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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Feb 23. 2021

초등 저학년을 위한 가면놀이 그림책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괴로운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수업

새로운 프로그램 '가면놀이'를  론칭하기까지


놀이 연구에서 '몬스터 테크닉'이라는 영역이 있다. 아동의 부정적인 감정을 몬스터에 비유해서 이를 이해하고 다스리는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마음속에 분노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안고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이 괴물을 어떻게 하면 잘 다룰 수 있을지 알려주고 연습하는 것이다. 분노를 괴물로 이미지화한 '몬스터 테크닉'은 아이들 마음속에 내재한 분노라는 감정을 객관화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 놀이다. "문제행동은 곧 그 사람"이라는 잘못된 공식을 깨뜨리고 문제를 그 사람으로부터 분리하여 객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상진아, <행복한 놀이대화>

나의 감정을 이해해야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나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물론 부정적인 감정 상황에서 중재도 할 수 있다. 사회라는 것은 거대한 감정 공동체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문제는 그것이 '비언어'의 영역에서 대부분 일어나기 때문에 말로는 좀처럼 포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만히 관찰하고 발견하지 않으면 감정이 풀리지 않은 채로 응어리가 질 텐데, 부모와 어른들 중에서 아이의 감정을 그 정도로 진지하게 관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자기 살기도 바쁠 텐데.


 

아동의 감정을 괴물이라는 이미지로 표현하고 여러 가지 부정적 감정 상황을 재밌게 표현한 <말썽괴물 스너치>에게 많은 빚을 졌다.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남 같지 않아서 부정적인 감정 다스리기 수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건 3년 정도 되었다. 원래 수업 이름은 '부정적인 감정 다스리기'였는데, <말썽괴물 스너치>를 만나고 나서 '스너치 다스리기'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귀엽고 보편적인 캐릭터인 '스너치'로 다가가니 친근감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낱말이 추상적일 뿐 아니라 다양한 상황을 적절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번에 제주 조천읍도서관에서 수업을 할 때는 '가면놀이'라는 타이틀로 어린이들을 만났다.



<치킨마스크>는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심리를 이해하고 자신의 대체 불가능성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담았고

<외톨이 꼼>은 분노가 커다란 에너지이며 외로움 또는 무시, 두려움 등의 여러 감정과 결합될 때 더 큰 에너지를 뿜어낸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마법의 가면>은 놀랍게도 가면 속에 은폐돼 있는 나의 깊은 감정들을 여행한다. 그리고 고통의 경험이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철학적 메시지도 담고 있다.

<쥐와 다람쥐의 이야기>는 진실 또는 진심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우며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해준다. 다람쥐가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단지 복슬복슬한 꼬리 덕분이며 꼬리가 없으면 그저 보기 싫은 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린이들이 받은 슬픔은 참 컸다.  

<폴린>은 '가면'이 어떻게 초능력을 사용하는지 알려줄 뿐만 아니라 승리 후 밀림의 모든 동물들이 괴물 탈을 쓰고 밤새 축제를 즐기는 재밌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나오는 그림책인데 좀처럼 발견하기가 어렵다. 가면놀이의 대단원을 이루는 수업으로 <외톨이 꼼>에서 확인한 거대한 에너지를 좋은 데 사용한 좋은 예다.



'발문법', '왜 질문법', '만져지는 언어 사용법'


어린이들은 갈수록 리터러시 능력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에 일단 내용 파악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생각을 넓힐 수 있도록 하였다. 발문을 두 가지 단계로 나누었다. 첫 번째 단계는 그림책 질문, 두 번째 단계는 생각 질문이다. <폴린>을 예로 들면.


<그림책 질문>

1. 폴린은 왜 클 때까지 나무 밑으로 내려갈 수 없었던 걸까요?

2. 라부시우스와 폴린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요?

3. 폴린은 왜 숨바꼭질에서 일부러 라부시우스가 이기게 해주었나요?

4. 사냥꾼들은 왜 아기 코끼리 라부시우스를 괴물이라고 불렀을까요?

5. “이 괴물 녀석을 트럭에 싣고 가자”라는 사냥꾼들의 말을 듣고 폴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6. 부모님은 포린의 계획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7. 친구 라부시우스를 구한 다음에 왜 모든 동물들이 괴물로 변신했을까요?


<생각 질문>

8. 폴린의 가면이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까닭은 뭘까요?

9. 괴물 가면을 쓰면 사냥꾼들이 도망갈 것이라는 사실을 폴린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10. 가면의 초능력을 나쁜 데 쓸 때는 어떤 마음이 들고, 좋은 데 쓸 때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어린이들의 낱말로 문장은 추상적이었다. 추상적인 낱말로 문장을 구사한다는 것은 이해의 한계를 말해준다. 추상적인 낱말을 가지고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만질 수 없기 때문에 대안이 마련되어야 했다.


신의 감정을 만져야 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왜 질문법'은 자신의 문장에 '왜'를 붙일 수 없을 때까지 붙여보는 글쓰기 기술이다.


"폴린은 왜 클 때까지 나무 밑으로 내려갈 수 없었던 걸까요?"
- 부모님이 반대 하셔서
"왜 부모님이 반대하셨을까요?"
짐승에게 잡아먹힐 수도있어서
"부모님은 왜 안전한 곳에서 보호하려고 했을까요?"
어리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어려워서


'왜'의 계단을 밟고 자신의 문장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만져지는 언어는 아이가 쓴 글을 잘 관찰해서 말하고 싶은 내용을 구체적인 낱말을 사용해서 업그레이드시켜주는 기술이다. 반복적으로 학습하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발문 :  누군가 여러분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어요?
어린이 글 : 누군가가 내 겉모습만 보고 속은 잘 드려다보지도 않고 내 성격, 태도, 공부하는 실력등을 판단을 한다면 정말 억울하거나 분하고, 화가나고 모두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만져지게 다듬은 글 :누군가가 나의 노력은 보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성격, 외모 등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정말 억울하거나 분하고, 화가 날 것 같다. 그 사람뿐 아니라 모두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자신감이 떨어질 것 같다.


아쉬웠던 점은 줌으로 했기 때문에 모든 어린이들을 커버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한 학생에게 의존했다는 점이다. 줌의 단점은 엘리트화를 고착한다는 점이다. 엘리트에 들지 못하는 학생들의 소외는 대면보다 더 크다. 그림책을 더 연구해서 다양한 가면놀이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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