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조금 아픕니다

H 엄마에게

by 오승주 작가
초등학교 4학년 우리 아이는 틱이 있어요. 머리를 크게 흔드는 증세가 학기 초에 있는데요. 요즘은 좀 더 심해진 것 같아요. 학기가 한참 지났는데도 멎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선생님도 엄하셔서 고쳐지지 않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머리를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어머니 저도 마음이 아프네요. H처럼 밝은 아이가 내면에 어두움과 불안이 있다니! 저의 초등학교 시절도 밝지는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책이 정말 좋아서 이것저것 다 읽었어요. 반에서 도서반장도 하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전자오락실에 빠지고 공부에 흥미를 잃고 내리 10년을 책 한 줄 안 읽고 보냈어요. 우연히 학교 선생님이 보낸 생활기록표를 보았거든요.


승주는 자기 혼자만 떠들면 되는데 다른 친구까지 방해하니 차라리 전학시키는 게 낫겠어요.


꼭 그 일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람은 어릴 적 경험이 평생 영향을 미치며, 선생님이 어떤 분인가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죠. 친구 복은 있지만 선생님 복은 없는 H와 달리 저는 선생님 복만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후로도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난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엇나가지 않았으니까요. H와 함께 틈나는 대로 읽는 그림책을 들려드릴게요. 집에서 함께 읽으면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


제가 H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책을 읽으며 재밌게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H는 제가 어떤 의도로 이런 그림책을 골랐는지 모릅니다. 이야기는 향기처럼 코를 타고 온몸으로 퍼집니다. 좋은 향기는 몸에 오래 남아서 뇌리에 머무릅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추억, 좋은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되새기고 되새기면서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속의 그늘이 밝아집니다.『얼룩고양이와 할아버지』는 심장병을 앓는 할아버지와 고양이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미미는 교통사고 때문에 곧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느날 미미는 기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미미가 늘 화장실로 사용하는 곳까지 가서 오줌을 누고 있었습니다. 죽어가면서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자존심 강한 미미의 모습에 할아버지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자신도 미미처럼 병에 지면 안 되겠구나 다짐했습니다.


저는 슬픔만이 슬픔을 위로할 수 있고, 아픔만이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릴 적 병약했던 저는 마음까지 쓰라리고 일찍 방황했습니다. 친구들과 못된 짓을 하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도벽도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항상 기어들어갔고 누나가 친구를 소개해도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던 어린이였습니다. 자존심은 무척 강해서 시인의 시 따위는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만으로 시를 쓰니 가작 이상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심장병으로 죽게 된 할아버지와 교통사고로 죽게 된 고양이 미미가 서로 의지하며 건강을 되찾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얼룩고양이와 할아버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요?


저는 책을 읽을 때 시끌벅적 떠들고 과장된 몸짓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선물해야 할 것은 그림책이 아니라 그림책을 읽는 시간이거든요. 그 순간을 재미로 장식할 수 있다면 그림책을 사랑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순간에 몰입하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도 잊어버리는데 저는 그 느낌이 좋습니다. 제 기억이 다 녹아서 아이의 가슴에 스며들었기 때문이죠. 『태어난 아이』는 사노 요코의 철학적인 그림책입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다루지만 아이의 시선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기가 참 좋습니다.


어릴 적에 크게 아팠거나 병이 있었던 아이는 감각이 예민합니다.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눈치가 빠르고 또래 아이들보다 성숙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저도 그랬고 H도 지금 그렇습니다. 사노 요코의 유명한 그림책인 『100만번 산 고양이』처럼 뭔가 무심하고 염세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도 그렇습니다. 이 아이가 왜 태어나지 않은 아이인지 아이들은 궁금해 했습니다. 아픔을 느끼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인지, 아이가 스스로 태어나지 않기로 해서 그런 것인지, 생각만 그렇게 한 것인지 작품을 보면 시원하게 풀리지 않습니다. 다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드디어 태어나기로 결정한 장면과 그 이유가 강조됩니다.


남다른 삶을 사는 사람은 삶에 대해서 보통 사람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의 삶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틱이든 장애든 귀중한 자질이든 보통 아이와 다르다는 것은 질투와 놀림의 대상이 되기 충분하며, 상처 받지 않더라도 충분히 고통스럽습니다.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왜 돌아다녔을까요?


아이는 태어나고 싶었고, 태어날 이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이유를 못 찾았더라도 언제 어딘가에서 태어났을 테죠. 하지만 태어날 이유를 알고 태어나는 게 백배 낫죠. 보통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삶의 이유를 찾기가 좋죠. 만약 H와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우리는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세포도 죽고 피도 죽지만 끊임없이 샘솟는다고. 어린이는 생명력이 넘치는 샘물과 같다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나기로 결심하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장면



다른 조건에서는 다른 삶이 가능하다


개의 얼굴에 고양이의 그림자가그려진 독특한 그림책. 다른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시선을 햇볕처럼 비춰주는 그림책.


『플릭스』의 주인공 플릭스는 엉뚱하게도 고양이 엄마 아빠에 의해서 태어난 강아지입니다. 할머니가 어릴 적에 개와 연애를 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고양이 가족, 고양이 마을에서 태어난 강아지는 얼마나 외로울까요? 실제로 플릭스는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죠. 모든 사람이 플릭스를 놀리고 배척했다면 플릭스는 개와 고양이의 영웅이 될 수도, 제대로 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모든 사람이 플릭스를 차갑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남다른 조건과 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끈'이 있어야 합니다. 플릭스의 부모 고양이인 테오와 플로라, 플릭스의 대부인 메도르 아저씨(바세 종 개), 파리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미르차(푸들)가 중요한 끈이죠. 카우아이 섬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종단연구는 무척 유명합니다. 1955년부터 30년 가까이 698명의 삶을 추적해서 삶을 분석한 야심찬 연구에 따르면 지독한 가난과 질병, 범죄에 노출된 아이들 중에서 72명은 어엿하고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했다고 해요. 그 아이들의 공통점은 '사랑의 끈'이었습니다. 엄마든 아빠든 삼촌이든 이웃 아저씨든 자신을 지지해주고 사랑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는 버텨낸다는 소중한 교훈이 『플릭스』의 주제이기도 하죠.


H의 엄마는 무척 지혜로운 분이십니다. 보통 아이와 다르게 바라보지 않기 위해서 무척 노력하시고, 아이가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날에도 필사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죠. 저도 제 유년과 가까운 동네 같아서 H의 삶을 여행합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고, 엉뚱한 질문도 많이 하고 간지럽히기도 합니다. H가 제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심합니다. 웃음은 '아직은 괜찮다'는 강력한 증거니까요.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선물. 그것이 아이만이 가진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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