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승주 작가 Feb 25. 2022

중학생과의 격한 토론 "시간은 공간인가?"

『타임머신』이 쏘아 올린 멋진 쟁점

시간은 공간이 맞다는데 시간여행자는 왜 '후달리냐'?

※후달리냐? : '불안하냐?' '걱정스럽냐?' 등의 뜻으로 영화 <타짜>의 명대사. 비슷한 말) 쫄리냐?


자살하려고 권총 총구를 머리에 갖다 댄 사람은 아마 그때 내가 느낀 것과 거의 같은 불안감을 느낄 겁니다.


시간여행자가 편안한 마음으로 타임머신 레버를 돌리기 위해서는 '시간은 공간이다'라는 이론에 대해서 '몸'이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이 공간이 아니라면 레버를 돌리는 순간 벽 안에 박혀버릴 수도 있고, 허공에서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 교과서를 출간하기도 하고 『네이처』 같은 일류 매체에 정기적으로 기고했던 허버트 조지 웰스는 과학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웰스의 시대는 '과학의 시대'였다. 다윈의 진화론에 물든 세기말에서 원자력이 등장한 시기까지 1세기라는 웰스의 생애에는 치열한 과학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다윈의 진화론이 맑시즘보다 대세인 이데올로기였고, 당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인류 사회의 과거와 미래라는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차원에 관한 공개 토론회가 활발히 열렸고 웰스도 몇 번 참여한 기록이 있다. 따라서 '시간은 공간이다'라는 명제는 『타임머신』에 삽화로 담기는 차원을 넘어선 논쟁이었다. 시간여행자는 이론적으로는 '시간은 공간'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였지만, 몸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따라서 타임머신의 작동 레벨을 움직이는 것은 머리를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 같은 기괴한 공포감을 느꼈던 것이다.


중학생들과 『타임머신』을 읽으면서 '시간은 공간인가?'로 토론을 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시간은 공간이 아니라고 했다. 시간은 시간이고 공간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던 시대도 공간도 얼마든지 있는데 어떻게 시간이 담길 수 있겠는가? 반면 한 학생은 우리는 모두 시간에 매달려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은 공간이다'라는 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중학생들의 논점은 매우 날카로웠다.



'시간은 공간인가?'라는 질문에 담긴 의미


네 방향이란 길이와 너비와 두께 그리고 지속 시간이지요. 하지만 육체가 타고난 결함 때문에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네 가지 차원이 존재하고, 그중 세 개를 우리는 공간의 세 평면이라고 부르고, 네 번째 차원은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시간은 공간인가?'라는 질문에는 육체와 정신의 특성에 대한 의미도 담겨 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지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육체와 정신이 결합된 모습이다. 하지만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인류와 나는 '정신'으로 묶여 있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시간이라는 네 번째 차원을 따라 한 방향으로만 단속적으로 이동"(17)하며 "우리의 정신은 비물질적이고 차원 없는 존재이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결같은 속도로 시간이라는 차원을 따라 나아가고"(20) 있는 것이다.


시간은 공간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지금까지 시간이 묻어 있지 않은 공간이라는 게 존재한 적이 있었는가? 인류 탄생 이전의 우주와 지구 공간을 말한다면 내가 포함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고 되물을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은 '나'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육체와 정신이 받아들이는 감수성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며, 이론적으로 자명한 것을 인정한 시간여행자의 육체가 타임머신의 레버를 돌리기에는 끝내 머뭇거리게 되는 육체적 한계가 존재할 뿐이다. 이처럼 '시간은 공간인가?'라는 질문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고, 중학생들과 이 주제로 토론하는 것은 재밌었다.


나는 인류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이루어내고 헛발질한 총합이 바로 나다. 그러므로 내가 없던 먼 과거에 인류가 겪었던 시간 역시 나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다만 인류의 문제에 나를 포함시키지 않고 생각하는 습관이 문제인 것이다. 나와 인류를 끊임없이 구별하고 별개로 생각하게 만드는 모든 압력은 한 가지 질문만으로 틀어막을 수 있다.


나는 인류가 아닌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