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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Feb 04. 2019

우리에겐 선택지가 둘 밖에 없다는 카프카

카프카 장편 <성>을 읽고 나서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여태 못 읽었던 카프카. <변신>을 중학생들과 읽고 나서 내친 김에 고독의 3부작인 <소송>, <실종자>, <성>을 읽었다. <소송>은 헌법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가 있기에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현실 그 자체가 <소송>이니까. <실종자>는 자본주의 세계, <성>은 좁게는 관료주의 세계이지만 실체가 되어버린 관념의 세계를 다룬다. 이를테면 국가보안법 같은 것이다.


성은 환상이고 관념이고 허상에 불과하지만 마을 사람 중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은 백성들을 평생동안 지배하는 실체로 작용한다. 누구나 의식하고 두려워하고 이쁨을 받으려고 집착하는데 어찌 실체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 세계든 성의 지배를 받는 백성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K, 바르나바스 가족, 페피처럼 정직하게 살다가 말라가거나 프리다처럼 성의 여왕으로 살지만 단 한 순간도 눈치보기와 신경과민을 벗지 못하든가. 거칠게 비유하면 군자와 소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인다. 성의 안개를 걷어내지 않고서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보기에 이건 웃기는 이야기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 문제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성 이야기가 섬찟한 현실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성>은 대학 시절 펼쳤다가 앞장에서 죄절한 기억이 있다. 요즘 중학생들과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읽고 있는데, 소설의 문장을 읽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읽히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카프카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발저의 소설도 탐독했던 생각이 난다. 좀처럼 발저의 작품은 번역되지 않아 아쉽다. 이제는 카프카가 세상의 어떤 모습을 목격했는지 알 것 같다. 소설 문장에 익숙하지 않으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카프카의 소설이야말로 진정한 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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