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학기가 시작될 때 지난 날의 쓰라린 실패를 생각한다. 왜 바보처럼 학기가 그냥 지나가 버렸을까? 나는 왜 바보처럼 손을 놓고 있었을까? 나는 도대체 뭘 배운 것인가?
대학원 수업 받으면서 느끼게 되는 당혹감은 수업을 들을수록 바보가 된다는 점이다. 바보가 된다고 느끼는 이유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의 정신이 익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학원 수업에서 정신적 익사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뒤늦게, 그것도 12학점 학기에 와서야 생각하게 되었다.
서류함을 만들어 매주 수업 메모를 정리하는 것은 지난 학기부터 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것을 좀처럼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개요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강의 때 들었던 메모를 통독하고 A3의 한 부분에 정수만 정리한다. 수업 메모를 읽는 일도 개요표를 작성하는 일도 무척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닥치게 될 시간낭비의 쓰나미를 막아줄 맹그로브 나무를 심는다는 심정으로 나는 메모한다.
개요표를 적어 두면 상세한 내용을 보고 싶을 때 언제 어느 부분을 참조해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정신 없이 흘러가는 학기 속에서 등대 역할을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