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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Mar 08. 2019

대학원 공부를 위한 독서

일주일에 3~4권을 어떻게 읽어?

일주일에 3-4권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지?


늦깎이로 대학원 첫 수업을 듣고 나서 멘붕에 빠졌다. 교수님들은 매주 한 권씩 읽고 발제와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발제도 그렇지만 날카로운 질문 역시 책을 제대로 읽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해왔던 정독에 기반한 독서 방법으로는 100전100패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니다. 수업을 함께 들었던 동료들 역시 그 많은 독서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막막해 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게도 한 교수님이 '석박사 처음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지?'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주일에 4권의 책을 정독으로 읽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그렇게 읽는다고 해도 교수들은 전혀 반갑지 않다. 박사라는 게 무엇인가? 그럴듯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다. 자기 주장이 서야 하고, 참고하는 문헌들은 자기 주장을 위해 소비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책의 내용을 재조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20년 동안 대학원에 다니면서 논문을 쓰지 못한 사람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그 순간 20년 동안 대학원 주위를 배회하며 논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 봤다. 참으로 끔찍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 상상은 독서 방법의 새로운 모색에 도움이 되었다.



목차에 실마리가 있다.


대학원에서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하기 때문에 '대학원 독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대학원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나의 독서방법을 파괴해야 했다. 나의 독서 방법은 처음부터 읽는 것이었고, 메모를 하면서 생각을 덧붙이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방법이었다. 대학원이라는 빠른 시간에는 변화가 불가피하다.고민 끝에 '목차 베껴쓰기'라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세 번째 책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 때 편집자가 이렇게 조언한 적이 있다.


작가님, 우선 목차를 잡아보세요. 목차를 잡고 나면 써야 할 글들의 대강이 잡힐 거예요.


종교 사회학 전공서적의 목차 베끼기


대학원 논문은 거스를 수 없는 문법과 게임 방법이 있기 때문에 모든 논문은 목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목차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면 논문 형태로 된 모든 글과 대부분의 책들을 굳이 앞에서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논문 베껴쓰기를 통해서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막연하게 파악했다면 다시 나의 주제로 돌아가서 '재조직'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제주 여성 서사 연구'를 주제로 잡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여성 이미지라는 관심사를 이 책에 관통시킬 필요가 있었다.


종교에서는 여성을 철저히 타자화시킨다. '뼈 중의 뼈'로 여길 따름이다. 종교가 문화가 될수록 여성의 위상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남성 중심의 종교 교의는 종교문화의 바탕을 이룰 것이고, 종교문화는 종교집단을 형성하여 공동체를 지배할 것이다. 다행히 목차를 베껴쓴 덕분에 '제7장 종교와 사회' 안에 '4.남아 있는 문제들' 가운데 '종교와 여성'에 대한 주제를 찾을 수 있었다. <종교문화의 이해>를 쓴 저자는 여성에 대한 평가절하를 정당하게 하는 데 종교적 역할이 근원적이라는 건 실증적 사실이라는 점을 짚은 후, 최초의 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렇게 갈무리를 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성취되고 있는 이른바 여성의 해방은 전통적인 남성의 종교적 역할에 상응하는 여성의 종교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긍정과 해석, 그에 상응하는 조화로운 새로운 역할의 출현을 촉진하고 있다.


대학원 공부를 위한 독서에서 실마리를 얻은 것은 겨우 목차 베껴쓰기 정도와 아전인수에 가까운 자기 주장에 대한 재조직 시도였지만 앞으로 나의 전통적인 독서법 파괴는 더욱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건설적인 해체를 통해 나의 독서는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다.


대학원 첫학기 첫수업에서 멘붕을 경험한 동지들의 조속한 회복을 바라며, 첫 발제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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