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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Jan 18. 2023

논어적 해석

르네 지자르 『소설적 진실과 낭만적 거짓』 1. 난(亂)의 구조



용맹을 좋아하고 가난을 싫어해도 난을 일으키고, 사람으로서 인하지 못한 것을 너무 심히 미워해도 난을 일으킨다. (논어)


좋아하고 싫어한다는 것은 '나의 욕망'의 결과다. 하지만 욕망이 나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낙타가 바늘 구멍을 뚫고 나오는 것보다 더 어렵다. 르네 지라르는 욕망은 모방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욕망을 한다고 할 때 반드시 욕망의 대상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당근을 향해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중개자가 찍어주는 좌표를 향해 맹렬히 달려간다. 19세기 사회 전체가 사로잡혀 있던 모방의 절박한 욕구는 '선망, 질투, 그리고 무력한 증오' 같은 감정과 연관된다. 르네 지라르는 스탕달의 견해를 빌려 현대적인 감정은 허영심의 결과들이라고 말했다.

위 논어의 구절에서 '난을 일으키는' 주체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짧게 '어지러워진다(亂也)'고만 했기 때문에 난을 일으키는 사람이 상대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일 수도 있지만 결국 나와 상대의 합작품이 '난'이기 때문에 난을 일으키는 주체는 중요하지 않다. '어지러워진다'는 자신의 중심이 무너지고 질서가 깨진다는 뜻이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욕망과 허영, 중개자 쪽으로 미끄러져 가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설 수 없고, 자유가 버거운 존재는 삼각형의 욕망 안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삼각혀의 한 점에는 주체(나)가 있고, 다른 한 점에는 중개자가 있으며, 나머지 한 점에는 대상이 있다. BTS(중개자)를 보고 연예인 또는 스타(대상)을 꿈꾸는 청소년(주체)은 연예기획사에 들어가는 것을 꿈꾸며 스스로를 연마한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청소년은 스스로 욕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력에 이끌린 것이다. 주체는 중개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고 중개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오로지 소설가만이 부당한 자리를 차지하는 중개자의 자리를 원래 자리로 되돌릴 수 있고 욕망의 위계를 거꾸로 뒤집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용맹을 좋아하고 가난을 싫어하는 것 역시 연예인을 꿈꾸는 청소년처럼 용맹의 중개인과 부자의 중개인이 존재한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이미 자신의 욕망이 아닌 것이다. 인(仁)하지 않은 자를 증오하는 것은 두 층의 싫어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상종하기 싫은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그 사람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는 것은 싫어하는 문제와도 전혀 다른 문제다. 그것이 바로 '난'이다.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바로 현대인이 욕망의 삼각형에 빠져들어서 자기 자신을 잃고 '난'으로 추락하는 구조를 밝힌 책이다. 이에 반해 <논어>는 '난'으로부터 '나'를 회복하는 낙타 바늘 구멍 미션을 실천했던 인간의 역사를 다룬다. 그래서 논어와 비교해서 생각할 여지가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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