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이 보여준 진짜 폭력
신은 하나를 가져가면 하나를 주시지
영화 <가버나움>에서 폭력은 도처에 널렸고, 폭력 이야기도 매우 흔하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치명적이고 현실적인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로 '폭력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공감의 죽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 인용문은 주인공 자인의 엄마가 한 말이다. 자인은 이 말을 듣고 마치 칼로 심장을 찌르는 것 같다고 질색한다. 뱃속의 아이가 살아갈 인생이 빤히 보이는 것이 소름끼친 데다가, 자인의 고통을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엄마의 천진난만함이 숨막힐 정도로 답답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인 엄마가 보여준 평범한 폭력을 두 군데에서 본 적이 있다. 하나는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에서 아들에게 형이 죽은 총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던 화이트칼라 엄마(비서)와 블루 칼라 아빠(엔지니어)였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형이 자살한 엽총을 동생에게 준다는 건 자살을 종용하는 행위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부는 크리스마스 때 자녀에게 엽총을 선물하는 건 미국의 전통이며 마침 총이 있었기에 준 것뿐이라고 항변한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또 하나의 상식이 도전해 왔을 때의 답답함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둘째는 자살하지 않기 위해 바둥거리다 자동차 절도를 일으키고 경찰에 붙잡혀 스캇 펙 박사의 상담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또 하나의 책은 카프카가 <소송>, <실종자> 등 가장 빛나는 작품을 쓰던 시절 갑자기 발표한 편지 형식의 작품인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다. 평범한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숨을 죽이며 살았던 카프카는 두 번이나 약혼을 깨는데, 자신이 가정을 유지할 수 없는 정신적 무능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가정을 일군 카프카가 어느 지점에서 아버지와 화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간파했기 때문이다. 자녀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부모는 유감스럽게도 절대악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이라는 게 <가버나움>과의 공통점이다.
공감이 죽은 시대에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다. 아이들의 공감능력은 초미세먼지 같은 자살 강요에 스러저갈 것이다. 어른들은 사력을 다하여 공감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었다. 설득의 심리학은 마땅히 공감의 심리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