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논어산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승주 작가 Jan 24. 2023

『어린 왕자』의 '바라봄'에 대한 논어적 해석

안회가 죽었다. 제자들이 성대하게 장례를 지내려고 했지만 공자가 반대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스승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공자가 말했다. “안회는 나를 아버지처럼 대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내탓이 아니라 너희들 때문이다.『논어』, 「선진」 편



안회는 신화적 인물이다. 안회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고 더군다나 요절했기 때문에 마치 역사적 인물보다 신화적 인물로 착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논어』에서 공자가 안회에 대한 엄청난 찬사를 남겼기 때문에 제자들도 넘버2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공자는 넘버1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선생께서 자공에게 물으셨다. 너와 안회는 누가 나으냐? 자공이 대답했다. 안회는 도저히 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데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그렇다, 너뿐만 아니라 나도 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논어』, 「공야장」 편


처음에 인용한 『논어』 구절에서는 안회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공자가 안회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과 제자들이 안회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충돌하고 있다. 제자들은 왜 안회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려고 했을까? 안회라는 제자의 상징적인 의미와 '성대한 장례'가 가져오는 효과를 생각한 것이다. 장례라는 것은 세를 과시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성대한 장례를 통해서 공자의 제자들은 세를 과시하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공자는 소박하게 장례를 치르고 싶어 한다. 이것은 공자와 안회의 일이며, 두 사람의 문제이기 떄문이다. 공자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안회의 마음'이다. 안회는 "찬밥에 냉수를 마시며 골목 안 누추한 집에서 살"았고 보통 사람이 혐오하고 불평해마지 않는 가난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하며 살았다. (논어, 옹야 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살았다면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을 지 모르겠지만, 공자는 부유하고 가난한 것이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란 사실을 알았기 떄문에 안회의 삶을 존중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안회가 죽고 나서 갑자기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은 어쩌면 안회의 삶에 대한 부정이자 배신일 수 있다는 생각은 스승 공자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공자가 성인이고 훌륭한 인품을 가졌기에 제자들이 무조건 복종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논어』에는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반항과 논쟁, 다양한 이견으로 가득하다. 소박하게 장례를 치렀으면 좋겠다는 스승의 바람이 제자들에게 통할 리가 없다. 공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제자들 뒷담화와 푸념을 늘어놓는 것밖에 없다.


논어의 시선을 『어린 왕자』로 옮긴다면 "대상을 그 자체로 마주할 수 있는가?" 하는 중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논어에서 공자가 안회를 그 자체로 마주한 것처럼, 어린 왕자에서는 그 자체로 마주하는 것에 대한 장면들이 많다. 어린 왕자가 사는 소행성 B612를 1909년 최초로 발견한 터키 천문학자는 자신이 입은 복장 때문에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터키의 독재자는 백성들에게 유럽식으로 옷을 입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명령해서 천문학자는 1920년 우아한 양복을 입고 논증을 다시 해서 비로소 인정 받을 수 있었다. 소행성 B612와 천문학자는 변함이 없었지만 전통 복장을 서양식 양복으로 보정하는 작업을 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대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서양식 양복' 덕분이지 순수하게 B612를 마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린 왕자 역시 대상을 그 자체로 마주하지 못한 실수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장미 이야기다. "해님과 함께 태어났다", "호랑이 따윈 무서울 게 없다", "제가 떠나온 곳은" 같은 허영심 가득한 말들과 "저녁엔 유리 덮개를 씌워 줘요" "바람막이는요?" 같은 까다롭고 눈치 없는 요구 때문에 어린 왕자는 장미를, 장미의 사랑을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없었고 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을 바로 보지 못한 죄값을 치른다는 점에서, 어린 왕자의 여행은 어쩌면 '유형(流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한 거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꽃을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 꽃은 나를 향기롭게 해주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었어. 거기서 도망쳐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 어설픈 거짓말 뒤에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어린 왕자』


마지막으로 '뱀'과 관련해서 "대상을 그 자체로 마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절정에 도달한다. 지구에 내렸을 때 어린 왕자가 처음 만난 "손가락같이 가느다랗고..."이상한 짐승"은 "건드리기만 하면 자기가 태어난 땅으로 되돌아가"게 만들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진 뱀이었다. 어린 왕자는 뱀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지구에서의 작별을 부탁한다. 뱀과의 마지막 일을 바라보는 어린 왕자와 비행사의 엇갈린 시선은 슬픔과 감동을 증폭시킨다. 비행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마음이 더 애절해진다.


"아저씨는 잘못한 거야. 마음이 아플 거야. 내가 죽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정말 그런 건 아니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도 알 거야. 거긴 너무 멀어. 이 몸뚱이를 가지고 갈 수는 없어. 너무 무거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벗어 버린 낡은 껍데기나 같을 거야. 낡은 껍데기가 슬플 건 없잖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잠시 기운을 잃었다. 그러나 다시 안간힘을 썼다.
"참 포근할 거야, 아저씨도 알잖아. 나도 별들을 바라볼 거야. 별들이 모두 녹슨 도르래를 달고 있는 우물이 될 거야. 별들이 모두 내게 마실 물을 부어줄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즐거울 거야! 아저씨는 방울이 5억 개나 있고 나는 샘이 5억 개나 있고..."
그리고 그도 말이 없었다. 울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왕자』, 112~113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