패자부활전이 가능하다면 이 후배를 통해 이룰 수 있겠죠?
강조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그림책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민들과 그림책들, 사람들이 만난 순간의 기록입니다.
다양한 재료들을 넣고 끓인 인생찌개입니다.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봅시다. 그림책은 과연 가족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읽는 방법이 멈춰 있었죠. 읽는 과정, 읽고 나서, 표현하기 등 신선한 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바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