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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May 22. 2021

초등 4학년 아들 리터러시 훈련 체험기

《보물섬》으로 독서일기 쓰기

세 남자 독서 모임, 우연히 만들어진 독서 분위기


우리 집에는 어린이가 두 명 있다. 6학년 민준이와 4학년 민서. 2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무릎에 올려놓고 그림책을 읽어줬기 때문에 민준이가 그림책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독서 관심이 식었다. 다만 민서는 생물학자가 오랜 꿈이고 학습만화를 좋아해 책을 달고 사는 편이다. 아직도 그림책 읽을 나이냐는 주변의 압력으로 그림책을 같이 읽기도 애매해졌다. 


아이들에 대한 독서 교육은 아내의 오랜 민원 사항이었다. 지금은 거의 사기꾼처럼 되었다. 나는 아이들의 독서 동기, 학습 동기를 떨어뜨리기 싫어서 기다렸던 건데 그 핑계로 마냥 손 놓고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부부싸움이 잦아지다 보니 아이들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는구나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세 남자 독서모임'이 성사되었다. 


처음에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었는데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원작을 다 읽고 만화책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덜컥 보여준 것이다. 만화책을 재밌게 읽은 아이들에게 원작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재밌는 책을 골라야 했기 때문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과감히 접고 <보물섬>으로 바꿨다. 


만화책을 너무 일찍 공개해서 결국 원작 읽기를 포기해야 했다 ㅠㅠ


독서일기와 리라이팅


지속적인 독서모임과 리터러시 훈련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매주 50쪽씩 읽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자연스럽게 토요일은 책 읽는 날이 되었다. 처음에는 야단도 치고 잔소리도 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함께 읽으며 낭송도 하고 대사도 치면서 흥미를 돋우다가 메모 읽기도 시도해보았는데 아이들에게 익숙한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서일기'를 제안했다. 일기의 문법은 아이들에게 익숙하니 방법을 약간만 알려주면 되었다. 


초등학교 글쓰기 수업을 10년째 하다 보니 초등학생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추상적인 언어'다. 추상적인 언어를 구체적인 언어로,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만져지는 언어'로 표현하도록 하는 게 목표다. 세 남자 독서모임은 책 읽기 훈련, 리터러시 훈련, 글쓰기 훈련이라는 세 가지 목표롤 가지고 있다. 먼저 아이 스스로 자신이 추상적인 언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고민 끝에 아이의 표현을 번역해서 리라이팅을 해주었다. 내가 쓴 글에는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고 다만 아이가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을 구체적으로 번역한 것뿐이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댓글을 달아줘서 가족 독서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달의 가족 책 개념으로 나아간다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시체를 만진단 말이냐' 어머니의 말을 듣고 그 어떤 것도 모성애를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민서의 글)


처음에 인용문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의 어떤 말을 말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못 이긴 듯 인용문을 넣었다. 민서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말을 잘 하고 똑똑한 아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추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이것은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어린이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아이의 말을 구체적으로 번역을 하고 메모장을 돌려주었다. 


'어떻게 시체를 만진단 말이냐'는 말을 하면서도 어머니는 창에 차양을 치라고 말씀하셨다. 해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아들과 가족을 지키려 했고 선장에게 밀린 방세를 어떻게든 받으려 했기 때문이다. 시체를 뒤지는 끔찍한 일에 벌벌 떨어면서도 할 일은 하고 마는 어머니의 강인한 모습과 아들인 짐 호킨스를 지키려는 모성애가 인상적이었다. (구체적인 표현으로 번역한 리라이팅)

다음 주 독서일기에서 아이들의 추상적인 글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변화하는지 궁금하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훈련이 누적된다면 아이들 스스로 구체적인 표현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 남자 독서 모임에는 몇 가지 중요한 전제가 들어 있다. <보물섬>은 가족 지정 도서다. 그래서 독서 일기에는 가족의 댓글이 담겨 있어야 한다. 아내에게 댓글을 달아달라고 했다. 아이들은 독서 일기 한 문단을 쓰고 엄마에게 검사를 받고 댓글을 받아 와야 한다.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아서(항상 이런 식이지..ㅉㅉ) 아내는 황당해 했지만 착한 사람이라 정성스레 댓글을 달아 주었다. '가족 책'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의 독서력, 리터러시 능력, 글쓰기 능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을 지켜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만약 내가 <보물섬>을 읽지 않고 그 과정을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0이다. 아이는 충분히 비용을 들이고 있으니 부모도 그에 대해 보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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