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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Oct 17. 2017

제주4.3 '70주기'라는 말을 버린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일깨워준 제주4.3정신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했다. 역사 관련 그림책을 고르다가 제주 학생에게 제주4.3을 빼놓을 수가 없기에 『나무 도장』을 읽었다. 칠판에 제주4.3 70주년이라고 썼다가 '70주기'로 고쳐놓고 나서 왜 고쳤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기일이니까요. 수업이 끝나고 한참 시간이 흘렀지만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왜 '주년'은 안 되고 '주기'라고 써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70주년'을 쓰지 못할 이유가 없었고,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


▲ 제주 출신이 아닌 권윤덕이 그리고 써서 그런지 담담하게 표현된 맛이 느껴지는 『나무 도장』


언론에서는 어떻게 쓰는지 네이버 뉴스 검색어를 입력해 보았다.


▲ 네이버 뉴스에 '제주4.3 70주년'을 썼더니 825건이 검색되었다




▲ 네이버 뉴스에 '제주4.3 70주기'를 썼더니 16건이 검색되었다


기사에서는 '70주년'이 대세가 되었지만 '70주기' 또한 적다고 할 수는 없다. '주년'과 '주기'의 사전적인 의미를 '국립국어원'에 찾으면 이렇게 나온다.


69년 동안 제사를 지냈는데 70년째에도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답답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년'과 '주기'는 한 끗 차이지만 내포하는 의미와 세계관은 전혀 다르다. '주년'이라는 용어에는 '제주4.3' 저항을 결정한 제주 사람들의 뜻이 '분단 반대 열망'이었다는 평가를 함의한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1948년 당시 전국적으로 남한 단독선거 반대 행동이 펼쳐졌지만 제주도처럼 조직적으로 실천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제주도에서 3석 중 2석이 뽑히지 못해 제헌의회수는 '198'로 남아 있다. 이 실천의 결과로 제주도는 '피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70주기'라는 말 안에는 학살의 기억이 반영돼 있다. 그러니까 70주기라는 말을 계속 쓰는 한 학살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제주4.3이 학살로 기억된다는 것만큼 개탄스러운 일은 없다. 학살 이전에 '통일행동'이 있었다.


▲ 강요배 화백이 그린 '신촌회의'. 19명의 인원 중 김달삼 사령관 등 12명이 '저항'에 표를 던져 주사위가 던져졌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1948년 2월에 있었던 '신촌회의'의 토론을 재현해 보았다. 당시 사령관 김달삼 등 12명은 저항을 나머지 7명은 관망을 주장했다. 이 결과로 4월 3일 봉화에 불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결정은 제주도 자체적으로 내린 것이고, 북한의 남로당은 오히려 중앙 지령이 없다는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날의 결정이 북한의 지령이라는 가짜 뉴스와 이를 근거로 한 날조된 주장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신촌회의 또는 북한 지령설 관련된 내용은 제주 블로거 아이엠피터의 글(제주4ㆍ3사건, '남로당 중앙 지령설'을 반박해주마)을 참조하시라) 중학생들의 의견은 참으로 다양했다. 저항하지 않겠다는 의견, 저항하겠다는 의견, 기타 의견도 있었다. 그 중에서 저항하겠다는 의견을 낸 한 학생에게 물어봤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해. 이 결정으로 인해 수만 명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될 수 있는데,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어?


하지만 학생의 답변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렇게 사는 게 어떤 의미가 있겠어요?


참 당찬 반박이다.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한 목숨 부지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지워진 책임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일까? 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게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중학생의 답변은 당시 제주 도민의 마음과 하나로 연결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69년 동안 주눅들었으니 이제 앞으로의 30년을 시작하는 70주년에 들어서는 '정신이 살아 있는 그들의 결정'을 일으켜 세우는 데 힘써야 한다. 내가 4.3 관련 동화를 쓰든 시를 쓰든, 아니면 다른 글을 쓰든 이 정신만큼은 잊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중학교 1학년 학생, 1948년 제주도민들이 가르쳐준 '4.3정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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