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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Apr 09. 2020

대학원 발제 방법

나를 위한 대학원 공부 가이드


나이 들어서 대학원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대학원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평생 공부하는 것이 팔자일 수 있지만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점은 내 공부 방식에 대한 검증이다. 대학원에는 교수라는 벽이 있고, 그 벽을 넘어서야 연구자로서 공인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제방법1 : 저자의 논리에 끄덕이기만 하면 바보다


가장 어려운 것은 발제다. 발제를 하면서 내 독서 방법에 대한 반성을 많이 했다. 나는 과감히 정독 습관을 버리기로 했지만 오랫동안 습관화되어 고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저자가 주장하려는 바를 재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하고, 주장을 위해서 강조하는 근거와 '의도적으로 빼놓은 불리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정독은 저자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을 방해한다. 


발제할 단행본 또는 논문을 정독하는 대신 (1) 목차, (2) 서론, (3) 결론을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저자의 주장을 재빨리 파악하면서 개요를 작성한다. 어차피 논문을 쓸 때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저자의 논문에 바보처럼 끄덕이지 않으려면 책과 논문의 구조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원고를 투고하거나 편집자와 책에 대해서 상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편집자는 '목차 좀 볼 수 있을까요?' 하고 간단히 묻는다. 목차만 봐도 글의 완성태가 대충 보이는 것은 구조를 보는 안목이 생겼기 때문이다. 글의 앞에서부터 정독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구조를 보는 안목이 생길 수 없다. '구조 장인'이 되려면 글을 앞에서부터 차례로 정독하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고 건너뛰는 걸 해야 하는데, 그건 바로 '목차와 친해지기'다. 읽을 때의 목차와 쓸 때의 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목차와 친해지고 나면 서론과 결론과 친해져야 한다. 이 연습을 반복적으로 하고 익숙해질 즈음이 되면 비로소 바보처럼 끄덕이지 않을 수 있다.



발제방법2 : 짧은 메모와 작은 문장들을 세심히 모은다


책도 발제도 결국은 '문장의 집합'이다. 문장을 적절히 사용하고 목적에 맞게 배치시키면 하나의 글이 되는 것이다. 동료들과 대학원 세미나를 하면서 가장 눈에 띄는 게 바로 문장이다. 초보자로 갈수록 '복붙감상' 현상이 잦다. 인상적인 구절을 그대로 갖다 붙이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방법의 약점은 그 구절이 책의 전체 내용을 대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아무리 중요한 문장이라도 원문은 책의 맥락에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책 전체의 요지는 맥락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전체요지'는 바로 읽은 자의 문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장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하는 문장 연습을 소개한다. 문장 연습이라기보다는 기초적인 요약 훈련에 가깝지만.


책의 구절들을 짧은 문장으로 요약하고, 짧은 요약들을 중심으로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정리할 수 있다. 짧은 문장은 대부분 나의 문장이기 때문에 문장 연습도 겸할 수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우리들이 '요약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고, 부실한 요약능력이 논문 작성이나 책 저술, 발제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했다. 수능이든 논술이든 논문이든 모든 학문 활동의 기본은 요약이다. 책 한 권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다면 어떻게 책에 대해서,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논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지금도 기초 요약 연습을 하고 있다. 요약력이 강해지면 이를 바탕으로 나의 주장을 전개하고 발제하고 남의 주장을 비판하는 건 한결 수월해진다. 저자의 주장을 나의 방식으로 완전히 재구성하는 것도 역시 요약력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발제방법3 : 비판은 할수록 는다


논문이라는 건 공인된 주장이다. 주장이 공인되어야 '연구자'로서 활동할 수 있다. 주장이 공인되기 위해서는 기존 주장들의 빈틈과 맹점을 포착하고 머리를 들이밀어야 한다. 처음에는 택도 없을 것 같지만 계속 들이밀다 보면 '어쭈~ 밀리네' 하는 느낌이 온다. (적어도 나는 논문 분야에서는 이 느낌은 느낀 적이 없지만) 그때 나의 자리가 생긴다. 그러니까 대학원생에게 '비판'은 종교와 같다. 우리들은 '반론가능성'이라는 대학원에 다니는 것이다.


공인된 비판이 되려면 어떡해야 할까? 계속 해보는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유치한 비판이 될 수 있고, 말꼬리만 늘어지기가 될 수도 있다. 내 비판이 비판당하기도 한다. 어떤 주장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순간 비판에 대한 평가가 내려진다. 내 비판의 헛점이 노출되는 것이다. 허점을 보완해서 비판을 하면 '다른 차원의 허점'이 노출된다. 허점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는다. 인간 자체가 허점투성이며 모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생은 마음밭에 '비판'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직업이다. 씨앗에 물을 적당히 지속적으로 줘야 하고 만져주기도 하고 좋은 말도 해주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근사하게 커진 비판은 거꾸로 대학원생을 먹여살리는 것이다.


<요약>

1. 주장을 한 줄로 요약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거나 방법이 정당한지 검토한다.

2. 저자의 주장을 나의 언어로 완전히 재구성하거 반박거리가 있는지 집요하게 탐색한다.

3. 저자의 책을 교수의 강의 계획서와 비교하면서 왜 이 책을 다루는지 생각하고 목차, 서론, 결론을 대조하면서 '구조'를 보는 눈을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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