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승주 작가 Mar 11. 2019

<가버나움>, 폭력의 평범성

영화 <가버나움>이 보여준 진짜 폭력



신은 하나를 가져가면 하나를 주시지


영화 <가버나움>에서 폭력은 도처에 널렸고, 폭력 이야기도 매우 흔하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치명적이고 현실적인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로 '폭력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공감의 죽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 인용문은 주인공 자인의 엄마가 한 말이다. 자인은 이 말을 듣고 마치 칼로 심장을 찌르는 것 같다고 질색한다. 뱃속의 아이가 살아갈 인생이 빤히 보이는 것이 소름끼친 데다가, 자인의 고통을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엄마의 천진난만함이 숨막힐 정도로 답답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인 엄마가 보여준 평범한 폭력을 두 군데에서 본 적이 있다. 하나는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에서 아들에게 형이 죽은 총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던 화이트칼라 엄마(비서)와 블루 칼라 아빠(엔지니어)였다.

"악은 게으름"이라는 명제에 철저했던 심리학 책 <거짓의 사람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형이 자살한 엽총을 동생에게 준다는 건 자살을 종용하는 행위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부는 크리스마스 때 자녀에게 엽총을 선물하는 건 미국의 전통이며 마침 총이 있었기에 준 것뿐이라고 항변한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또 하나의 상식이 도전해 왔을 때의 답답함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둘째는 자살하지 않기 위해 바둥거리다 자동차 절도를 일으키고 경찰에 붙잡혀 스캇 펙 박사의 상담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또 하나의 책은 카프카가 <소송>, <실종자> 등 가장 빛나는 작품을 쓰던 시절 갑자기 발표한 편지 형식의 작품인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다. 평범한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숨을 죽이며 살았던 카프카는 두 번이나 약혼을 깨는데, 자신이 가정을 유지할 수 없는 정신적 무능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가정을 일군 카프카가 어느 지점에서 아버지와 화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간파했기 때문이다. 자녀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부모는 유감스럽게도 절대악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이라는 게 <가버나움>과의 공통점이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는 폭력적인 기성 질서의 은유로 읽는 게 더욱 정확할 것이다

공감이 죽은 시대에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다. 아이들의 공감능력은 초미세먼지 같은 자살 강요에 스러저갈 것이다. 어른들은 사력을 다하여 공감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었다. 설득의 심리학은 마땅히 공감의 심리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시행착오 없이 나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